시공간의 인식체계를 기반으로 한 GPS(Global Positioning System)는 전세계 대부분의 사람들이 활용하고 있다.
미국 소유인 이 시스템은 절대적인 영향력을 발휘, 러시아, 중국, 일본, 인도 등 수많은 나라들이 GPS를 대신할 독자적 시스템의 구축에 나서고 있다.
이처럼 시공간을 인식하는 기술은 과거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최고의 과학 기술이자 국력인 것이다.
시공간을 인식하는 학문인 천문학은 그런 의미에서 중요하다고 볼 수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이미 조선시대부터 천문학 연구가 활발히 이뤄졌다는 사실은 주목할만하다.
영국의 과학사학자인 조지프 니덤(Joseph Needham)은 ‘중국의 과학과 문명(Science and Civilisation in China)’에서 조선의 과학을 언급하지 않고는 결코 완성된 한자 문명권 과학사를 쓸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후 ‘서운관의 천문기구와 시계(The Hall of Heavenly Records, 1986)’에서는 세종 때의 천문의기를 고찰해 한국 천문학의 가치를 드러냈다.
조선 천문학 중 가장 많이 연구되는 시기가 세종시대다.
우리 역사에서 세계적 수준에 도달했다고 일컬어지는 세종 시대의 조선 천문학은 사실상 이슬람 문명 등 세계의 문명과 연결돼 있었다.
세종은 시공간을 인식하는 기술을 중국 힘을 빌지 않고 독자적으로 사용하는 수준까지 발전시켰으며 이때의 천문학은 세계 천문학의 패러다임 속에서 발전했다.
특히 고려의 제도를 계승해 1392년에 설치된 서운관은 천문·재상(災祥)·역일(曆日)·추택(推擇)의 일을 맡은 관청으로, 천문학 연구의 거점으로 기능했다.
실학박물관은 실학연구총서 열번째 책 ‘서운관의 천문의기’을 발간, 좌표, 좌표변환, 투영이라는 세 요소에 집중해 서운관 천문의기들을 새롭게 분석하고 고찰한다.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를 역임하고 대한민국학술원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정기준 명예교수는 전공 분야인 계량경제학의 좌표변환과 투영 이론을 바탕으로 세종 시대의 해시계인 ‘앙부일구’에서부터 17세기 서양 천문학이 전래된 이후 만들어진 이슬람식 천문의기 ‘아스트로라브’에 이르기까지 조선시대 천문의기를 색다를 각도로 조망하고 있다.
“세종은 왜 그토록 천문학 발전에 심혈을 기울였을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한 책은 “시간과 공간을 인식하는 학문으로서, 천문학의 발전은 곧 국력과 관련된다”는 명쾌한 답을 제시할 뿐 아니라 그 근거를 상세히 소개한다.
/민경화기자 mk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