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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역사를말하다]고등수학과 거울까지 등장하는 ‘삼국사기’ 불신론

삼국사기 불신론 비판 (4)

 

◇ 일본 사료에 안 나오니 가짜라는 주장

 

일제강점기 한국사를 연구했다는 일본인 학자들의 논문들을 보면 그들의 정신상태를 의심하게 된다. 아무런 근거도 없는 내용을 그렇게 많은 학자들이 천편일률적으로 주장할 수 있는지 신기할 정도다. 하긴 아유카이 후사노신(鮎貝房之進:1864~1946)처럼 칼 들고 명성왕후 시해에 가담했던 낭인깡패가 붓을 잡은 후 한국사 연구의 대가로 대접받았으니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일본인 학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삼국사기 불신론’을 주창했는데, 그 중 마에마 교사쿠(前間恭作:1868~1942)라는 인물이 있다. 마에마 교사쿠는 조선총독부의 통역관이었는데, 1925년 ‘신라왕의 세차(世次)와 그 이름에 대하여’라는 논문을 썼다. 그는 이 논문에서 “이마니시 류(今西龍)가 『삼국사기』 소지왕(炤知王) 이전의 기사를 믿을 수 없다고 한 것은 확고부동의 단안(斷案)으로 믿는다”라고 말했다. 이마니시 류가 『삼국사기』 「신라본기」의 21대 소지왕(재위 479~500) 이전은 믿을 수 없다고 주장한 것을 따른다는 것이다.

 

소지왕의 재위연대는 서기 479년부터 500년까지이니 이를 따르면 『삼국사기』 「신라본기」는 500년 이상 가짜가 된다. 그런데 이마니시 류의 학문을 믿는 것만큼 허망한 일도 없다. 이마니시 류는 소지왕 이전의 『삼국사기』 「신라본기」만 믿지 못하겠다고 한 것이 아니라 때로는 17대 내물왕(奈勿王:재위 356~402) 이전은 믿을 수 없다고도 하고, 때로는 24대 진흥왕(眞興王:재위 534~576) 이전은 믿을 수 없다고도 했다. 심지어 28대 진덕왕(眞德王:재위 647~645) 이전은 믿을 수 없다고도 했으니 이에 따르면 신라는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져 삼국통일에 나섰다는 이야기다.

 

마에마 교사쿠는 박·석·김 세 성씨가 왕위를 계승한 것(三姓交立:삼성교립)은 중국 고대 하·은·주(夏殷周) 세 나라가 계승되는 것을 보고 조작한 것이라고도 주장했다. 한마디로 기발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일본사적(日本史籍)에 소지왕 이전의 왕명이 나타나 있지 않다는 것도 『삼국사기』 「신라본기」를 가짜로 모는 사유로 들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나오는 신라 국왕이 일본 사료에 나오지 않으니 가짜라는 것이다. 일본사람이 너를 못 봤다고 했으니 너는 한국 사람이 아니라는 논리다. 이런 주장들이 근거 사료를 가장 중요시하는 역사 논문에 버젓이 등장하고 명색이 학자라는 사람들이 추종하는 것이니 불가사의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 일본서기가 가짜니 삼국사기도 가짜다?

 

오타 아키라(太田亮:1884~1956)는 여기에서 한술 더 떴다. 그는 주로 일본의 씨족제도를 연구했는데 『삼국사기』 비판에 뛰어들었다. 그는 1928년 ‘조선 고대연대의 연구와 일한의 관계(朝鮮古代年代の硏究と日韓の關係)’에서 “한국의 고대연대(古代年代)도 일본의 고사(古史)처럼 연장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일본서기』가 연대를 연장시킨 것처럼 『삼국사기』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내가 도둑이니 너도 도둑이라는 식이지만 그나마 남한 강단사학자들이 존경해 마지않는 이마니시 류보다는 양심적이다. 이마니시 류는 『삼국사기』는 가짜지만 『일본서기』는 모두 진짜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또한 쓰다 소키치 등은 『삼국사기』 「고구려본기」도 조작이라고 주장했지만 오타 아키라는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의 연대는 대체로 신용할 수 있다”고 평가했으니 조금 낫다.

 

그러나 본질적인 부분으로 들어가면 다를 것이 없다. 일본인 식민사학자들이 『삼국사기』를 가짜로 모는 이유는 모두 임나일본부설 때문인데, 그 역시 이 부분에서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오타 아키라는 『삼국사기』에 나오는 왜(倭)와 가야는 모두 일본을 뜻한다고 본다. 일본인 학자들이 『삼국사기』에 주목하는 것은 모두 왜 때문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준다. 어떤 일본학자들은 『일본서기』 기사들이 시기가 연장되었기 때문에 2주갑 120년을 올려서 해석하는 주갑제를 사용한다. 오타 아키라는 주갑제를 『삼국사기』에도 적용했는데, 『삼국사기』 「신라본기」는 무려 4갑자 240년을 연장했다고 주장하고, 「백제본기」는 3주갑 180년을 연장했다고 주장했다.

 

『삼국사기』는 신라 5대 파사이사금(婆娑尼師今:재위 80~112) 재위 27년(서기 106년)조에서 “가을 8월에 마두성주(馬頭城主)에게 명해서 가야를 정벌하게 했다”고 말하고 있다. 이 마두성에 대해서 남한 강단사학계의 태두(?) 이병도는 경남 거창군 마리면(馬利面)이라고 비정했다. 별다른 논리가 있는 것이 아니라 ‘마두(馬頭)’와 ‘마리(馬利)’의 마(馬)자가 같다는 것뿐이니 신빙할 것이 없다. 그런데 오타 아키라는 이 기사에 나오는 가야가 일본이라면서 이 사건의 106년에 240년을 더해서 346년의 사건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일본서기』에 신공(神功)왕후가 신라를 정벌했다는 기사를 사실이라고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타 아키라는 신라의 역사가가 신라의 건국을 가장 앞선 것으로 하기 위해 4주갑(240년)을 연장했고, 백제는 13대 근초고왕(近肖古王:재위 346~375) 이전의 역사는 모두 조작인데, 3갑자(180년)을 연장했다고 주장했다.

 

 

◇ 여러 개의 거울에 비춰본 ‘삼국사기’

 

신라사는 240년, 백제사는 180년을 연장했다고 주장하다 보니까 스스로 수학자로 변신해서 복잡하게 계산했다.

 

“5대 초고왕(肖古王:재위 166~214)의 재위 48년은 실제의 초고왕인 13대 근초고왕(재위 346~375)과 실제의 구수왕(仇首王:재위 214~234)인 14대 근구수왕(近仇首王:재위 375~384)의 재위 연대를 합한 것에서 10년을 더한 것이다.”

 

몇 번 읽어봐도 무슨 뜻인지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오타 아키라가 고안한 고등수학(?)이기 때문이다. 『삼국사기』는 초고왕이 48년 동안 왕위에 있었다고 말하고 있는데 48이란 숫자가 나온 이유를 독창적(?)으로 설명한 것이다. 근초고왕의 재위연대 29년에 근구수왕의 재위연대 9년을 합하면 38년이 나온다. 『삼국사기』 편찬자들이 여기에 10년을 더 보태서 48년이 나왔다는 것이다. 왜 굳이 10년을 더 보탰는지 아무런 근거는 없다. 자신이 계산 해보니 그렇다는 것이다.

 

오타 아키라의 고등수학은 근초고왕과 근구수왕에 그치지 않는다. 그는 “(백제) 11대 비류왕의 재위연수 40년은 근구수왕으로부터 아신왕에 이르는 재위연수 30년에 10년을 더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삼국사기』는 비류왕이 40년 동안 왕위에 있었다고 썼는데, 이는 14대 근구수왕(9년)+15대 침류왕(11년)+16대 진사왕(7년)+17대 아신왕(13)의 재위연대를 합친 30년에 10년을 더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는 8대 책계왕의 재위연수가 12년인 것은 초고왕의 48년에 12년을 보태서 간지일운(干支一運) 60년으로 맞추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삼국사기』 편찬자들이 왜 이렇게 복잡한 계산법을 동원해야 했는지는 물론 설명하지 않았다.

 

오타 아키라 주장의 압권은 ‘여러 개의 거울론’이다. 그는 “『삼국사기』 「신라본기」의 왜국관계의 기사는 거울을 세 쪽으로 놓고 가운데 물건을 세운 것처럼 반영한 것이 또 반영하여 하나의 사건이 두 개도, 세 개도, 네 개도 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앞서 인용한 파사왕이 재위 27년에 “마두성주에게 명해서 가야를 정벌하게 했다”는 기사는 신공왕후가 신라를 정벌한 사실을 그렇게 적었다는 것이다.

 

거울을 여러 개 놓고 그 보이는 모습을 제각각 적는 식으로 『삼국사기』를 썼다는 것이다. 오타 아키라의 ‘여러 개의 거울론’은 그의 정신상태가 정상이 아님을 짐작하게 한다. 아니면 최재석 교수의 분석처럼 “그 스스로 미로를 헤매다 보니까 무엇이 무엇인지 알 수 없어서 ‘세 개의 거울’이란 기발한 발상을 만든 것”일 것이다. 한때 강단사학계의 주류였던 고 이기백 교수는 “쓰다 소키치·오타 아키라·이마니시 류 등의 『삼국사기』 비판은 근대적·학문적이고 엄격한 비판이며 철저한 비판이다”라고 높이 평가했다. 현재 한국 강단사학이 딱 그 수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