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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역사를 말하다] 허왕후는 인도에서 왔을까

수로왕과 허황후③

 

 

◇아유타국은 일연의 창작인가?

허왕후의 고국이 어디인지는 지금껏 숱한 논쟁을 불러오고 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허왕후의 출자국(出自國)이라는 아유타국(阿踰陁國)이 과연 인도인가 하는 점이다. 북한 학자 김석형은 《초기조일관계사연구》에서 허왕후가 아유타국에서 왔다는 것은 승려들이 윤색한 것이고 실제는 큐슈에 있던 가야의 분국에서 왔다고 주장했다. 《삼국유사》를 편찬한 인물이 승려인 일연인 것은 사실이다. 또한 《삼국유사》에 불교 관련 내용이 많이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삼국유사》 〈가락국기〉를 승려들이 윤색했다고 주장하려면 보다 구체적인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일연은 《삼국유사》의 모든 기록을 출전 근거를 가지고 서술했다. 순도(順道)가 고구려에 불법을 전한 내용을 기록한 《삼국유사》 〈흥법(興法)〉 ‘순도조려(順道肇麗)’에서 “순도 다음에 법심(法深)·의연(義淵)·담엄(曇嚴) 등이 서로 뒤를 이어 고구려에 불교를 일으켰다”고 쓰고서는 “그러나 고전(古傳)에는 기록이 없으므로 감히 여기에 순서에 넣어 편찬하지는 않는다”라고 덧붙이고 있다. 고구려 소수림왕 2년(372) 전진(前秦) 국왕 부견(符堅)이 순도를 보내 고구려에 불교를 전한 후에도 법심·의연·담엄 등이 고구려 불교를 부흥시켰지만 고전(古傳)에 구체적 기록이 없기 때문에 더 이상 기록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삼국유사》 〈가락국기〉에서 일연은 ‘고려 문종(재위 1046~1083) 때 금관지주사(金官知州事)로 있던 문인이 쓴 것을 간략하게 싣는다’라고 출처를 밝혔다. 자신이 창작한 것이 아니라 금관(金官:김해)의 지주사로 있던 문인이 쓴 것을 옮겼다는 것이다. 일연은 《삼국유사》를 쓰면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한 부분은 주석으로 다루었다. 수로왕의 신하인 유천간(留天干)이 왕후를 기다렸던 망산도(望山島)에 대해 “망산도는 서울 남쪽의 섬이다”라는 주석을 달고 신귀간(神鬼干)이 왕후를 기다렸던 승점(乘岾)에 대해 “연하(輦下:도읍에 속한 지역)의 나라다”라는 주석을 달았다. 자신의 견해는 주석으로 처리했고, 《삼국유사》는 일연의 주석을 본문 글자의 1/2의 크기로 작게 쓰고 있다. 〈가락국기〉의 허왕후 관련 기록에서 일연이 주석을 단 것은 이 대목뿐이다. 이 주석들만이 일연의 생각이고 나머지는 금관지주사가 쓴 것을 그대로 옮긴 것이다. 금관지주사가 쓴 〈가락국기〉에 ‘아유타국(阿踰陁國)’이라는 쓰여있는 것을 그대로 적었지 일연이 창작한 나라명은 아니다. 가야계가 일본 열도에 진출해서 여러 분국(分國)을 세운 것은 사실이지만 허왕후가 큐슈에서 왔다고 주장하려면 추측 이외의 구체적 사료를 제시해야 할 것이다.

 

◇파사석탑은 어디에서 왔나

 

 

《삼국유사》 〈탑상(塔像)〉편에 나오는 ‘금관성 파사석탑(婆娑石塔)’은 허왕후의 모국을 찾는데 도움을 주는 사료다. 그 내용을 보자.

“금관(金官:김해) 호계사(虎溪寺)의 파사석탑(婆裟石塔)은 옛날 이 읍이 금관국이었을 때 시조 수로왕의 비(妃)인 허황후(許皇后) 황옥(黃玉)이 동한(東漢) 건무(建武) 24년 무신(서기 48)에 서역(西域)의 아유타국에서 싣고 온 것이다.”

《삼국유사》 〈가락국기〉에는 ‘아유타국’이라고만 썼는데, 〈금관성 파사석탑〉에는 ‘서역의 아유타국’이라고 보다 구체적으로 쓰고 있다. 서역이라는 용어는 중국 한나라 정사인 《한서(漢書)》에 처음 등장하는데, 한나라 서쪽 지역이라는 뜻이다. 당시에는 현재의 신강 위구르 자치구 지역에 있던 서른여섯 나라를 지칭하는 용어였는데 점차 지칭 범위가 넓어져 서투르키스탄, 서아시아, 소아시아 등지까지 확대되었고, 남쪽의 인도까지 확장되었다.

《고려사》에는 현종(顯宗) 15년(1024) 9월조에 “대식국(大食國)의 열라자(悅羅慈) 등 100인이 와서 방물(方物:그 나라 물건)을 바쳤다.”는 기록이 있는데, 그 주석에 “대식국은 서역(西域)에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때의 대식국은 중동에 있던 사라센 제국을 뜻한다. 《고려사》 〈악지(樂志)〉 속악(俗樂) ‘무애(無㝵)’에도 ‘서역’이 나온다. 속악은 고려의 전통무용을 뜻한다. 무애는 곧 무애무(無㝵舞)를 뜻하는데 무애사(無㝵詞)라는 노래를 부르면서 추는 춤이다. 무애무는 조선 때 향악(鄕樂)에 딸린 궁중 무용이 되었는데, 무용수 열두 명이 추는 춤이었다. 두 무용수가 앞에서 호로(葫蘆:표주박 같은 악기)를 쥐고 마주섰다 등지면서 율동을 하면 열 명의 무용수들이 주악에 맞추어 자리를 바꾸며 춤추고 노래하는 집단무용극이었다. 《고려사》 〈악지〉는 “무애라는 놀이는 서역(西域)에서 시작되었다.”면서 “그 가사에는 불가의 말을 많이 쓰고 있고 또 방언(方言)도 섞여서 편집해서 기록하기 어렵다.”고 설명하고 있다. 고려 속악(俗樂) 무애가 서역에서 왔다는 것이다. 무애 가사에 불가의 말을 많이 쓰고 있다는 점에서 여기에서 말하는 서역은 인도일 가능성이 높다.

 

◇인도의 아요디아 왕국

김해 수로왕릉을 납릉(納陵)이라고도 부르는데 여기에 물고기 두 마리가 그려진 쌍어문(雙魚紋)을 허왕후의 출자국을 인도의 아요디아 왕국이라고 해석하는 근거로 삼기도 한다. 악(惡)을 막는 기능이 있다는 쌍어문이 인도 아요디아 왕국의 문장이라는 것이다. 고대 인도어인 드라비다어로 물고기를 ‘가락’이라고 한다는 것도 무심코 넘길 일은 아니다. 납릉의 쌍어문이 조선시대 그려졌다는 반박도 있지만 그림은 조선시대에 그려졌다고 해도 쌍어문의 유래 자체는 훨씬 이전부터 시작되었을 수 있다는 점에서 충분한 반박은 되지 못한다. 허황후가 인도에서 왔다는 물증의 하나로 주목되는 것이 파사석탑이다. 《삼국유사》 〈금관성 파사석탑〉조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처음 공주가 부모의 명을 받들어 바다를 건너 장차 동쪽으로 가려 했는데 파도신이 화가 나서 막는 것을 이기지 못하자 돌아가 부왕(父王)에게 말했다. 부왕이 이 탑을 싣고 가라고 명하니 이에 날래게 건널 수 있어서 남쪽 해안에 와서 정박하였다. 붉은 돛과 붉은 깃발과 주옥(珠玉) 등 아름다운 것을 실었는데, 지금 주포(主浦)라고 부른다. 처음 언덕 위에서 비단 바지를 벗은 곳을 능현(綾峴)이라고 하고, 붉은 깃발이 처음 들어온 해안을 기출변(旗出邊)이라고 한다(《삼국유사》 〈금관성 파사석탑〉)”

최근 고려대 산학협력팀은 국립중앙박물관의 의뢰를 받아 〈김해 파사석탑의 암석학적 특정분석 및 산지 추정 분석결과 보고서〉를 제출했다. 석탑의 재질은 엽랍석(葉蠟石:pyrophyllite)을 함유한 사암인데 엽랍석은 약 200~300도의 고온성 산성 열수로 생성된 2차 변질광물이다. 연구진은 “파사석탑에 사용된 암석의 산출지는 한반도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는 잠정 결론을 내렸다. 경남 밀양이나 전남 완도군 노화도에서도 엽랍석이 산출되지만 이 두 곳의 암석은 화산암 계통이고 파사석탑은 퇴적암(사암)으로 서로 다르다. 2010년 KBS 역사스페셜 ‘최인호의 역사추적 제4의 제국 가야’를 제작했던 취재진은 한반도에서는 파사석탑의 재질을 찾지 못한 반면 인도에서 동일한 재질을 확인하기도 했다.

언어를 통한 연구도 있다. 인도 남동부의 타밀족이 사용하는 타밀어(Tamil Language)와 한국어가 유사하다는 것이다. 타밀어는 고대인도어인 드라비아어족의 대표적인 어족인데, 2015년 11월 6일 인도 남부의 첸나이 주재 한국 총영사관과 국제타밀연구소(IITS)가 공동 주최한 한국 인도간 고대문화교류 세미나에서 한국타밀연구소의 김정남 소장은 ‘한민족과 타밀족간 언어 및 풍습의 유사성과 그 기원에 관한 연구’를 발표했는데 한국어와 타밀어 사이에 발음과 뜻이 같거나 유사한 단어 500여개를 소개했다. 또한 허황후의 후손으로 추정되는 김해 예안리 고분 등의 왕족 유골에서 미토콘드리아 DNA를 분석한 결과 인도인의 DNA 염기서열과 가까웠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영국 공영 방송 BBC가 2018년 11월 4일 뉴델리지국발 기사로 ‘한국의 왕비가 된 인도공주’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허왕후가 인도에서 왔을 가능성이 점점 커져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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