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대 진영 후보에 대한 ‘네거티브 공세’는 선거 시즌이 돌아올 때마다 정치인들에게 참을 수 없는 강한 유혹 중 하나로 다가온다.
대부분 사람들의 뇌리에는 긍정적인 메시지보다 부정적인 메시지를 더욱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선명하게 뇌리에 남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역대 대선 중에도 네거티브 전략은 빠짐없이 등장했다. 이에 역대 대선 중 경선 과정에서 일어난 굵직했던 네거티브 선거 사례를 꼽아봤다.
1. 당내 경선에서 불거진 노무현 후보 색깔론에 삐라까지 등장
16대 대통령 선거에 후보를 배출하기 위한 새천년민주당의 경선에는 이인제 후보가 노무현 후보에게 색깔론 공세를 펼쳤다.
당시 민주당에는 이인제 대세론이 자리잡고 있었다. 2002년 3월 경선 직전 여론조사에서 1~2% 지지율에 불과했던 노 후보가 이 후보를 꺾고 경선을 통과한다는 것은 누구도 상상 못했던 일이다.
그러나 정작 뚜껑을 열자 판세는 전혀 달랐다. 2002년 3월 9일 첫 경선 지역이었던 제주도 표결 결과 한화갑 후보가 이 후보를 꺾고 1위를 차지해 이변을 일으키더니 울산과 광주에서는 모든 예상을 깨고 노 후보가 1위를 거머쥐며 선거 판도를 뒤집기 시작했다.
이에 이 후보는 노 후보를 향해 색깔론 공세를 펼치기 시작했다. 노 후보의 부인 권양숙 여사의 부친 좌익 활동 의혹이 대표적이었다.
또 이 후보 측으로부터 “노무현 후보가 기자들과 만나 메이저 신문을 국유화하고 동아일보를 폐간시키겠다고 말했다”는 확인되지 않은 사실도 나오면서 색깔론 공세는 절정에 달했다.
노 전 대통령을 향한 색깔론은 보수성향이 강한 강원도 지역 경선을 하루 앞두고는 갑자기 노 후보와 그의 장인을 향해 ‘빨갱이’라고 비방하는 내용의 전단인 ‘삐라’가 길거리에 붙기도 했다.
당시 노 후보의 지지 세력인 노사모는 상대 지지자들과 충돌을 일으키지 않기 위해 한 밤중에 전단을 떼어내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이와 같은 색깔론 공세에 노 후보는 정공법을 택했다. 그리고 노 후보는 이후 진행된 인천광역시 경선에서 후대에 회자될 명대사를 남긴다.
“그렇게 하면(아내를 버리면) 대통령 자격이 있고, 이 아내를 그대로 사랑하면 대통령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까? 여러분, 이 자리에서 여러분께서 심판해주십시오. 여러분이 그런 아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판단하신다면 저 대통령 후보 그만 두겠습니다. 여러분이 하라고 하면 열심히 하겠습니다.”
노 후보의 ‘그럼 아내를 버려야 합니까?’라는 연설에 이 후보의 색깔론 공세는 결과적으로 힘을 받지 못했다.
인천 경선에서 노 후보는 1022표(51.9%)를 득표하며 1위를 차지했다. 반면 이 후보는 총 득표 816표(41.4%)로 2위를 차지하며, 종합투표에서도 노 후보와 438표 차로 벌어졌다.
이 후보는 결국 부산 경선을 앞 두고 후보 사퇴를 선언했고, 두 달 간의 경선 결과 노 후보가 70.5%의 득표율로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당선된다.
이후 경선에서 대역전극을 쓴 노 후보는 본선에서도 정몽준 후보의 막판 '단일화 폐기'로 인해 기성정치에 실망을 느낀 민심을 얻게 돼,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된다. 이인제 후보는 16대 대선을 불과 18일 앞두고 탈당한다.
2. 네거티브 그 자체였던 2007년 한나라당 경선

17대 대선의 한나라당 경선 과정은 한 마디로 ‘네거티브’ 그 자체였다.
17대 대선을 앞두고 참여정부는 부동산 정책 등의 실패로 정권 심판이 대세를 이뤘고 여당이던 열린우리당의 2004년 이후 열린 모든 선거는 참패를 기록하고 있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 한나라당 안팎에서는 ‘경선에서 승리한 후보가 대통령 된다’는 말이 돌기 시작했다.
이에 당시 빅2로 구분됐던 박근혜 후보와 이명박 후보 간의 치열한 경쟁이 예고됐고, 이는 현실이 됐다.
먼저 박 후보는 이 후보의 재산 문제에 집중했다. 당시 수백억원대에 이르는 이 전 시장 재산을 거론하는 것만으로도 기대 이상의 소득을 얻을 것이라는 것이 박 후보의 계산이었다.
특히 2000년대 초 주가를 조작해 소액주주 5200명에게 384억원의 피해를 입히고 300억원대를 횡령한 희대의 사기 사건의 한 가운데에 있었던 투자기업 BBK의 실소유자가 이 후보라는 의혹에 집중했다.
이 후보는 BBK 의혹에 “새빨간 거짓말”이라며 수 차례 ”BBK와 관련해서는 단 한 주의 주식도 갖고 있지 않으며, 직접이든 간접이든 관계가 없다”고 BBK와의 연루 의혹설을 전면 부인했다.
또 검증 과정에서 의혹을 제기했던 몇몇 의원들은 당 윤리위원회에 제소돼 중징계를 받거나, 수사를 받는 등 강경대응에 나서기도 했다.
박 후보는 이 밖에도 이 후보의 1998년 선거법 위반 전력, 도곡동땅 차명보유 의혹, 다스 실소유 의혹 등을 봇물처럼 터뜨리며 이 후보를 압박해 나갔다.
이에 이 후보측도 박 후보에 대한 ‘네거티브 공세’로 맞섰다.
최대 쟁점은 박정희 정권 시절 정수장학회 강탈 의혹과 이사장 선출에 박 후보가 개입했다는 의혹, 故 최태민 목사 일가와 박 후보 간의 관계와 최 목사의 권력형 비리에 대한 의혹 등이었다.
이에 박 후보는 “2005년 2월 이사장직을 사임한 이후 장학회의 운영이나 이사진 구성과 관련해 어떤 영향력도 행사한 사실이 없다”며 정수장학회 강탈 의혹에 대해서도 “동의하지 못한다”고 맞섰다.
또 최태민 비리 의혹에 대해서는 검증청문회를 통해 “최태민 비리 의혹은 실체가 없는 일”이라며 “다만 앞으로 실체가 있는 게 나온다면 굉장히 유감이고 잘못”이라고 답했다.
치열한 진흙탕 싸움 끝에 이 후보는 48.6%를 얻어, 박 후보(48.1%)를 1.5%p 차이로 승리했다. 선거인단 투표는 박 후보가 49.39%가 0.33%p 앞섰으나, 여론조사에서는 이 후보가 8.82%p 앞섰다.
두 후보간의 경선 과정은 치열했으나 ‘네거티브’로 점철되며 당시 전문가들은 두 후보의 폭로 과정 속에서 정책 대결과 민생 논의가 빠져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때 제기된 의혹들 대부분은 그로부터 13년 후 사실로 드러나며 두 후보 모두 법정에 서게 되는 장면이 연출됐다.
[ 경기신문 = 박환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