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에는 3.1운동에 참가했고 신문 연재소설 '찔레꽃'과 '밀림'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작가, 해방 후에는 공창 폐지 등에 앞장선 여성 운동의 선구자, 그리고 기독교 교회 최초의 여성 장로, 예술원 최초의 여성 회원으로 역사는 나 김말봉(金末峰 1901~1961)을 수식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첫째 남편과의 사이에 딸 하나, 둘째 남편의 전처소생 둘과 내가 낳은 세 자녀, 셋째 남편의 전처소생 셋과 내가 낳은 두 자녀, 이렇게 모두 11명의 자녀를 키워낸 어머니로서의 일생이 가장 힘들었고 또 보람도 가장 컸다.
나는 1901년 부산에서 딸 3형제의 막내로 태어났다. 그 시절 많은 부모가 그러했듯, 부모님은 아들을 바라는 마음에서 나를 말봉(끝봉)이라 이름 짓고 사내 옷을 입혀 사내처럼 키웠다.
부산 일신여학교(동래여중고) 3학년을 수료하고 상경하여 정신여학교에 편입, 1918년 졸업하고 황해도 재령 명신여학교의 교사가 되었다. 다음 해 황해도의 3.1운동 때 학교에서 독립선언서를 등사하고 태극기를 만든 죄로 경찰의 고문을 받아 한쪽 귀가 먹어버렸다. 하와이로 시집간 언니의 도움으로 1920년 도쿄로 건너가 쇼에이(頌榮)고등여학교에 편입하고 1924년 졸업 후 교토의 도시샤 대학 영문과에 입학했다.
내가 젊었을 때의 사진을 보여주지 못해 유감인데, 경향신문(1948.03.07.)에서 모 시인은 대학생 때의 나를 “버들같이 휘영휘영한 몸매와 호수 같은 두 눈과 구슬 같은 목소리로 많은 청년 숭배자를 거느렸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나는 도시샤에 유학 중인 인도 왕자의 세 번째 부인(순위가 높다고 했다!)으로 청혼을 받은 적도 있었다. 모 시인은 정지용이리라. 영문과 동창으로 교토학우회에서 같이 활동했다.
1926년 일시 귀국 때 목포의 변호사 이의형과 결혼하고 1927년 봄 도시샤 졸업 후 목포에서 살았다. 내가 적을 둔 부산 초량교회 당회록에 이런 기록이 있다. “김말봉 씨는 믿지 않는 자와 혼인함으로써 1년간 책벌 하에 두기로 오는 주일에 광고하기로 한다(1926년 3월 20일).”(김인수, '예수의 양 주기철').
목포여성청년회 회장을 맡고 신간회 목포지회 설립시 남편과 함께 간사로 참여하고 근우회 목포지회 설립시 발기인으로 참여하는 등의 사회활동으로 나는 연설을 잘하는 여성계 지도자로 전국에 알려졌다. 그러나 결혼은 오래가지 못했다. 1928년 가을, 백산 안희제, 수주 변영로와의 인연으로 중외일보 기자직을 권유받아 남편과의 관계를 정리하고 경성으로 떠났다.
중외일보에서 일하던 어느 날, 나의 첫사랑이었던 전상범이 하숙집으로 찾아왔다. 초량교회 청년회 활동 때 처음 만난 그는 부산상고를 나온 사업가로, 신앙 활동도 열심인 훤칠한 키의 미남인 ‘교회 오빠’였다. 많은 여성의 사랑을 받았는데 나도 그중 한 여자였다. 하지만 그때 19세의 나는 친한 언니에게 그를 양보하고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다. 몇 년 후 그는 상처를 당했고 다시 재혼한 몸이었다. 지금의 결혼생활이 원만치 않았던지 자신의 마음은 나에게 있다고 했다. 하지만 윤리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는 관계라 나는 그를 돌려보냈다.
그러나 잊으려 해도 내 마음은 계속 그가 있는 부산을 향하기만 했다. 이런저런 우여곡절 끝에 결국 나는 부산에서 상범과 결혼하고 1930년 12월 지인들에게 엽서를 보냈다. “우리가 지난 11월 26일 상오 11시에 영주동 525번지 자택에서 결혼시글 거행하얏삽기 이에 삼가 알리옴나이다. 1930년 11월 29일 전상범·김말봉”(31.01.01. '별건곤')
그는 오륙도가 내려다보이는 좌천동에 방 하나를 집필용으로 마련해 주는 등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렇게 작품도 쓰며 자녀도 낳는 행복한 결혼생활이 이어지는 가운데 1932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망명녀'가 당선되어 부산 출신 첫 신춘문예 당선자가 되었고 1934년 단편 '고행', '편지' 등을 발표하고, 이윽고 1935년 9월 26일부터 우리나라 최초의 대중소설 '밀림'을 '동아일보'에 연재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밀림'을 연재 중이던 1936년 1월 상범이 쓰러졌다. 상범은 그 능력과 인품으로 회사의 중역까지 승진하였으나 연이은 접대 등의 과로 탓인지 장티푸스에 걸려 4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나는 큰 슬픔에 한동안 연재를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전처소생까지 합해 6남매를 부양하기 위해 다방도 해보고 국수집도 해보았으나 장사는 여의찮았다. 그때 상범과 신간회 부산지회에서 함께 활동했던 이종하가 나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었다. 그도 홀로 세 자녀를 키우고 있었기에 다음 해 나는 그와 가족을 합치기로 했다.
그때 조선일보 편집국장 이은상 선생이 소설 연재를 권했다. 고심 끝에 정한 제목은 ‘찔레꽃’. 상범이 생전에 좋아하던 기타하라 하쿠슈 작시의 가곡 '찔레꽃'에서 따왔다. 원곡명은 ‘からたちの花(가라타치노하나)’인데 정확한 번역은 찔레꽃이 아니라 탱자꽃이다. 나의 피아노 반주에 맞춰 상범이 자주 불렀던 노래였다. 그러니 이 소설은 상범이 내게 남긴 마지막 유물이요, 내가 상범에게 보내는 마지막 추도사가 되었다.
'찔레꽃'은 전국적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1937.03.31~10.03). 상범의 전처 딸 혜금은 내가 휘갈겨 쓴 원고를 정서해 주고 매일 마감에 쫓기며 경성행 기차편에 원고를 부치는 일을 도맡았다. 혜금은 1943년 작곡가 금수현과 결혼했는데 금수현의 가곡 '그네'의 노랫말은 내가 지었다.
손기정 올림픽 일장기 사건으로 정간 중이던 동아일보는 경쟁사 조선일보가 '찔레꽃'으로 판매부수가 계속 늘어나는 것을 애타게 바라보다가 마침내 '찔레꽃' 연재가 끝나자, 중단되었던 '밀림'의 연재를 1937년 11월 1일부터 재개했다. 1938년 2월 7일자로 전편을 마치고 잠시 쉬다가 후편을 1938년 7월 1일부터 1938년 12월 25일까지 연재했으나 미완으로 끝났다. 이후 일제가 일본어로 작품을 쓸 것을 강요하는 등의 압박을 해왔기에 나는 아예 집필을 중단하고 해방 때까지 가정에 전념했다.
해방 후에는 서울로 이주하여 집필 외로 공창 폐지 등의 사회운동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공창 폐지의 주장을 담은 '화려한 지옥' 등 해방 후의 소설은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사회운동의 주장이 많이 담겼다.
남편 이종하와 나는 아나키스트의 독립노농당에 들어가 각기 노농부장과 부녀부장으로 피선되었다. 부녀부장의 자격으로 나는 폐업공창구제연맹을 결성하고 회장을 맡아 성매매 피해 여성 대책과 공창 폐지에 나섰다. 일신여학교 동창 박순천을 비롯한 여성 지도자들과 함께 입법 활동에 나서 마침내 1947년 11월 14일 공창폐지령이 공표되었다.
6·25전쟁 때는 부산에서 살며 나 또한 아들 영이가 전사하는 슬픔도 겪었으나 내 집을 찾아온 반공포로 김태영(1933~ 소설가)이 마치 아들의 분신과도 같이 느껴져 모자지간의 연을 맺었고, 김동리, 박인환 등 많은 피난 문인을 도와주기도 했다. 1952년 9월에는 베니스 세계예술가대회에 참가해 한국의 참상을 널리 알렸고 1955년에는 미 국무성 초청으로 1년간 신학교 유학을 겸해 미국을 둘러보며 펄벅 작가 등을 만나고 돌아왔다.
1957년 예술원 회원에 투표로 당당히 여성 최초로 선출되었고, 동년 서울 성남교회에서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장로가 되었다.
셋째 남편 이종하를 1954년 먼저 망우리묘지로 보내고 나는 많은 자식의 뒷바라지를 위해 심할 때는 연재를 서너 개나 동시에 집필하고 교회와 사회활동도 지속하는 바쁜 나날을 보내다가 마침내 폐암에 걸려 1961년 2월 9일, 친지들의 찬송가와 기도 속에 60년의 파란만장한 삶을 회상하며 눈을 감았다.
망우역사문화공원의 휴게시설인 망우공간에서 북쪽으로 난 묘지 길로 들어서면 이정표가 나타나고 그 앞 2시 방향 100미터쯤 아래에 사각 비석이 보인다. 비석 앞면에는 “작가 김말봉 장로지묘(한문)” “마음 깊은 곳에 숨어 있는 / 푸른날개에서”라고 적혀 있다. '푸른 날개'는 1954년 조선일보에 연재된 소설이고 1959년 3월 영화로도 개봉되었다.
찔레꽃의 꽃말이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라고 하는데, 나의 묘역에 찔레꽃이 가득 피어났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