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춘추시대 노나라 사람으로, 공자의 친구인 현인 유하혜(柳下惠)의 동생이다. 그러니까 대략 2500년 전 인물이다. 9000명이나 되는 졸개들을 거느리고 전국을 종횡무진하며, 재산약탈, 양민학살, 식인, 부녀자 학대 등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특수강도였다. 맹자, 장자, 사마천의 사기에도 나온다. 도척은 이름처럼 '최고의 도적'으로 2500년 동안 특별한 존재다. 공자가 그 형의 간곡한 부탁을 받고 사람 만들어주겠다고 만난 적이 있다. 놀랍게도, 공자는 도척의 긴 시간 훈계를 들은 뒤 심한 모욕을 당하고 쫓겨났다. 공자가 수레에 탄 뒤에도 머리를 숙이고 부들부들 떠는 장면이 장자 잡편에 상세히 나와 있다. 훗날, 장자의 제자들이 '소설 쓴 거'라는 설이 있다. 왕초와 부하들과 나눈 대화다. "도둑에게도 도(道)가 있습니까?" "그 어디를 가봐라. 길이 없는 곳이 있는지... 집안에 재물이 어디에 있는지, 그걸 정확히 찾아내는 것은 성(聖)스럽다. 앞장서는 것은 용기(勇)다. 다 털고 가장 늦게 나오는 것은 의리(義)다. 과업을 실행할지 말지 판단하는 것이 지혜(智)며, 목표를 이룬 뒤에 공평하게 나누는 것이 어짊(仁)이다. 이 다섯 가지 道(聖勇義智仁)를
'동장군'(冬將軍)이라고까지 높여 부르는 삭풍혹한도 입춘, 우수에 이어 개구리처럼 동면하던 생명들이 여기저기서 기지개 켜는 경칩이 되면 무장해제한다. 자연의 법칙이다. 꽃들도 제각기 볼록한 가슴을 열어 자부심을 뽐낸다. 모두가 양춘가절(陽春佳節)의 주역으로 생명축제의 들판에 진출하는 것이다. 봄은 기화요초(琪花瑤草), 만화방창(萬化方暢)의 시간이다. 선남선녀들은 두터운 겨울옷을 벗어던지고 산야대지로 뛰어나가 약동하며 그 맹추위의 기나긴 억압을 떨치려 한다. 이 자유는 흡사 해방을 맞은 식민지 민초들에게 주어진 고귀한 선물과 같다. 이때 거르지 않고 찾아오는 불청객이 있으니 그 이름은 '꽃샘추위'. 4월에도 마치 한겨울로 되돌아간 듯 맵찬 눈보라가 몰아친다. 나의 군복무 시절, 강원도 화천 대성산에는 5월에도 눈이 내렸다. 꽃샘추위는 우리의 인생에도 봄 속에 겨울이 있고, 겨울 속에 봄이 있음을 극적으로 가르친다. 그 어느 날 칼바람 불던 새벽. 보초교대하고 하산, 행정반에 신고하러 내려가는데, 조리하는 냄새가 멀리까지 진동하였다. 개구리 매운탕이었다. 와공 일당은 긴 겨울잠을 멈추고 기어 나오던 날 팽형(烹刑)을 당하여 전방병사들의 술안주가 된 것이다. 이
'제폭구민'(除暴救民)과 '보국안민'(輔國安民)은 1894년 동학농민혁명의 궁극적 목표였다. 민비와 그 척족이 권력을 쥐고 농단하는 동안, 나라는 늘 풍전등화였고, 조선을 집어삼키려고 싸우던 외세(청나라와 일본)는 그 존재자체가 생존의 위협이었다. 전봉준은 그 일체의 학정과 위협을 사즉생과 임전무퇴의 정신으로써 대항해야 할 폭력으로 인식했다. 그것이 동학농민혁명의 동기다. 그 폭력을 제거해야만 '차라리 죽는 게 낫다'는 백성을 구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것이 나라를 돕는 일이며, 그 때 비로소 씨알들의 삶이 편안해진다는 것이 동학군의 신념이었다. 전봉준과 농민군은 고부에서 시작하여 전주까지 파죽지세로 달려갔다. 관군에게 압승을 거둔 농민군은 혁명전사로 변했다. 그 마음으로 우금치까지 폭풍 진격했다. 아쉽게도 거기까지였다. 겨우 200명의 일본군과 3000명의 관군이 연합하여 2만명의 동학군을 전멸한 것이다. 대포와 최신형 기관총으로 공격하는 일본군에게 화승총과 죽창으로 대항한 '아군'의 패배는 예정된 것이었다. 130년 전, 그 조상들이 당했던 폭력은 치명적이었다. 안팎으로, 무능하고 악마적인 왕조와 외세(청나라와 일본)는 잔인무도한 폭력집단이었다.
텔레비전을 없앤 지 20년째다. 당시 애들 엄마는 드라마 작가, 나는 정치컨설턴트였다. 세 아이 모두 초등학생이었는데, 어느 날 오후, "이 놈들이 TV에 중독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곧바로 리사이클링업체에 주었다. 물론 과격했다. 애들은 잠시 금단증세를 보이더니 이내 받아들였다. 그 해 여름 한일 월드컵 때, 놈들은 온 세상이 왜 붉은 티셔츠 입고 미쳐서 소리 지르며 뛰어다니는지 모른 채 그저 눈 동그랗게 뜨고 놀라워했다. 그 표정들 잊을 수 없다. 요즘 우연히 소위 '먹방'을 접할 때가 있는데, 그 프로그램에 배치된 거구의 연예인들과 그 기획의도를 보며 식욕이 동하기는커녕, 측은지심과 함께 화가 치민다. '폭식'은 단순히 식도락이 아니다. 정치 경제의 으뜸주제를 그토록 탐욕적이고 희화적으로 추락시켜 긴 시간 전파를 낭비하는 건 옳지 않다. 먹고사는 일의 품격을 높이자. 폭식은 우선 자학이며, 굶주린 사람들을 희롱하고 고문하는 폭력이다. 그로 인한 비만은 정신병이다. 다양한 먹거리들의 특징과 장점, 검증된 약성(藥性) 등을 재미있게 알려주면 안되나. 그 협찬금의 일부를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위하여 기부하는 걸 병행하는 건 어떨까. 단 한번이 아
어머니께서 7년째 병원신세를 지며 힘들게 사시다가 하늘나라로 돌아가셨다. 1935년생 88세, 미수(米壽)시다. 아들과 마지막 통화하시고 한 시간 뒤에 눈을 감으셨다. 나는 그 이틀 전 병원측의 협조로 어머니 곁에서 하룻밤을 꼬박 새웠다. 행운이었다. 임종의 도리도 지키기 힘든 시대다. 돌이켜보면, 아버지 돌아가신 뒤로 빠르고 현저하게 어머니의 체력이 약화되었다. 어머니는 마침내 혼자서 걸을 수 없어 누군가의 부축을 받아야만 짧은 거리나마 어렵게 이동할 수 있었다. 그다음으로는 화장실 출입이 고난도 프로젝트가 되었다. 최근에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서 식사나 자잘한 목적을 위하여 움직이는 게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기능이 전반적으로 제로로 향하는 마지막 시간이었다. 최근에는 구급차를 불러야할 응급상황이 빈발했다. 특히 승하차 과정이 정말 위태로웠다. 그 길고 험난한 시간을 동생이 24시간 보초병처럼 어머니를 보살폈다. 큰 상금이나 무공훈장을 준다고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 사명을 자발적으로 감수한 그 아들에게 어머니는 큰 복을 주실 것이다. 그 특별한 보살핌이 자발적이지 않다면 이는 단지 억울한 희생이고 노예 노동일뿐이다. 이 미담을 세상이 알면 좋겠다는 생각
세상에서 최악의 통증 세 가지를 꼽아보라면, 대개는 자신이나 가족이 겪은 병치레를 근거로 답할 것이다. 나는 통풍(痛風), 산통(産痛), 참척(慘慽)의 고통을 꼽는다. 참척은 부모 앞에서 자식이 먼저 죽는 비극을 말한다. 악상(惡喪)이라고도 한다. 이 셋 가운데 가장 아픈 병은 무엇일까. 하나를 고르라면 나는 통풍이라고 답할 가능성이 높다. 현재 통풍을 앓고 있거나 심하게 앓았던 사람들은 이 문답을 어리석다고 무시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서른 살 때 처음 어느 날 밤, 원인을 알 수 없는 무시무시한 통증을 겪었다. 6.25처럼 그날 잊을 수 없다. 병원에 가서 통풍이라는 관절염인 걸 알게 되었다. 이후 20년 동안 나의 투병사는 과장 없이 핏빛이다. 처절하고 혹독했다. 어린 딸 앞에 두고 울었다. 초반에는 1년에 두세 차례, 나이 들면서는 분기에 한 번, 이후에는 한 달에 두세 번 강력한 공격을 받았다. 그때 나는 통풍 환자들이 모인 세상이 바로 지옥이라고 주장했다. 마취하지 않고, 엄지발가락 첫 마디에 송곳을 찔러 박은 채 사나흘 동안 흔들면서 좌우로 돌린다고 가정해보라. 단 1초도 쉬지 않고 지속적으로. 바로 그 통증이다. 해병전우회처럼 그래서 통풍환자들
Benefit Corporation! 최근 친구의 권유로 『비즈니스 혁명, 비콥』(크리스토퍼 마퀴스著)을 읽었다. 놀라웠다. 저자는 하버드와 코넬에서 15년 넘게 기업의 사회책임론을 가르치는 교수다. 푹 빠져 읽게 된 사연은 좀 거창하다. 인류사회를 종말론적 염세주의에 빠뜨리고 있는 기후위기뿐만 아니라, 날이 갈수록 심화되는 1:9의 불평등 세상, 신자유주의의 난폭함, 노예시대와 다름없는 저질 고용시장 등 시대적 난제들을 경영목표로 삼아 이를 해결하고 있는 특별한 그룹에 대한 연구보고서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GM IBM 삼성 등 전통적인 기업들은 물론 아마존 구글 테슬라 등도 자본가들은 인색한 품삯으로 일을 시키고 그 과실을 독차지한다. 자본주의는 이렇게 소수 주주들을 巨富(거부)로 만들어주기 위해 쉬지 않고 돌아가는 컨베이어벨트다. 씨알들은 그 대가로 간신히 연명하면서 대를 이어 남루와 궁상을 숙명으로 여기는 슬픈 족속이다. 드디어 대안이 출현했다. 비랩(B Lab)이다. 2006년 스탠퍼드대학 출신의 친구들 셋이 뭉쳐서 중환의 자본주의를 극복하고 세상을 구할 거대담론 끝에 비영리단체를 창립한 것이다. 2007년 비콥을 설립하여, 위대한 도전을 시작했
문재인 대통령이 우리도 이제는 개고기를 먹는 걸 그만둘 때가 되지 않았냐, 면서 임기말에 매우 민감한 사안을 제기했다. 개나 고양이 등을 가족으로 여기며 함께 사는 반려인구가 1500만 명이 넘는다. 대선후보들의 당락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언론이 지금 '품격 저널리즘'까지는 아니더라도, 전반적으로 비교적 공정하고 이성적이며 상식적이라면, 윤석열 후보는 소위 '개사과' 논란만으로도 낙마할 수 있었다. 자멸적으로 황당무계하고 불가사의한 언동이 날마다 벌어져도 그가 건재한 것은 이번 대선과정에서 제일의 특징이다. 개를 자식과 다름없이 키운다는 그는 또 반려견과 식용견을 구분하는 망언을 했다. 자가당착이다. 바보 같지만, 교활하다. 이에 이재명 후보를 지지하는 동물정책연대는 "사람에게 먹히기 위해 태어나는 개는 없다"며 심지어 후보사퇴를 요구하기도 했다. 지지율은 그대로다. 나는 채식주의자다. 고기를 먹지 않으면 훗날 건강에 치명적인 상황이 발생한다면서 걱정과 충고를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들에게 고맙지만 이 길을 멈출 마음은 없다. 변함없이 이렇게 가다가, 어느 날 낙엽지듯 소리없이 쓸쓸하게 이번 생을 마치고 싶다. 아래의 체험이 초식 인생의 결정적 계기가
선생은 당대 러시아 소설가로서 대문호 톨스토이와 솔제니친 등을 잇는 현존 최고의 작가다. 1939년생으로 여든 살이 넘었지만, 여전히 정력적으로 쓴다. 카자흐스탄에서 태어나 모스크바 미술대학, 고리끼 문학대학에서 공부했다. 6공 때 한-러 수교 덕분에, 1989년 9월, 세계 한민족 체전 참가자의 일원으로 우리 정부가 보낸 전용기를 타고 '조국' 땅을 밟는다. 100년 만의 귀향이었다. 그는 돌아가면서 친구 인 번역가 김근식 교수에게 자신의 뿌리를 확인해줄 것을 부탁한다. 그 얼마 후 실로 경천동지 할만한 편지를 받게 된다. "고개 숙여 존경하는 시인이여! 이렇게 하여 나는 당신의 후예임을 알아내고 한없이 기뻤습니다. 이제 내 운명에서 풀리지 않았던 많은 수수께끼가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스스로의 결심과 행동으로 자신의 운명을 이끌어왔던 나는 결국 많은 면에서 당신의 길을 따랐던 것입니다. 이 놀 라운 소식에 형언키 어려운 기쁨을 느끼면서도 어이하여 나는 울적한 마음을 금치 못하는 것일까요?" 김시습이 아나톨리 김의 17대 직조(直祖)였던 것이다. 이 문장은 선생이 당시 한 일간지에 기고했던 에세이 "나는 한국인인가, 러시아인인가?"의 첫대목이다. 그 기사를
"국가 지도자들이 수십 년간 쓸데없는 소리만 해왔다. 이렇게... blah blah blah. blah blah blah. 오늘의 진실은 기후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지도자가 없다는 것이다." 이는 마치 어느 정치평론가가 대한민국 현대사와 기후이슈를 묶어서 함께 비판한 것 같다. 아니다. 10월 31일 영국의 글래스고에서 열리는 유엔기후협약 당사국 회의를 앞두고 18세 소녀 그레타 툰베리(2003년생)의 가디언지 기고문의 일부다. 모두들 알다시피, 인류사회는 2015년 파리기후협약에서 산업화 이전 대비, 1.5°C 수준으로 지구온난화의 상한선을 정했다. 이게 무너지면 돌이킬 수 없다. 끝이다. 과학자들은 오늘날 전세계적으로 유례없는 폭우 폭염 산불 태풍 등의 연쇄적인 이상현상들은 종말론적 재앙을 경고하는 거라고 말한다. 노벨재단이 이 위대한 소녀에게 평화상을 주면 좋겠다. 금년까지 3회째 빗나갔다. 기후위기의 절박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증거로 보인다. 금년 평화상 수상자는 필리핀계 미국인 마리아 레사와 러시아의 드미트리 무라토프. 각각 두테르테와 푸틴에게 저항한 언론인이다. 나는 언론자유보다 기후위기가 백 배 더 긴급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어떤가. 결코 깡패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