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아시아아트쇼2021’이 개막한 18일 시민들이 행사장인 송도컨벤시아를 둘러보고 있다. 한국, 일본, 싱가포르 등 국내·외 작가들의 그림, 조각, 영상 등 다양한 작품 5000여 점을 21일까지 감상할 수 있다. ( 사진 = 인천시 제공 )
인천시 옹진군 백령면 가을리(加乙里)는 위치상 섬 북서쪽에 해당한다. 동쪽은 북포1리(堂後洞 일명 당뒷마을)와 접하며 남쪽은 화동, 서쪽은 연지동(연화1리)과 경계를 마주하고 있다. 가을리는 법정동이며 가을1리(대가을리)·2리(소가을리)·3리(잔대동)의 3개 행정동으로 나뉜다. 2021년 1월 기준 현재 가을1리 78가구 145명, 가을2리 57가구 111명, 가을3리는 44가구 80명이 거주한다. 총 179가구 336명이다. 가을리 일대의 지형을 보면 과거 대가을리와 소가을리는 갯벌(바다)이었기 때문에 돌다리를 놓고 왕래했으며, 대가을리 앞으로는 낮으막한 당산(堂山)을 마주하고 있다. 남서쪽은 갯벌을 간척해 현재는 농경지(논)로 사용하고 있다. 북으로는 업죽산(松封山) 줄기가 동서로 길게 병풍처럼 이어지면서 북풍을 막는 울타리가 되고 있다. 간척사업 이전의 가을1리 지역은 물론 ‘당뒷(당후) 마을’ 앞이나 가을3리의 ‘잔대동’ 장골까지 조수(潮水)가 드나들던 바다였다. 즉 현재 대·소가을리와 잔대동 사이 논으로 경작되는 대부분 지역은 간척지이며, 과거에는 갯벌(바다)이었다. 이 갯벌 지역에서는 무엇이 유명했을까? 지명유래 속에서 그 해답을 찾아보자. ▶ 소
17일 인천시 남동구 장수동에서 열린 이승훈역사공원 조성사업 착공식에서 초청 인사들이 시삽을 하고 있다. ( 사진 = 인천시 제공 )
반세기에 다시 떠올리는 고 최경림(崔京琳) 면장! 한달 전, 북포리 여단 헬기장에서 바라본 백령 들판은 황금빛이었다. 과거 바다의 갯벌이 황금 들녘으로 변하기 시작한 것은 반세기 전부터다. 확 트인 너른 들판은 노란 색깔로 염색한 듯하고, 벼는 자연에 맡긴 듯 바람결에 유려한 자세로 춤춘다. 마치 매스게임을 보는 듯한 백령 들판은 그 자체로 장관이다. 백령도의 별칭 ‘먹고 남는 섬’을 만든 최경림 3대 면장에 관한 얘기다. 그는 1945년 광복 이후 해방공간에서 한국전쟁 동안 정치적 혼란과 격동의 시기에 오로지 백령도 발전을 위해 헌신한 참 면장이다. 1919년 출생했으며, 4남 4녀 중 장남으로 유년 시절은 부친이 배를 운영했기에 바닷가 용기포에 거주했다. 팍팍한 살림이었지만 근검을 토대로 10대 중반 이후 진촌 잿등으로 거처를 옮겨 어린 시절을 보냈다. 백령도에는 마땅한 교육시설이 없었기에 백령초교보다 5년 먼저 개교(1932년)한 대청공립보통학교(현 대청초교 전신)를 다녔다. 졸업 후 19세 되던 해 백령면사무소 서기로 공직생활에 입문했고, 향토개발의 선구자가 되겠다는 큰 뜻을 품고 광복 이후 1946년 3대 면장에 취임했다. 28살이라는, 현재로선 상
▲이범규씨 별세, 이원구(인천시 연수구청 홍보미디어실 언론팀장)씨 부친상 = 청기와 장례식장(인천시 동구 송림동) 특실 301호, 발인 11월18일(목) 오전 7시40분, 장지 부평 승화원 ☎010-2771-9550, 032-583-4444
‘동인천역 낭만시장’ 행사가 13일 동인천역 북광장 일원에서 개막한 가운데 학생들이 옛날 점포를 구경하며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사진 = 인천시 제공 )
국가지질공원인 인천시 옹진군 백령·대청도의 다양한 모습을 사진과 그림으로 만날 수 있는 전시회가 11일 중구 도든아트하우스에서 개막한 가운데 관람객들이 작품을 둘러보고 있다. ( 사진 = 인천섬유산연구소 제공 )
사곶(沙串)에는 세계에서 두 곳만 존재한다는 천연비행장이자 해수욕장(천연기념물 제391호), 먹거리인 냉면과 칼국수 등 관광자원이 즐비하다. 주민의 갱생 의지로 외로움과 가난을 극복하고 일궈낸 촌락이다. 2021년 1월 기준 142세대 297명이 거주하며, 규모는 작지만 육지에 알려진 유명세로는 대도시 격이다. 사곶은 어떤 역사와 문화를 갖고 있을까? ▶ 지명 유래 사곶 마을은 백령도 남동쪽 끝 부분의 해안지대로 용기포 서쪽에 있다. 북쪽은 남산(해발 145m)이 솟아있고 남쪽은 바다와 접하고 있다. 이 마을은 예로부터 ‘살쿠지’, ‘사을곶’ 등으로 불려왔으며 한자로는 ‘沙乙串地’, ‘沙串地洞’, ‘沙串洞’ 등으로 표기돼 왔다. 모두 모래땅 또는 모래땅이 송곳같이 길고 뾰족하게 된 곳이라는 뜻이다. 즉 이 모래땅이 안골뿌리에서 서쪽 끝 사북까지 길게 뻗어나갔다 해 그 같은 지명이 붙게 된 것이다. ▶ 입도조 김해김씨 김두기(金斗己)와 마을 형성 사곶에 최초로 들어와 모래땅을 개척한 입도조(入島祖)는 김해김씨 김두기로 황해도 장연(長淵) 출신이며, 적어도 1753년 이전 즉 18세기 전반기에 들어왔다. 조선 후기 해적의 출몰이 잦아지면서 정부가 백령도에 군사시
박남춘 인천시장이 9일 2022년 국비확보를 위해 서울 여의도 국회를 방문, 이종배 예결위원장과 면담을 마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사진 = 인천시 제공 )
제59주년 소방의 날 기념식이 9일 메타버스를 활용해 시청 접견실에서 진행됐다. 인천소방 관계자들이 박남춘 시장 등과 함께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 사진 = 인천시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