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우리가 마지막으로 만났던 게 4년 전쯤으로 기억하고 있어요. 내 연구실이 있는 수원으로 찾아와 저녁을 같이 먹으면서 지난 얘기를 했었지요. 얼마 전 갑자기 안부가 궁금해 전화를 했더니 번호가 바뀌었길래 무슨 연유가 있겠거니 하고 지내고 있습니다. 범X 스님. 우리가 처음 만난 날을 혹시 기억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어제 일처럼 그날이 기억납니다. 2008년 일겁니다. 광우병 소고기 사태가 우리나라의 모든 이슈를 선점하고 있을 때였지요. 나는 그 당시 한 대학에서 비정규직으로 강의를 하고 있었고 광우병 소고기 사태로 촉발된 시민들의 집단적 저항은 뉴라이트 운동의 실체를 알리는 시민강좌로 이어지고 있었지요. 나 역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기에 내가 몸을 담고 있던 대학에 시민강좌를 개설하였고 소문을 듣고 참석했던 스님과 처음 만났습니다. 이후 서로의 지나온 이야기까지 나누게 되면서 스님이 겪어왔던 그리고 감내하고 있는 수행과 현실 참여의 이중적 상황에 대한 혼란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혹시 기억날지 모르지만 광주의 어느 사찰에 기도승으로 계실 때, 문득 와인 두 병을 들고 찾아갔던 날이 있었습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와인도 떨어지고 거의 새벽에 잠이
매년 연말쯤이면 맞이하게 될 새해에 이루고 싶은 소망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한다. ‘송구영신’이다. 남성들은 금연, 금주 등이 주를 이루고 여성들은 다이어트가 우선순위를 차지하는 듯 하다. 새롭게 무엇인가를 시작하고 하고 싶을 때, 어떤 계기 또는 시점을 특정해야 하는데 보통 해가 바뀌는 시기를 새로운 출발점으로 설정한다.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길, 분수령이다. 어제 뜨는 해가 오늘과 다르지 않고 12월 31일 뜨는 해는 1월 1일에 그대로 오는데 이와 같은 새로운 결심은 왜 새해를 맞이하면서 하게 되는걸까. 아마도 특별한 자신만의 목표를 이루기 위한 ‘심리적 자기의지의 확인조건’ 같은 것일게다. 필자도 40년이 다 되어가는 흡연과의 결별을 위해 새해가 다가오는 시점을 기다리며 의지를 다지곤 했다. 실제로 몇 번은 거의 성공할 뻔 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이 못난 흡연자는 늘 다시 담배를 피울 구실을 찾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굳이 화가 나지 않아도 담배를 다시 피울 명분을 찾기 위해 화낼 일을 찾고 있었고 술자리에서는 누군가 담배 한 대 권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찌질한 나를 보고야 말았던 것이다. 그러고는 늘 스스로에게 핑계를 댔다. ‘최소한 작심삼일은 넘
너무 오래되어 기억조차 가물가물 한 일이다. 나는 그 때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았고 지금처럼 글쟁이가 될 수 있었다. 나는 서울의 작은 시민단체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지나간 일이지만 그때처럼 열정적으로 일을 한 적이 없었다. 그 때는 젊기도 했거니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자부심과 신념이 있었다. 시민단체는 시민의 자발적인 후원에 의해 운영된다. 그러다보니 낮은 임금과 처우는 당연한 노동의 조건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반복되는 클라이언트의 민원은 천천히 지쳐가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했다. 시민단체의 활동 목적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불합리한 현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시민들의 호응과 참여를 독려함으로써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한다는 점일 것이다. 나 역시 이를 충분 이해하고 있었기에 제도 개선을 위한 방법으로 못 다한 공부를 하기로 결정했다. 선술했듯이, 대부분의 시민단체는 노동조건이 열악하며 재정 또한 매우 빈약하기 때문에 나 역시 모아둔 돈이 없었다. 그렇다! 난 등록금이 없었다. 공부는 하고 싶지만 등록금이 없는 현실은 나 자신에 대한 실망으로 이어졌고 방 안에 들어 앉아 고민만 깊어가고 있었다. 며칠 후, 나는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공간적 단절은 사람들에게 심한 우울감과 무기력감을 생산해 냈다. 지난 3년은 각자의 마음에 깊이 자리하거나 또는 삶에서 잃어버린 시간이었다. 그렇게 끝이 보이지 않았던 코로나19 상황도 조금씩 종식을 위해 나아가고 있다. 사람들은 점차 활기를 찾고 코로나19의 대표적 제재 대상이었던 해외여행도 시작되었다. 아마도 공간적 단절의 대표적 사례가 해외여행의 어려움이었을 것이다. 때마침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서 내게도 베트남을 가야 할 일이 생겼기에 오래전부터 꼭 방문하기로 마음먹은 장소를 가보기로 했다. 그곳은 한국인에게 베트남의 대표적인 휴양도시로 알려진 다낭의 시골 마을인 퐁니퐁넛(Phong Nhi and Phong Nhat massacre)이었다. 내가 이 마을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베트남 민간인 학살 사건의 증인으로 출석한 응우옌티탄(학살 당시 8세)씨와 남베트남군으로서 직접 학살을 목격했던 응우옌득쩌이(학살당시 28세)씨를 TV에서 보고 난 이후였다. 그들은 한국의 해병대에 의해 상해를 입은 피해자들로서 한국정부에게 보상과 사과를 요구하기 위해 방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내게는 다낭의 시골마을인 퐁니퐁넛을 방문하고자 하는
플라톤은 그의 저서 ‘국가’에서 이상 국가의 실현을 위해서는 진리와 선을 아는 소수의 철학자가 정치를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현대 민주주의는 대의 민주주의를 채택함으로써 시민의 대표자 다수가 정치를 하고 있다. 하지만 어떤 정치인은 사회와 역사에 대한 고민을 해 본 적이 없는 듯한 막말과 저급함으로 인해 우리에게 실망감을 안겨 주고 있다. 사실, 정치인의 막말과 시정잡배 같은 행태는 종종 목격되었으며 이로 인해 시민들은 정치 자체에 대한 무관심과 혐오를 경험하기도 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한 책임은 아무도 지지 않았으며 다음 선거를 기다린 후 투표를 통해 개인의 불만을 표시하는 것이 유권자가 할 수 있는 최대치의 의사 표시였다. 이쯤에서, 이러한 정치무관심과 혐오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어떤 사람이 정치를 해야 할까라는 환원론적 관심이 생겨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정치인의 대부분은 좋은 학벌과 명석한 두뇌를 바탕으로 한 사회의 지도자가 되었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 이처럼 훌륭한 사람들이 정치를 함에도 불구하고 왜 우리는 무관심과 불신을 가지게 되었을까? 이러한 명제를 바꾸어 생각해보면 명석한 두뇌와 훌륭한 학벌은 좋은 정치인의 덕목에 반드시 필요한 조건은 아
복날은 7월과 8월 사이의 가장 더운 시기쯤 10일 간격으로 초복, 중복, 말복을 일컫는다. 복날은 몸에 기운을 보하여 더운 여름을 무사히 보내라는 일종의 관습적 식문화이다. 과거에 프랑스의 여배우인 브리지트 바르도가 우리나라의 개고기 식용을 비판하면서 우리나라가 야만국가처럼 회자되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브리지트 바르도의 조국인 프랑스도 한 때는 개고기를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생또노레(Saint-Honore)라는 곳에는 개시장이 있어서 개고기 1kg에 2프랑 50센트 받고 팔았다고 한다. 사실 개고기 식용은 프랑스뿐만 아니라 남미와 북미 일부, 아시아까지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개고기 식용문화 자체가 사라지거나 정부의 정책에 의해 개고기 식용이 사라지게 되었을 뿐이었다. 먹을거리가 부족했던 과거에 개고기 식용은 생존하기 위한 선택적 식문화였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미래도 개고기 섭취를 금지하거나 자발적으로 금식하고 있는 다른 나라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와 같이 생각하는 이유는, 먼저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동물의 권리에 대한 인식 개선이 충분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가정이 전체
5월 9일이면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고 퇴임하게 된다. 한국사회의 정치권력이 바뀌는 순간이다. 정권이 바뀌면 우리 사회의 많은 곳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정책의 기조는 물론 행정부와 기타 국가기관의 인적 구성도 대폭 물갈이되는 것이 관례이다. 원칙적으로 현 대통령이 임명한 기관장의 임기는 보장되지만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 미래 권력과 코드가 맞는 인사가 중용되는 것이 현실이다. 교육 부분도 마찬가지이다. 교육부 장관을 비롯해 한국교육과정평가원과 같은 기관들이 새로운 기관장을 맞이하게 된다. 이 와중에 올 7월에 국가교육위원회가 출범하게 되었다. 국가교육위원회는 2002년 당시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였던 이회창 후보가 공약으로 내세웠고 현 문재인 대통령이 출범을 마무리 지은 교육계의 중요한 이슈 중의 하나이다. 국가교육위원회는 교육과정 제정·고시 권한 등 미래 한국사회의 교육정책을 디자인하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국가교육위원회가 디자인한 교육정책은 교육부를 통해 실행되고 각 시·도 교육감은 교육부와의 협조체제를 통해 교육대계를 만들어갈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에서 출범을 기획한 국가교육위원회는 차기 정부가 들어서면 그 인적구
말 많고 탈 많은 2022베이징 동계 올림픽이 끝났다. 이번 동계올림픽은 91개국이 7개 종목에 출전하였다. 이는 2021년 도쿄 하계 올림픽에 참가했던 46개 종목의 205개 국가에 비하면 반쪽짜리 축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림픽의 정신은 고스란히 유효하기 때문에 세계인의 체육행사로써 인정받고 있는 것이리라. 주지하듯이, 근대올림픽은 1896년 4월 쿠베르탱 남작과 14명의 올림픽 위원회 위원들의 노력의 결실이었다. 그리스를 정복한 로마에 의해 서기 393년까지 중단되었던 올림픽은 1500의 시간이 흐른 후에야 비로소 다시 시작되었다. 쿠베르탱과 뜻을 같이 하는 동료들은 올림픽을 통해 ‘세계평화를 실현하겠다는 이상’을 이룩하고자 하였다. 이와 같이 스포츠를 통한 평화와 공존은 올림픽의 중요한 목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몇 가지 역사적 사례를 살펴보면, 먼저, 게르만족의 우수성을 선전하기 위해 1936년 베를린에서 열렸던 11회 하계 올림픽을 꼽을 수 있다. 히틀러는 게르만족과 나치의 우수성을 홍보하기 위한 장으로써 올림픽을 이용했다. 베를린 올림픽은 히틀러의 의도대로 독일이 종합우승을 차지했다. 하지만 나치가
2021년 한 해가 저물어간다. 코로나19로 인한 피로감과 무기력함은 지난해와 똑같이 우리를 힘들게 했다. 전 지구적인 환란은 우리의 몸과 마음을 피폐할 정도로 망가트렸다. 누구나 겪었던 이 불행한 시간은 보상받을 길이 없어 더 안타깝다. 그러나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개인적인 은혜와 원한은 사회적 참사와는 다르게 생각해야 한다. 모두가 경험하는 감사함은 사회를 풍요롭게 하고 함께 경험하는 아픔은 서로 의지가 된다. 하지만 개인이 경험하는 사랑과 고통은 오롯이 개인의 몫이기 때문에 홀로 감내해야 한다. 그래서 더 감사하고 또 힘들다. 얼마 전, 신경정신과 의사와 대화를 나눴다. 그분의 말에 따르면, 심리적인 상처를 서로 주고받은 경우에 병원을 찾아오는 환자의 대부분은 피해자라는 것이다. 가해자가 병원을 찾아 자기가 한 일에 대해 힘들어하면서 상담을 하기 위해 내원한 경우는 없었다고 한다. 타인으로부터 위해를 당한 피해자만 마음속에 상처를 감추고 위장하다가 곪아 터질 때쯤 되어서야 살기 위해 구조를 요청하는 것이리라. 결국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은 성경 구절에나 나오는 선언적 수사에 불과하며 감정을 가진 인간이기 때문에 원수를 사랑하는 일은 가당치 않다는
노태우 전 대통령이 사망했다. 그는 전두환과 함께 12·12 군사반란의 주역이었고 5·18 민주화운동을 총·칼로 진압한 군 수뇌부 중의 한 명이었다. 국민을 무력으로 진압한 대가는 차고 넘쳤다. 41대 내무부 장관을 거쳐 국회의원이 되었고 올림픽이 열렸던 1988년에는 13대 대통령이 되었으니 말이다. 그의 삶은 전두환과 떼려야 뗄 수가 없었다. 둘은 육사 11기 동기였고 같은 방을 썼던 룸메이트였으며 쿠데타를 모의하고 실행했다. 전두환은 12대 대통령을 마치면서 친구 노태우에게 대권을 물려주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아마도 전두환은 노태우가 대통령에 취임함으로써 퇴임 이후를 보장받기를 원했었을 것이다. 그러나 ‘5공 청산’의 국민적 요구는 이를 용납하지 않았다. 전두환은 강원도에 있는 백담사로 향했고, 노태우는 그렇게 대충 얼버무리려 했다. 전두환의 백담사 생활은 가끔 TV를 통해 국민들에게 중계되었다. 나도 승복을 입은 전두환과 이순자의 모습을 TV에서 보았던 기억이 있다. 전두환은 ‘세상만사를 통달하고’ 산에 의탁한 도인(道人)처럼 굴었는데 젊었던 내가 보기에도 거만하기가 짝이 없었다. ‘보통사람’을 자처하던 노태우와, ‘나만 갖고 그래’라는 말로 책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