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입국청소년’이란 용어가 우리사회에서 회자되기 시작한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이 용어에 대해 시민들은 익숙하지 않으며 누구를 지칭하는 말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교육부의 기준에 의하면 부모의 국적에 따라 부·모 중 한명이 외국인일 경우 중도입국자녀, 부모 모두 외국인일 경우 외국인가정 자녀로 분류된다. 그러나 ‘중도입국’ 대한 광의의 개념으로 적용해 볼 때, 국내 출생이 아닌 자녀가 본국에서 생활하다가 '학령기 중도'에 한국으로 입국한 경우에 중도입국청소년이라 할 수 있다. 최근 중도입국청소년은 국제결혼 이후 본국의 자녀를 한국으로 초청해온 중도입국청소년이 가장 많으며, 조선족 고려인과 같은 재외동포의 국내 이주로 인해 동반하거나 시간차 입국하는 청소년도 증가하고 있고 이주노동자 뿐만 아니라 난민의 자녀들 역시 이에 해당된다. 중도입국청소년들은 입국연령에 따라 개인차가 있지만, 한국에서 출생한 다문화가정청소년과는 달리 한국어 소통이 어렵고 문화적 정체성이 매우 상이하기 때문에 한국사회로의 진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2016년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에서 577명의 중도입국청소년을 대상(재학 404명, 비재학 173명)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더닝크루거 효과란 능력 있는 사람은 자신을 과소 평가하고 능력이 없는 사람은 자신을 과대평가하는 경향 또는 인지편향(認知偏向)의 오류로써 자신의 결정에 의해 잘못된 결과가 나타나더라도 자신의 잘못을 알아 낼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에 오류를 알지 못하는 경우를 말한다. 과거 영국에서 아프리카 나이저강(Niger R.)의 수원(水源, source water)을 찾는 숙제를 해결하기 위해 존 레드야드라는 사람을 탐험대장으로 임명했다. 나이저강은 아프리카 대륙 서부를 흐르는 강으로써 기니의 시에라리온 국경에 가까운 기니 지방에서 발원해 아프리카 서부지역을 크게 굽어 나이지리아로 들어갔다가 기니만으로 흘러나가는 길이 4,180km. 유역면적 189만 600㎢의 큰 강이었다. 그런데 이 거대한 탐험의 책임자인 레드야드는 쿡 선장 탐험대의 일원으로 아프리카 남단을 잠시 경유한 것이 전부일 뿐 새로운 도전을 기획하거나 실행 할 능력이 애초부터 없는 사람이었다. 결국 탐험대를 이끌고 이집트의 카이로에 간신히 도착한 레드야드는 담낭 관련 질환에 걸렸고, 황산을 마시는 자가치료(自家治療)를 하다가 1789년 1월에 죽었다. 그런 레드야드에게도 특출한 재주가 하나 있었는데,
‘라떼는 말이야~' TV를 켜면 가끔 이런 말이 자막으로 나오곤 한다. 물론 대부분의 독자들은 이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겠지만, 혹시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간략히 설명하면 이렇다. 어학사전에는 ‘에스프레소에 따뜻한 우유를 1:2 또는 1:3 정도의 비율로 섞은 커피’라고 나와 있다. 하지만 요즘 ‘라떼는 말이야’라고 누가 이야기를 한다면 이를 원래의 사전적 의미로 이해한다면 소통의 오류가 발생한다. 왜냐하면 이 말은 원래 ‘나 때는 말이야’를 유희적으로 표현한 말이기 때문이다. 보통 이런 말은 직장의 상사가 부하들에게, 또는 부모가 자식에게 하는 훈계의 서두에 위치하는 말이다. ‘나 때는 밤 새워 일을 했어’, ‘나 때는 밥을 굶으면서도 공부를 했지’, ‘나 때는 선배가 하늘이였지’ 뭐 이런 말들이리라. 요즘의 젊은 세대는 이렇게 말하는 사람을 ‘꼰대’라고 한다. 대중적인 활자로는 1961년 2월 9일자 동아일보에서 꼰대를 '영감 걸인'을 지칭하는 걸린 집단의 은어로 소개되었다. 어학사전에서 꼰대의 뜻은 첫째, 학생들의 은어로, ‘선생(先生)’을 이르는 말이다. 둘째, 학생들의 은어로, ‘아버지’를 이르는 말이며 셋째, 학생들의 은어로, ‘늙은이’를 이
라디오에서 귀에 익은 노래가 흘러나왔다. ‘그대 매력을 하아~ 잊을 수가 어~없네’. 나도 모르게 따라 불렀던 이 곡은 김성희라는 가수가 부른 ‘매력’이라는 노래다. 집에 와서 찾아보니 1982년에 발표했으니 39년이나 지난 노래다. 매력(魅力)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묘한 힘’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도 수많은 매력 덩어리들이 존재하고 있다. 사람, 종교, 자연, 일반 사물에까지 그 독특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문제는 이 매력이 항상 좋은 방향으로만 작동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음모론’이다. 음모론은 일견 그럴듯한 서사와 매력을 가지고 있다. 혹세무민하기에 좋은 콘텍스트(context)는 여기에 심취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역사 속에서 반복되고 재생산 되어 왔다. 대표적인 예가 세계의 경제와 사회, 정치를 통제하고 있다는 ‘일루미나티’에 관한 것이다. 이러한 음모론은 빌 게이츠가 코로나19를 살포하였다는 주장까지 만들어 내고 있다. 황당해 보이지만, 인간의 뇌가 가진 ‘확증 편향성’은 이와 관련한 정보를 취사선택하면서 자기만의 생각을 더 공고화시키는 측면이 있다. 최근 우리사회에도 이와 같은 음모론이 매력(?)을 뽐내고
장마기간이 역대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장마가 길어지면서 곳곳에 홍수 피해도 늘어나고 있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체감하지 못하지만 하천 부근이나 산에 인접하여 살고 있는 산촌이나 해안가 사람들은 하루하루가 긴장의 연속일 것이다. 인명 피해 소식도 들려와 마음을 무겁게 만드는 요즘이다. 도로가 물길이 되고, 다리에 닿을 듯 출렁이는 흙물을 TV로 보고 있으니 1972년의 여름이 생각났다. 그 해는 내가 초등학교 입학을 한 해 앞두고 있었다. 며칠 전부터 내리던 비는 멈출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이웃 동네와 우리 동네를 가로질러 흐르는 개천에서는 물이 불어나기 시작했다. 나는 동네의 친구, 형들과 어울려 물 구경을 하러 둑방 위로 올라갔다. 평소에는 작은 물길이었던 개천에는 생전 처음 보는 흙탕물이 폭포처럼 흘렀고 이웃 동네와 우리 동네를 연결하는 다리는 물에 잠길 듯 위태로웠다. 우리는 둑방 위에 앉아 물에 떠내려 오는 온갖 쓰레기와 그 속에서 꺽꺽대며 떠내려 오는 돼지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보았다. 동네 청년들은 잠길 듯 출렁거리는 다리위에 서서 올가미로 돼지를 건져냈다. 둑방에서 구경하던 동네 주민들은 이구동성으로 탄성을 질렀다. 더 이상 비가 오지 않았다면
이룰 수 없는 꿈 또는 소망하는 일을 그려보는 행위. 이를 상상이라고 한다. 현재는 상상(想像)이라고 쓰지만 원래는 상상(想象)이었다고 한다. 상상(想像)의 의미는 ‘형상을 그려본다’라는 의미로 해석하면 그리 어렵지 않지만, 상상(想象)은 왜 코끼리 상(象)자가 쓰여졌는지 의아해 할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여기에 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는데, 하나는 고대 중국의 황하(黃河) 지역에 살던 코끼리가 기후 변화로 인해 멸종되었고 후대에 코끼리의 뼈를 발견한 사람들이 나름대로의 상상력을 동원해 코끼리의 모습을 유추하면서 만들어졌다는 설(說)이 있다. 다른 하나는 인도에 사신으로 갔던 중국의 관리들이 그곳에서 코끼리를 본 후 돌아와 코끼리의 모습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생긴 단어라는 설(說)이다. 아무리 코끼리에 대해 설명한들 한 번도 코끼리를 본적 없는 사람들에게 그 모습을 설명하는 일은 무척이나 고된 일이었을 것이라 상상할 뿐이다. 요즈음 추미애 장관과 윤석열 총장의 힘겨루기가 점입가경이다. 윤 총장의 최측근인 한동훈 검사장이 검언유착 수사의 대상자이고 윤 총장의 아내와 장모에 관한 좋지 않은 소문도 시중에 떠돌고 있다. 이런 와중에 이번 주 안에 발표되는 검찰 인
코로나19 사태는 학교의 모습을 완전히 바꾸어버렸다. 3월에는 모든 학교가 개학을 하지 못하고 혼란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이후 온라인 개학을 하면서 교사와 학생은 온라인을 통해 처음 만났다. 이후 학교급과 학년에 따라 순차적으로 등교개학을 시작하면서 지난 6월 8일 드디어 전국의 학생들이 학교에 갔다. 학생들의 등교는 사회적으로 매우 예민하고 첨예한 문제였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종식되지 않았고 새로운 지역확진자와 해외 유입확진자가 지속적으로 유지되고 있었으며 때로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로부터 폭발적인 감염 사례가 보고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만의 하나라도 학교에서 감염이 시작된다면 기하급수적인 감염 상황도 예상해야 하기 때문일 것이었다. 이는 학부모가 가장 걱정하는 상황이었다. 이와 같은 우려 속에서 학생들은 학교로 갔고, 안타깝지만 단위학교에서 지엽적으로 발생하는 감염 사례도 있다. 교육부에 따르면 6월 22일 현재 전국 49개교에서 등교 수업이 이루어지지 못했는데 이는 전체 2만902개 유·초·중·고교 가운데 0.2%에 이르는 수치이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학교를 통한 대규모 확산 감염은 아직까지 보고되지 않고 있다. 여기에는 코로나19
미국이 난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한 상황에서 ‘흑인’ 조지 플로이드의 사망까지 겹치면서 심각한 사회혼란을 겪고 있다. 방송에서는 상점을 약탈하는 시위대의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시위대의 자정 노력에 의해 약탈 행위가 줄어들고 있다는 소식이다. 문제는 이러한 약탈자가 대부분 흑인 중심의 유색인종이라는 것이고, 여기에는 역사적·사회적 맥락이 존재하고 있다. 우리에게, 민주주의의 상징처럼 보였던 미국이라는 국가의 반인권적이고 비윤리적인 인종차별주의가 2020년에 다시 나타났다. 아이러니하게도 인종차별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노예제 폐지를 두고 격돌했던 남북전쟁 이후에 인종차별이 더 공고화되었다는 사실이다. 역사적인 원인이 있었다. 1861년 에이브러햄 링컨이 미국의 제16대 대통령에 취임하자 남부의 7개 주는 미연방에서 탈퇴하였지만, 테네시주의 앤드류 존슨은 링컨을 지지했다. 이러한 인연으로 남북전쟁 중이던 1864년 링컨이 재선에 도전하였고 민주당의 앤드류 존슨을 부통령 러닝메이트로 발탁해 선거에서 승리하게 된다. 그러나 1865년 4월 링컨이 존 윌크스 부스에게 저격을 당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