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언각비(雅言覺非)는 다산 정약용이 1819년에 펴낸 우리말 연구서이다. 이 책은 우리말 중에서 잘못된 연원을 따져서 백성들의 언어생활을 바르게하기 위하여 이치에 맞지 않고 와전된 말들을 찾아 그 잘못된 뜻과 확실한 용례를 들어 설명한 국어책이다. 아언각비(雅言覺非)는 3권 1책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다산이 긴 유배생활을 마치고 양주의 집으로 돌아온 이듬해에 펴냈으니 지금부터 200년 전이다. 아언(雅言)이란 말은 논어의 술이(述而)편에 나오는데, “공자께서 평소에 하신 말씀(子所雅言)은 시와 서(詩書)이며 몸가짐과 행동은 예를 지키는 것(執禮)이었으니 이 모두가 평소에 하시는 말씀(皆雅言也)이다”라고 하였다. 당나라 때 유학자 공영달은 이 ‘아언(雅言)’이란 말은‘바른말(正音也)’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정의하였다. 이 말은 공자가 살았던 춘추시대에 ‘백성들이 일반적으로 쓰는 말’이라는 뜻이니 오늘날‘표준어’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뜻에 비추어 ‘아언각비(雅言覺非)’는 일반 백성이 쓰는 언어가 이치에 맞고 뜻이 올바르게 소통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면 그 잘못된 것을 깨우쳐야 한다는 뜻으로 지었음을 제호(題號)에서 보여주고 있다. 제1권에 소개된…
오래 전 언론사 미국특파원으로 근무할 때의 일이다. 가족과 함께 스키장에 갔는데, 거기서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했다. 앞을 볼 수 없는 여자 시각장애인이 스키를 타고 있었다. 시각장애인이 어떻게 스키를 탈 수 있을까? 두 명의 도우미가 양팔을 부축하면서 그녀의 스키 타기를 돕고 있었다. 당시만 해도 내게는 그 장면이 충격과 감동으로 다가왔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그랬다면 어땠을까. 필경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서 ‘앞도 못 보는 주제에 별 걸 다 한다’는 식의 핀잔을 듣지 않았을까. 그 후 한국에 와서 나는 비슷한 광경을 부여 낙화암에서 볼 수 있었다. 시각장애인 다섯 사람이 인솔자의 안내로 낙화암에 올라 관광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어떻게 관광을 했을까. 손으로 바위를 만지기도 하고, 정자에 앉기도 했다. 그들은 손으로 낙화암을 보았고, 마음의 눈으로 낙화암을 감상했다. 나는 이 광경을 보는 순간 다시 한 번 그들에 대한 연민의 정과 함께 가슴 속에서 무언가 뜨겁게 북받쳐 오름을 느꼈다. 그것은 저들도 나랑 똑 같은 존재라는 각성이었다. 그렇다. 앞을 못 보는 시각장애인도 정상인과 똑같이 스키타기와 관광의 즐거움을 누릴 권리가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장애인에
오산은 경기 남부의 작은 마을이었다. 1989년 시로 승격돼 인구 5만, 약 200억원의 작은 재정으로 소박하게 출발했다. 그런 오산이 올해 서른 살 청년이 됐다. 사람으로 치면 ‘입지’, 즉 뜻을 세우는 해이기도 하다. 이런 가운데 곽상욱 시장이 민선 5기와 6기를 포함해 어느새 10년차를 맞았다. 그동안 곽 시장은 오산시를 전국 최고의 교육도시로 만들었으며, 교육 주도 성장을 통해 오산으로 이주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도록 했다. 이에 곽상욱 시장으로부터 그동안의 성과와 앞으로의 계획 등을 들어봤다. 초선 당시 오산이 안고 있는 문제점과 당면과제는. 당시 오산시는 시민들의 정주성이 전국에서 가장 낮은 도시였다. 발전을 위한 비전과 전략이 불확실했고, 도시 정체성도 없었으며, 자신의 삶과 미래를 도시와 함께 설계할 수도 없는 변방의 작은 도시였다. 집집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4·5학년이 되면 대도시로 전학가기 바빴는데, 바로 자녀 교육때문이었다. 그래서 ‘교육때문에 떠나기 싫은 도시, 교육때문에 이사 오고 싶은 도시’로 만들겠다는 각오를 갖고 시정을 운영해왔다. 그 결과, 이제는 자타가 공인하는 &lsqu…
연말인 요즘, 각종 모임에서 빠지지 않는 것 중 하나가 노래다. 그 노래중 최고 선호 장르는 단연 트로트(trot)다. 트로트는 4분의 4 박자를 기본으로 하는 가요다. 영어로는 ‘빠르게 걷다’라는 뜻이다. 1910년대 중반 미국과 영국에서 유행했던 댄스리듬 폭스트로트(fox trot)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거기에 우리의 독특한 꺾기 창법을 더해 지금의 트로트가 완성 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우리국민은 유난히 트로트를 사랑한다. 생활속 함께 했던 ‘트로트 가락’은 우리네 삶의 동반자였기 때문이다. 또 시대의 흐름과 함께 하며 국민들의 희·노·애·락을 대신해 크나큰 위안과 용기, 그리고 희망을 주었다. 때때로 ‘지쳐있는 삶의 응원가’이기도 해 더욱 그랬다. 올해는 이 트로트계에 유재석, 일명 ‘유산슬’과 ‘송가인’이 등장, 국민의 마음을 위로했다. 둘 다 새로운 삶의 도전 사실이 알려지면서 사랑도 듬뿍 받았다. 내년이면 데뷔 30년차가 되는 유재석은 개그맨 출신 연예인이다. 9년의 무명시절을 뺀 20여년동안 그는 우리나라 예능의 중심에 서 있었다. 최고의 인기도 누렸다. 그런 그가 올초 변신을 꽤했다. “예능계도 다른 돌파구가 필요하다”며 트로트계에 도전한…
의자의 얼굴 /조말선 백 개의 의자를 가진 나는 백 개의 나로 분열한다 나는 점점 멀어지고 나는 점점 희미해지고 나는 점점 증식하고 백 개의 의자를 빼앗긴 그는 한 개의 그로 응축한다 그는 점점 짙어지고 그는 점점 밀집하고 그는 점점 그가 되고 - 조말선 ‘둥근 발작’ / 창작과 비평 소설에 든 11월의 거리에 낙엽들이 뒹굴고 있다. 서로 다른 색깔과 모양과 성질을 가진 이파리들이 이 계절 동시다발적으로 잎을 떨구고 있다. 자동차들이 지나칠 때마다 “둥근 발작”을 일으키는 이파리들의 “분열”이 “점점 희미해지고”, 그러다 다시“밀집”한다. 그렇다면 나무들은 자신의 이파리들을 떨쳐 보낸 것인가, 이파리들이 나무를 떠난 것인가. 한 해가 다 가도록 “나”와 “너”는, 앉아 있던 의자는, 그 자리는 얼마나 많은 교체와 부재를 반복하고 있었는지 의자의 “증식”은 계속된다./권오영 시인…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며 1980~90년대 ‘세계경영’을 펼쳤던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지난 12월 9일, 향년 83세 나이로 별세했다. 한국 경제 성장의 황금기를 이끈 인물 중 한 명으로써 비록 IMF 경제위기를 맞아 무너지긴 했지만, 그의 창조적인 도전정신은 지금도 많은 경영인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세계경영을 꿈꾸던 기업가’ VS ‘외환위기를 초래한 경제사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을 떠올리면 등장하는 수식어이다. 이처럼 김 전 회장은 생전에 극명히 엇갈리는 평가를 받았다. 그의 공과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지만, 우리 현대사에 큰 족적을 남긴 인물임은 분명하다. 샐러리맨의 신화로 불리는 김 전 회장은 도전으로 축약할 수 있는 기업가 정신의 대표적인 모델로 꼽힌다. 특히 일찌감치 전 세계를 무대로 경영활동을 확대해 나가면서, 한국기업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활약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해 줬다. 김 전 회장은 원단생산업체인 대도섬유의 도재환 씨와 손을 잡고 1967년 자본금 500만원, 직원 5명으로 대우실업을 창업하며 ‘샐러리맨 신화’를 쓰기 시작했다. 대우는 대도섬유의 ‘대’와 김우중의 ‘우’를 따서 만든 것으로 전해진다. 김우중 회장은 그야말
장수에 대한 갈망은 누구에게나 존재한다. 그러나 마음대로 될 수 없는 일이다. 그러나 장수의 방법은 있다. 누구나 아는 상식적인 일이지만 꾸준히 운동하는 일이다. 적당한 식생활로 칼로리를 소모하고 신체가 피로를 부담을 갖지 않게끔 운동하는 것은 우리 삶에서 필수이다. 운동 후 사우나를 하고 스트레스를 줄인다면 누구나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러한 습관적인 일상을 도모한다면 장수도 가능하다. 일생에 이루어 놓은 성과는 개인 별로 다르지만 자신의 현재에 만족하며 자신의 삶을 즐길 줄 아는 지혜도 필요하다. 가진 이가 한 푼 더 벌려고 아등바등하는 인생은 슬기롭지 못하다. 얼마 전 한국영화계의 거목이신 동아술출공사의 이우석 회장을 따라 그의 고향인 성주를 방문했다. 경북 성주는 인구 4만 5천 명의 군이다. SRT로 1시간 20분 거리인 김천역에서 내려 차로 30분 거리이다. 참외의 주산지로 알려져 있고 최근 사드기지로 세인의 주목을 받은 곳이다. 이곳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다녔다. 그리고 부산을 근거지로 살다가 서울에서 본격적인 영화사업을 시작했던 그이다. 고향은 누구에게나 소중하기에 그는 후학들을 위해 거금 1억 5천만 원을 쾌척했다. 그의 삶의 발자취는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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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층에게 ‘플랫폼 노동자’란 생소한 단어다. 정보통신기술이 발전함으로써 탄생한 직업이기 때문이다. 고객이 스마트폰 앱 등 플랫폼에 서비스를 요청하면 이 정보를 노동 제공자가 보고 고객에게 서비스를 한다. 배달 대행앱, 대리 운전앱, 우버 택시 등이다. 서비스를 맡은 사람들이 플랫폼 노동자다. 이들은 중개업체를 통해 일감을 받아 고객에게 배달해주고 수수료를 받는다. 이들은 여러 가지 애로사항이 있다. 관련된 사람들과 수수료를 분배해야 하기 때문에 수입이 낮다. 뿐 만 아니라 신속배달이 당연시 돼있어 사고 위험이 매우 높다. 여기에 더해 종사자도 급격하게 증가, 경쟁이 치열하다. 최근 SBS는 플랫폼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방송한 바 있는데 종사자가 50만 명이 넘었다고 한다. 치열한 경쟁 속에 건당 1천 원도 안 되는 수수료를 받고 있으며 하루 12시간, 주 6일을 일해도 100만 원 남짓 버는 달도 있다고 보도 했다. 그러면서 “10시간 일해서는 생활비가 안 나와요. 최저 임금이 된다는 보장도 없고, 미친 듯이 하는 거예요.”라는 한 노동자의 처지를 소개했다. 더 딱한 것은 플랫폼 노동자는 노동관계법의 적용에서 배제된다는 것이다. 직접 고용하는 사용자가 애매하
인접하고 있는 지방자치단체끼리 행정경계를 조정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각 지자체의 이해관계가 얽혀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정을 위해서는 관련 지자체의 인내와 이해와 소통 의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를통해 해당 주민들의 ‘피해는 최소화하고 편리는 극대화’할 수 있는 묘수를 찾아야 한다. 이 일이 말처럼 쉬운가? 아니다. 그런데 이 어려운 일을 해내고 있는 지자체가 있어 박수를 보낸다. 수원시와 화성시다. 경기도도 힘을 보탰다. 행정경계를 조정한다는 것은 불합리한 경계로 인해 주민들이 받는 피해를 바로잡아 주민편의를 충족시키겠다는 공복(公僕)의 자세가 없으면 시도하기가 힘들다. 두 지자체의 노력을 구체적으로 보면 이렇다. 수원시 망포동과 화성시 반정동 일대가 복잡했다. 화성시 반정동 일부 지역이 수원시 영통구 신동개발지구 안으로 깊이 들어와 있어 ‘삼면이 수원’인 상황에 처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런 행정경계를 합리적으로 조정하기 위해 수원 망포동 일부 지역과 화성시 반정동 일부 지역을 같은 면적(19만8천825㎡)으로 교환한다. 지자체 사이의 경계조정은 절차가 복잡하다. 귀찮더라도 알아보자. ‘알아야 면장’도 할 수 있다. 먼저 각 시의회 의견 수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