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7년 유네스코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수원 화성(華城)의 서장대가 95년도에 이어 또다시 방화로 소중한 문화유산이 소실됐다.
특히 ‘화성’을 보호할 수 있는 인원은 3명에 불과했던 것으로 밝혀져 문화재관리에 헛점을 드러내 ‘화성’보호대책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1일 새벽 1시 40분쯤 안모(24)씨가 97년 ‘화성’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유네스코에 등록하기 위해 복원된 팔달구 남창동 서장대에 불을 질러 누각 2층이 완전 전소돼 10억원 상당의 재산피해가 발생했다.
이에 앞서 서장대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기 전인 95년에도 방화로 추정되는 불로 1,2층 모두 완전 전소되는 아픔을 겪었다.
▲화재에 무방비 노출=서장대는 화성의 문화유적 가운데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다. 하지만 화성사업소는 지난 95년 완전전소된 아픈 기억을 까맣게 잃어버린 채 소화전을 설치하지 않는 것은 물론 야간순찰도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불이 난 서장대는 화성에서 가장 높은 팔달산 정상(해발 128m)에 위치해 있으며, 연무대(鍊武臺)와 함께 평일 2만여명, 주말 5만여명이 찾는 화성의 문화유적중 최고 인기코스다.
이에 따라 화재당시 화성사업소 관계자들이 현장의 소화기(2대)로 불을 끄려했지만 초기진화에 실패한 것으로 알려졌다.
▲관리 소홀=서장대는 24시간 개방되는 개방형 문화재인데도 화성사업소는 문화재 훼손에 대비한 밤시간대 순찰근무를 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화성사업소는 시설과 24명, 관리과 15명 등이 근무하지만 보호인원은 3명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됐다. 게다가 화성사업소는 일과시간(오전 9시~오후 6시) 이후에는 사업소 사무실에서 당직만 서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 방화용의자 안씨가 입은 서장대 순라군 옷은 순라군 아르바이트생이 일과시간후 벗어 놓은 것으로 확인돼 세계문화유산인 서장대 2층 누각이 아르바이트생의 탈의실로 사용된 것으로 조사됐다.
화성사업소 관계자는“현재 문화재를 순찰하는 인력은 3명”이라며“인원이 보강된다 하더라도 화성은 5천744m에 달하는 개방형 문화재여서 순찰인력을 충원, 문화재 보호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화성사업소는 서장대 화재사건과 관련, 잠정적으로 약 5억원 정도의 재산 피해가 난 것으로 보고 문화재 관리청 관계자와 정확한 피해 규모를 조사하고 있다.
김용서 수원시장은 이날 오후 방화사건으로 누각 일부가 소실된 수원 화성 서장대를 현장 방문, 재발 방지대책을 논의했다.
김 시장은 이 자리에서 “수원 화성은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할 만큼 보존가치가 뛰어남에도 그동안 안전사고 예방이 미흡했다”며 “앞으로 유사한 화재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서장대와 연무대 등 수원 화성 전 목조건물에 무인카메라(CCTV)를 설치하는 등 상시 감시체계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문화재보호의식 제고= 전문가들은 화성의 보호를 위해선 문화재를 보호하려는 시민의식을 높이는 길이 최선책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화성연구회 김이환 이사장은 “세계문화유산이 전소된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며 “서장대는 개방형 문화재여서 화재위험을 예방하기엔 역부족인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김 이사장은 “이번 홧김방화사건은 시민의식 결여로 일어났다고 생각한다”며 “향후 시민들에게 대한 문화재 보호의식을 높이는 길이 문화재 보호의 최선의 길”이라고 주장했다.
<서장대는>
1일 새벽 방화로 2층 누각이 소실된 수원 화성(華城.사적 제3호) 서장대(西將臺)는 화성의 장병지휘본부로서 일명 '화성장대'(華城將臺)라고도 불린다.
화성의 가장 높은 곳인 팔달산 정상(해발 128m)에 위치해있어 서장대 누각에 오르면 수원시내 사방 100여리가 한눈에 보인다.
서장대는 정조대왕이 직접 군사를 지휘했던 곳이라 화성유적순례의 최고 인기 코스이며 평일 2만여명, 주말 5만여명의 관광객이 찾고 있다.
1796년(정조 18년) 화성을 처음 축조할 당시에 2층의 누각(가로 8m, 세로 8m, 높이 15m)과 주변에 팔각 노대(망루)를 쌓았고 그옆에 군무소를 지었으나 서장대 첫 복원시(1976년)에는 군무소를 복원하지 못했다.
서장대는 10년전인 1996년 여름에도 방화로 큰 불이 나 재복원됐었다.
노대는 팔각으로 돼 각 방위를 알려주며, 전쟁시에는 장대를 방어하기 위해 쇠뇌(활보다 멀리 쏠 수 있는 장거리 공격용 무기)를 발사하도록 돼있었고, 군무소는 지휘본부의 사무를 처리하던 곳이다.
화성축조 때 정조대왕의 친필편액인 '華城將臺'(화성장대)가 걸렸으나 지금은 친필편액은 없고 유명서예가가 쓴 것으로 대체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