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방식으로 만든 한지(韓紙)는 천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습니다.”
가평군 외서면 청평리 산골마을에서 3대째 한지 제작의 가업을 잇고 있는 명인이 있다.
한지 제작소 장지방(張紙房)에서는 이른 아침부터 한지 원료인 닥나무를 삶는 가마솥에 김이 모락모락 피어 오른다.
가마솥옆에서 지장(紙匠) 장용훈(74) 옹이 첫마디를 던진다.
‘지천년견오백(紙千年絹五百).’ “종이는 1천년, 비단은 500년을 간다”는 말이다.
1966년 불국사 3층 석탑에서 발견된 통일신라 유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원형 그대로 보존된 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이어 3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장 옹은 1996년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16호 ‘지장’으로 선정됐다. 지장이란 전통 한지 제조 기술을 가진 장인이다.
장 옹이 큰아들 성우(41)씨에게 4대째 한지 기술을 전수하고 있는 이 제작소는 ‘장씨 집안에서 종이를 만드는 곳’이라는 의미에서 ‘장지방’이라고도 불린다.
장지방 내외관은 허술하기 짝이 없지만 이곳에서 생산된 한지는 시중 가격에 비해 2~3배 가량 비싼데도 미리 주문해야만 구입할 수 있는 명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장씨 집안의 한지 제작 역사는 100년을 훌쩍 넘는다. 제 1대 장경순 옹이 농사를 짓으며 닥종이를 만든데 이어 제 2대 장세권 옹이 한지 제작을 전업으로 삼았다. 이제 장용훈 옹을 거쳐 아들 성우씨로 이어지고 있다.
전남 장성에서 태어난 장 옹은 1951년, 당시 17살때부터 순창과 전주 등에서 아버지에게 한지 제조법을 배웠다. 6·25 전쟁 직후 관공서 등에서 소실된 문서를 복원하느라 한지 수요는 폭발적이었으며 장씨네 한지도 1960년대까지 호황을 누렸다.
1973년 장 옹은 닥나무가 많이 나고 물이 풍부한 가평으로 옮겨왔다. 대부분의 장인들이 한지 생산을 포기했지만 장 옹만은 아버지의 유언에 따라 가업을 지켜갔다.
장 옹은 이곳에서 유일하게 전통 방식으로 한지를 생산, 장씨 한지의 이름을 날리고 있다. 장 옹은 “닥나무를 삶는 물과 삶을 때 온도가 장씨 한지의 핵심”이라고 말한다.
그는 지난해부터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졌다. 성우씨가 힘든 일을 도맡아 하고 있으며 막내 아들 갑진(34)씨도 일손을 거들고 있다. 그러나 그는 10년 넘게 종이를 만지고 있는 성우씨에 대해 아직 만족하지 못하고 있다.
특히 국내 잘 알려진 한국화가들이 장지방 한지를 애용하고 있으며 우수성이 일본에까지 알려져 매월 생산량의 절반은 수출하고 있다.
장지방 한지는 주로 주문 판매되고 있지만 서울 인사동 거리에서도 만날 수 있다. 장 옹은 이곳에 같은 ‘장지방’이란 이름으로 점포를 냈으며 현재 큰 며느리가 관리·판매를 담당하고 있다.
장 옹은 “이 세상에 태어나 천년 넘게 보존되는 한지에 이름을 남겼으니 여한이 없다”며 “요즘 사람들이 쉽고 빠른 것만 찾으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