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대현 지음
지식의 풍경 출판
576쪽, 2만원
사회변화를 이끄는 힘 ‘매체 역사’를 통해 ‘인류 역사’ 조명
‘매체’라고 하면 신문이나 잡지, 영화, 텔레비전 등 불특정 다수에게 대량의 정보와 사상을 전달하는 매스 미디어를 떠올린다.
그러나 오늘날 대중매체 가운데 가장 오래된 신문이나 잡지의 역사도 500년이 되지 않는다. 대중 매체가 등장하기 전 인류의 매체는 무엇이었을까.
독일 뤼네부르크 대학 매체학과 교수 베르너 파울슈티히는 최초의 매체는 ‘인간’이라고 주장한다. 고대 사회에서 신의 경고와 계시를 전하던 신전의 신녀, 춤과 연극 등이 바로 인간매체였다는 것.
그러나 구텐베르크가 인쇄술을 보급한 이후 매체의 형태는 지각변동을 겪는다. 인쇄매체의 등장으로 인간의 육체, 춤, 연극 등은 매체의 기능을 잃는다. 여성은 매체적 특징을 잃고 종속적인 존재가 됐으며 춤과 연극에서도 매체의 기능은 사라졌다.
매체사의 관점에서도 르네상스는 근대의 ‘시작점’인 동시에 고대의 ‘종결점’이었다.
파울슈티히가 펴낸 ‘근대초기 매체의 역사(지식의풍경)’는 르네상스 시기 급격하게 진행된 매체 혁명을 조명한 책이다.
파울슈티히는 사회적 조정 및 방향 설정을 매체의 핵심기능으로 보고 어느 한 시기에 매체이던 것도 사회를 이끄는 힘을 상실하면 더 이상 매체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저자는 “사회변화는 매체변화 없이 설명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매체가 사회의 변화를 일으킨다”고 강조하고 이를 입증하는 사례를 제시한다.
독일의 종교개혁가들은 전단지, 소책자, 독일어 성경 등 새로운 인쇄매체를 활용해 종교개혁을 외쳤다. 로마 가톨릭은 이단자를 투옥하고 처형했지만 이단적 주장은 인쇄매체로 복제돼 광범위하게 퍼져나갔다.
저자는 이를 교황청의 사제라는 인간매체와 인쇄매체의 대결로 파악했으며 종교개혁은 인간매체에서 인쇄매체로 주도권이 완전히 넘어가게 된 계기였다고 주장한다.
또 서신의 발달은 자본주의의 성장을 이끌었다. 당시 상거래를 위해 쓰이던 가격 표기, 등기 우편은 지폐를 낳았고, 빚을 갚지 않는 채무자를 비방하기 위해 보낸 서신은 차용증으로 발전했다. 15세기에 널리 이용된 정보서신은 17세기 신문의 탄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6세기 최초의 자본주의적 우편 영업이 시작되면서 정보 서신은 정기적으로 주고 받을 수 있는 소식이 됐다. 신문의 주요특징인 보편성과 주기성이 이 당시 정보서신에 이미 나타난 것이다.
저자는 “사회 변화를 이끄는 힘인 매체의 생성과 소멸 과정, 즉 ‘매체의 역사’를 통해 인류 역사를 재구성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며 이 책은 그 성과 가운데 하나”라고 말한다./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