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마와 기수들의 생명을 내가 책임지고 있다는 책임감이 항시 어깨를 짓누르고 있지요. 다시 말해 마음편한 날이 하루도 없다고 보면 딱 맞는 말입니다.”
대부분의 직원들이 편히 쉬는 지난 27일에도 정장균(52)씨는 서울경마공원 경주로(競走路)의 정지작업을 위해 그레이더를 운전하고 있었다.
그의 직업은 경마장에서 가장 까다롭고 힘든 일 중 하나인 주로 관리원으로 20여 년 말들이 뛰는 모래 길과 씨름을 해왔다.
그의 출근은 남들이 곤히 자는 새벽 4시30분에 시작된다.
“혹여 새벽 조교에 사고가 발생할까 관찰하고 주로에 떨어진 마분치우고 주말 오전과 오후 이어지는 정지 작업하느라 몸이 열 개라도 모자라죠.”
그렇게 말한 뒤 짧은 한숨을 쉬었으나 짜증 섞인 말투는 아니고 입가엔 미소가 머문다.
나름대로 ‘내 손안에 생명이 달려있다’는 직업관에 대한 보람과 자부심이 있음을 애써 찾지 않아도 읽을 수 있다.
말들이 뛰는 경주로는 안전과 직결돼 제대로 관리 되지 않으면 경주마가 골절상을 입고 때론 기수의 치명적인 사고가 이어져 그는 항시 긴장을 풀지 못하고 산다.
“언제나 조마조마하죠. 휴일 집에 있으면 신경을 주로에 가 있어 차라리 여기에 나와 있는 게 속이 편해요”
그래서 그런지 정씨는 주5일 근무 후 온전히 이틀을 쉬어 본 기억이 없다.
외국과 달리 조교용 주로가 따로 없는 것도 빡빡한 하루 일과를 더욱 바쁘게 하는 요인이다.
언제가 한국을 방문한 JRA(일본중앙경마회) 주로전문가들이 “많은 조교와 경주를 다 소화하고도 이토록 우수한 주로 품질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지 의문”이란 말을 들을 때 어깨가 자신도 모르게 으쓱해지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일본은 80명이 하는 분량을 겨우 10명이란 적은 인원으로 고생고생하며 일해도 가장 주목받지 못하는 분야”라고 시선을 청계산을 두고 얘기할 땐 서운한 감정이 묻어났다.
한 달에 대여섯 번 새벽 출근과 동절기엔 휴일 없는 세월을 보내도 투정 한번 내는 않는 그지만 함께 있을 시간이 적은 가족들에겐 늘 미안한 마음을 안고 있다.
“처음엔 아내의 투정이 심했으나 이젠 그런 나를 이해하는지 비가 많이 올 것 같으면 먼저 주로에 나가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해요. 고맙기 그지없지요”
인터뷰를 끝낸 그는 잠시 중단된 모래를 마저 고르기 위해 경주로로 발걸음을 총총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