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캄한 복도에서 형의 손을 놓친 게 마지막이 될 줄 몰랐습니다. 형 대신 내가 죽었어야 했는데…”
25일 새벽 용인의 고시원 화재로 기도 등 호흡기 부위에 중화상을 입고 용인 서울병원에 입원중인 중국 조선족 동포 이철군(42) 씨는 이 불로 친형 철수(44) 씨를 잃었다.
철수 씨 형제는 지난 2월 국내 무연고 조선족의 방문 취업 케이스로 입국한 이후 이 고시원에 월세 37만원짜리 방 한 칸을 얻어 줄곧 함께 생활해 왔다.
공동시설이긴 하지만 세탁실과 주방이 있고 방마다 화장실이 있어 이들에게 월세가 좀 벅차도 남자들끼리 살기에는 불편함이 없었다.
불이 날 당시 형제는 6㎡ 남짓한 방 안에서 잠자고 있었고 비상벨 소리에 놀라 복도로 뛰쳐나가 연기 속에서 우왕좌왕하다 헤어진 게 다시 만날 수 없는 이별이 되고 말았다.
“작년에 방문 취업 비자를 받으려고 함께 중국 옌지(延吉)에서 한국어능력시험에 응시해 합격했을 때 기뻐하던 형의 모습이 눈에 선하네요.”
중국 지린(吉林)성 옌볜(延邊) 조선족자치주 소도시인 둔화(敦化)시의 한 마을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던 형제는 ‘더 나은 미래’를 기약하며 한국 땅을 밟았다.
둘은 용인의 한 아이스크림 공장에 취직했고 형 철수 씨는 고된 일에 비해 벌이가 시원찮다며 얼마 전부터 아파트 건축현장에서 일을 시작했다.
형제는 불이 나기 전날 마지막 이별을 앞둔 의식을 치르기라도 하듯 모처럼 고시원 방안에서 TV를 보고 밥을 지어 먹으며 하루종일 함께 보냈다.
“그제 야근을 하고 아침에 퇴근해 집에서 쉬고 있는데 아침 일찍 건축현장에 나갔던 형이 비가 와서 일찍 들어오는 바람에 한국에 오고 나서 모처럼 낮시간을 죽 같이 있었어요.”
숨진 철수 씨는 중국에 부인과 21살 짜리 아들, 16살 짜리 딸이 있고 동생 철군 씨 역시 부인과 7살 난 딸을 중국에 두고 왔다.
철군 씨는 병실로 옮겨진 뒤 의식을 차리고 나서야 병원 측으로부터 형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오열했다.
그는 “중국에 있는 형수와 가족들에게 아직 연락을 하지 못했다”면서 “그 이야기를 어떻게 전하란 말이냐”며 눈물을 흘렸다.
이들 형제보다 2개월 먼저 방문 취업으로 국내에 들어와 같은 고시원에서 지내고 있는 외조카 김굉걸(27) 씨가 철군 씨를 대신해 고모인 철수 씨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서로 아무 말도 못하고 눈물만 흘렸다고 했다.
굉걸 씨가 기거하는 방은 고시원 제일 안쪽의 철수 씨 형제 방과 달리 입구에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어 별다른 피해 없이 화마를 피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