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19일 전국위원회에서 “국민만 보고 가겠다”며 사면초가의 위기에서 한나라당을 떠맡았던 박 위원장은 5·15 전당대회에서 새 지도부가 출범하면서 당을 정상궤도에 올려놓은 뒤 비대위원장직에서 내려왔다.
그는 전날 늦은 밤 드라마틱했던 지난 5개월을 떠올렸던 듯 트위터 글에 “감회가 새롭다”고 적었다.
외부인사가 수혈된 11인 비대위가 출항하던 지난해 12월27일, 당시 한나라당은 참혹했다.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패배, 중앙선관위 홈페이지의 디도스 공격사건, 전당대회 돈봉투 살포파문 등 악재가 겹쳐 4개월 뒤 총선 참패가 기정사실화 되는듯 했다.
‘박근혜 비대위’는 당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갈아끼우는 강도높은 쇄신책을 동원, 민심 회복에 총력을 기울이면서 4·11총선에 대비하는 등 재장전에 나섰다.
당명을 한나라당에서 새누리당으로 바꾸고, 당의 지표인 정강정책도 개정했다. 박 위원장은 새 정강정책이 전국위에서 의결되던 날, “우리 당이 내용과 모습을 모두 바꾸고 새 출발을 하는 역사적인 날”이라고 선언했다.
그는 구태와 단절하겠다는 의지로 이명박 정부와의 차별화에도 속도를 높였다.
2008년 전대 돈봉투 파문이 불거지자 가차없이 검찰 수사를 의뢰했고, 총선을 앞두고 국무총리실 민간인 불법사찰 의혹이 쟁점화되자 특검 카드까지 꺼내들었다.
4·11총선은 사실상 박 비대위원장의 1인 선거운동으로 치러졌다.
여야 대권주자군 가운데 부동의 1위를 지켜온 그는 마치 연예인과 같은 대중적 인기를 바탕으로 발길이 닿는 곳마다 군중을 몰고다녔다.
그는 “새누리당의 이념은 민생”, “한표 한표를 국민 삶을 챙기는 정치의 디딤돌로 삼겠다”면서 당력을 민생회복에 집중시키겠다고 약속하며 지지를 호소했다.
하루 10∼20개 지역을 오가는 강행군 속에 새누리당은 예상을 뒤엎고 과반이 넘는 152석을 획득하며 승리했다.
총선 이후 비박(非朴·비박근혜) 주자들의 대권도전 선언으로 대선전이 가열되고 있으나, 박 위원장은 정중동의 행보다.
자신의 대선출마 선언 시점에 대해서도 “아직은 정해진 것이 없다. 재충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로 휴지기를 시사했다. 이 때문에 앞으로 7개월간 계속될 대선 로드맵을 구상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8월로 예상되는 대선후보 경선에 앞서 6월중 출범할 것으로 예상되는 경선캠프는 현역의원 참여를 최소화, 실무진 위주의 경량급으로 구성될 전망이다.
당직에서 떠나지만 그가 새누리당의 실질적 ‘오너’라는 점은 아무도 부인하지 않고 있다. 새누리당은 이미 ‘박근혜당’으로 재편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