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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문재인 후보의 ‘어제와 오늘’

삶의 궤적 극과극…정치적 이념도 극명하게 달라

 

어머니 서거 후 퍼스트레이디 역할… 10·26 이후 18년간 칩거

1998년 정치계 등장… 비대위원장 취임후 당 대권주자 입지 굳혀

대학시절 反유신 시위로 구속… 1980년대 부산 민주화운동 주도

지난해 말 ‘혁신과통합’ 통해 野 대통합 참여 민주당 창당 일조

다음달 19일 치러지는 제18대 대통령 선거는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와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 간 진검 승부로 판가름 나게 됐다. 박 후보와 문 후보는 개인적인 삶의 궤적은 물론 정치적 이념과 지향점이 극명하게 다른 후보라는 점에서 유권자들의 흥미를 불러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박 후보를 논할때는 선친인 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을, 참여정부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낸 문 후보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각각 빼놓을 수 없다.

■박근혜 후보 = 박 후보는 5·16 군사쿠데타 발발 2년 뒤인 1963년 아버지 박정희가 대한민국 제5대 대통령에 취임하자 청와대에 들어가 ‘영애’로서의 생활을 시작했다.

박 후보는 1974년 8월15일 어머니의 서거 소식에 프랑스 유학길에서 급거 귀국, 약관 22살에 퍼스트레이디가 됐다.

10·26 이후 권력의 대이동이 시작되는 와중에 1980년 18년간 머물렀던 청와대를 떠난 뒤 성북동 자택 등에서 18년간 사실상 칩거, ‘훗날’을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육영재단과 영남대학교 이사장 등을 맡아온 시기다.

지난 1998년 4월 대구 달성에서 치러진 15대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되면서 정치 전면에 등장, 2000년에는 총재 경선에서 이회창 전 총재에 이어 2위로 부총재로 당선됐지만 2001년 상향식 공천, 당권·대권 분리 등을 골자로 한 ‘7대 당 개혁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탈당해 ‘미래연합’을 창당했다.

2002년 복당한 박 후보는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역풍 등으로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던 2004년 3월 당 대표를 맡아 ‘천막당사’로 배수진을 쳤다.

4·15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의 싹쓸이 예상을 뒤엎고 121석을 확보하는 성과를 올렸다. 이후 2년3개월간 당 대표를 지내면서 열린우리당을 상대로 국회의원 재보선과 지방선거에서 완승을 이끌어냈다.

당시 ‘선거의 여왕’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2007년에는 첫 대권 도전에 나섰지만 당내 경선에서 이명박 후보에게 석패하면서 분루를 삼켰다.

그러나 이후에도 40% 안팎의 높은 지지율로 이른바 ‘대세론’을 형성, 지난해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패배 이후 홍준표 대표가 사퇴하면서 비대위원장으로 취임한 뒤 2012년 4·11 총선에서 152석을 차지하는 대역전승을 거두며 당의 유력 대권주자로 입지를 굳혔다.



■문재인 후보 = 문 후보는 경남중·고를 거쳐 1972년 경희대 법학과에 진학했다.

대학 시절에는 ‘반유신’ 투쟁에 나선 운동권이었다. 1975년 학생회 총무부장으로서 시위를 주도하다 징역 8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고, 1979년 부마항쟁과 10·26, 1980년 ‘서울의 봄’을 거치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또다시 구속됐다.

사법연수원을 차석으로 수료한 문 후보는 판사를 희망했지만 시위 전력 탓에 좌절됐다.

변호사 길을 작정하고 부산으로 내려간 그가 만난 사람이 노무현 변호사였다. 첫 만남에 의기투합한 두 사람은 동업을 결정했다.

6월 항쟁이 있던 1987년 5월 부산국본(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이 결성됐을 때 노무현 변호사가 상임집행위원장, 문 후보가 상임집행위원을 맡을 정도로 부산 민주화운동을 주도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된 2002년 대선 경선 때 문 후보는 노 후보의 부산선대본부장을 맡았다.

문 후보는 청와대 생활의 시작과 끝을 노 전 대통령과 함께했다. 노 전 대통령 퇴임 후 참여정부 인사들을 향하던 검찰 비리수사의 칼끝이 노 전 대통령을 겨냥하자 문 후보는 변호인 겸 대변인 역할을 하며 노 전 대통령을 방어했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 때 그는 국민장의위원회 운영위원장을 맡아 장례 전반을 관장했고, 이후 노무현재단을 설립해 이사장을 맡았다.

그는 2009년 10월 경남 양산 재보선 국회의원 후보, 2010년 6·2 지방선거 부산시장 후보로 거론됐지만, 한사코 현실정치 참여를 거부했다.

그러나 야권 대선주자들의 지지율이 제자리를 맴돌면서 문 후보의 등판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높아졌다.

지난해 6월 자서전 ‘운명’이 베스트셀러를 기록하면서 문 후보를 향한 정치참여 압박은 거부하기 힘들 정도가 됐다. 결국 정권교체라는 대의명분을 위해 지난해 말 ‘혁신과통합’을 통해 야권대통합에 참여해 민주통합당 창당에 일조했다.

또 지난 4·11 총선에서 부산 사상구에 나와 당선된 후 대선후보의 길로 들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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