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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포커스]이른바 대학 ‘개혁’과 ‘식자인’(識字人)

 

“가을 등불 아래 책 덮고 지난날 생각하니(秋燈掩卷懷千古), 인간 세상에 글 아는 사람 노릇하기 어렵기만 하구나(難作人間識字人)”. 매천 황현 선생이 망국을 눈앞에 보고 스스로 목숨을 거두면서 남긴 ‘절명시’의 한 구절이다. ‘사람 사는 세상에 글 깨친 자 노릇하기가 얼마나 힘든가’라는 구절이 좋아 자주 떠올리곤 한다. ‘식자인’이란 말을 그대로 따져 뜻을 새기자면 문자를 아는 사람이니 요즘말로는 지식인이라 해도 좋겠다.

매천 선생의 그때와 요즘이 어디 비견될 만한 것이 아니지만, 그렇다 해도 나로서는 요즘처럼 이 말이 절절히 다가오는 때가 없다. 특히 지금의 이른바 대학 ‘개혁’이란 미명하에 전개되는 교육당국에 의한 각종 규제와 압박이 특히 그러하다. 사건의 발단은 거슬러 올라가면 끝도 없겠지만, 우선은 지난 정부 당시 온 사회를 들끓게 만들었던 반값등록금 시위와 이에 대한 정부의 대응에서 시작되었다.

각종의 교육지표, 특히 OECD국가를 비교한 우리의 교육관련 지표는 참담하기 이를 데가 없다. 즉, OECD 국가를 놓고 볼 때, 한국의 사교육비 비중은 세계 최고 수준인 데 반해, 대학에 대한 국가의 공공 지원은 최저 수준이다. 또한 대학 등록금은 미국사립대를 제외하고 역시 최고 수준인 데 반해, 대졸자의 취업률은 세계 최저 수준인데 게다가 남녀 취업률 격차는 세계 최고다. 그래서 OECD가 매년 발표하는 교육관련 국제 지표상으로 한국 대학 교육의 실정은 참으로 참담지경이다. 쉽게 말해 우리 대학교육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 들어가서, 가장 적은 국가지원을 받으며, 나와서는 최악의 취업률을 기록한다는 말이다.

한국에서 대학교육은 ‘사적’ 의무교육이다. 따라서 고도로 공적인 성격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대학의 등록금은 미국의 사립대학을 제외하고 제일 비싸다. 그래서 순경제적으로만 보자면 미국의 수많은 대학 중 딱 중간수준의 대학에서 달라는 대로 등록금을 다 내고 다녀도, 한국에서 대학을 다니는 것보다 더 이익이라는 연구결과마저 나와 있다. 그 이유는 다른 무엇보다도, 미국대학이 등록금이 비싸다 하더라도 한국보다 훨씬 많은 보조금을 받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비교는 세계에서 등록금이 가장 비싼 두 나라, 곧 한국과 미국만을 비교한 수치다. 유럽 대부분의 나라에서 등록금은 아예 없거나, 영국 등을 제외하고는 극히 낮은 수준이다.

과거 정부 하에서 대학등록금 문제가 사회적으로 큰 쟁점이 되자 정부여당도 협상에 나서서 결국 ‘국가장학금’이란 명목으로 어느 수준까지 등록금 지원예산이 확보되었다. 그러나 이 장학금이 학생 수중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해당 학생이 등록한 대학이 일정한 요건을 충족해야만 한다. 그런데 이 요건을 이루는 각종 지표 가운데 하나가 바로 취업률이다. 재학생들이 이 혜택을 누리기 위해서 해당 대학은 규제당국이 제시한 취업률이란 지표를 충족하기 위해 실로 온갖 비교육적 죽을 꾀, 잔꾀를 다 쓸 수밖에 없다. 물론 규제당국으로선 학생도 대학도 둘 다 길들일 수 있으니 ‘일타쌍피’인 셈이다. 이런 문제의식을 함께 나누던 동료들도 ‘보직’이란 완장을 차고 나면 돌변한다. 취업률 달성이라는 고지를 향해 맹목적 돌진도 서슴지 않는, 그래서 그 완장효과는 실로 막강하다.

정부는 OECD국가의 평균에도 못 미치는 국제 ‘지표’에는 거의 관심이 없어 보인다. 졸업생 취업이 안 되는 이유, 곧 취업률이 낮은 바로 그 원인이 대학이나 대학교수에 있는 것처럼 몰아붙인다. 이런 현상은 서울에서 거리가 멀어질수록, 대학서열이 낮을수록, 재정이 열악할수록 극악한 형태로 나타난다. 입지, 서열, 재정을 걱정할 일 없는 서울의 세칭 일류 국공립 대학은 다른 세상에 속할 뿐이다.

얼마 전에 지방의 어느 대학 학생회가, 교수들이 자신들의 취업을 등한시 한다고 대놓고 성토했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있다. 이렇듯 돈이, 경제가, 비교육이, 시장이 대학을 지배하는 세상에서 ‘식자인’ 노릇하기가 참으로 고단하다면 과장되다 할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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