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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만하

나는 골목길을 택했다.
골목에는 녹슨 양철 처마와 불빛 꺼진
꾸부러진 창과, 팔짱 낀 발자국 소리의 비밀을
발설하지 않는 신의가 있다.
골목 끝에 간신히 그곳만이 환한 가게가 있다.
잠드는 일을 태만이라 믿는 반질반질한
사과 알들이 베개 맡 책갈피처럼
잠들지 않고 있는 심야의 가게.
지워진 어릴 적 기억 속 풍경의 한 단면이
망각의 깊이 밑바닥에서 정다운
오렌지 빛 삼투압을 띄고 조용히 수면 위에
떠오르는 별빛 얼어붙는 겨울 하늘 골목 끝.

-- 허만하, 「시의 계절은 겨울이다」, 문예중앙 2013

 

우리 곁에서 자꾸만 사라지는 골목이 그립다. 꿈속에서도 복기되던 어린 날들의 골목이 사라지고 있는 도시가 퀭하다. 골목마다 끓어 넘치던 따뜻한 밥냄새, 양파조림 냄새가 아직도 코끝에서 환하다. 어느 날 걸었던 북창동 좁은 골목길이 기억에 남아 있다. 좁은 길이 구부러지고 구부러져 막다른 골목에 조그맣게 달려있던 가게, 가게 옆 한그루 나무가 깃발처럼 서있던 모습이 오래된 편지에 붙어있는 우표 같이 반가웠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발자국 소리 정겨운, 고만고만하게 마주한 집과 어깨를 나란히 한 집에서 튀어나오는 하루와 마주치기도 하는 좁은 골목은 마침내 탯줄 잘린, 우리들의 자궁처럼 아늑한 기억으로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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