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르 드라마
감독 이해준
배우 설경구/박해일/윤제문/이병준/류혜영
변변한 역을 맡아본 적 없지만, 남몰래 ‘리어왕’의 대본을 외며 무대에 설 날을 꿈꾸는 무명 연극배우 성근.
그러던 그에게 주연 배우의 펑크로 리어왕 역을 맡게 되는 행운이 찾아온다. 그러나 오랜 만에 무대에 선 그는 혀와 뇌가 동시에 얼어붙으면서 연극을 망치고 만다.
무대 뒤에서 연출에게 얻어맞는 모습을 어린 아들 태식에게 들킨 성근은 결국 홀로 남겨진 분장실에서 울음을 터뜨린다. 그런 그에게 정체불명의 연극과 교수가 찾아와 오디션에 응해보라고 권고한다.
오디션에서 맡게 되는 역은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회담 리허설을 위한 김일성. 연기 대신 매질과 고문만이 이어지는 이상한 오디션이지만 성근은 죽기 아니면 살기로 온 힘을 다한다. 결국 남북정상회담은 무산되지만, 그는 김일성 역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다.
그로부터 20여년 후, 아들 태식은 스스로를 여전히 김일성이라 믿는 아버지 성근 때문에 미치기 직전이다. 빚 청산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아버지를 다시 옛집으로 모셔오지만, 조용할 날 없는 하루하루를 보낸다.
30일 개봉하는 ‘나의 독재자’는 자신을 김일성이라 굳게 믿는 남자와 그런 아버지로 인해 인생 꼬여버린 아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첫 남북정상회담 당시 리허설을 위해 김일성의 대역이 존재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영화적 상상력을 가미해 탄생한 이 영화는 역사 속에서 그 존재조차 비밀이었던 한 남자의 특별한 이야기에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보편적 공감대를 더해 유쾌한 웃음과 감동이 녹아 있는 드라마로 완성됐다.
헤어스타일부터 옷차림, 몸짓과 손짓, 말투 하나까지 김일성과 꼭 닮은 모습으로 거리를 활보하며 마트에서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현장지도를 하고, 눈만 마주치면 자급자족, 민족경제를 부르짖는 성근의 모습은 그 자체로 아이러니가 돼 색다른 웃음을 만들어낸다.
반면 ‘돈은 곧 목숨이다’라는 인생 모토를 부르짖지만 버는 것 보다 쓰는데 집중한 나머지 빚을 안고 사는 아들 태식은 아버지와 함께 하는 것이 죽기보다 싫지만, 빚 청산 때문에 아버지의 비위를 맞추는 모습을 보이며 특별한 재미를 더한다.
특히 시간이 흐르며 점차 독재자의 모습 속에 감춰진 성근의 모습을 보기 시작하는 태식과 그런 태식 앞에서 고집불통 독재자가 아닌 진심을 숨긴 평범한 아버지로 돌아서는 성근의 변화는 가슴 한구석 진한 여운과 울림을 선사한다.
연기파 배우 설경구와 박해일이 이 영화를 통해 처음으로 부자(父子) 호흡을 맞췄다. 성근 역의 설경구는 외적인 변신은 물론 캐릭터에 완벽하게 빙의된 압도적 연기로, 아버지에 대한 복잡한 감정과 애증을 안고 사는 태식 역의 박해일은 전작의 진지하고 선 굵은 모습과 또 다른 새로운 매력으로 관객들에게 다가온다.
‘천하장사 마돈나’(2006), ‘김씨표류기’(2009) 등을 연출해 주목받았던 이해준 감독이 메가폰을 들었다.
/김장선기자 kjs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