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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록 이면과 신립 장군 재조명한 역사팩션

주목받지 못한 신립 장군 초점 맞춰
임진왜란 초기와 탄금대 전투 전개
하나의 역사 다양한 시각 통해 구성

 

드라마를 비롯해 관련 서적들까지 대한민국은 ‘징비록’의 열풍 속에 있다.

‘징비록의 그림자’는 류성룡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가 대부분인 징비록 열풍 속에서 “그가 과연 영웅으로 추앙받을 만한 사람인가”라는 반론에서 탄생했다. ‘징비록의 이면과 신립 장군을 재조명한 역사 팩션’이라는 부제처럼 그동안 주목받지 못한 신립 장군을 중심으로 임진왜란 초기와 탄금대 전투에 관한 이야기가 전개된다.

역사학자이자 저술가인 저자 김희진은 전공인 전쟁사 관련 답사기를 쓰면서 임진왜란 초기의 ‘탄금대 전투’를 살펴보던 중 패전의 책임을 현장 지휘관인 신립 장군에게 뒤집어 씌우는 방향으로 역사가 왜곡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에 따라 저자는 실제 답사와 고증을 통해 탄금대 전투의 실상과 임진왜란 발발 전과 초기의 모습을 재해석한다.



『후에 명나라 장수 이여송이 왜군을 쫓아 조령을 지나가다가 이렇게 탄식했다고 한다. “이런 천혜의 요새지를 두고도 지킬 줄을 몰랐으니 신 총병도 참으로 부족한 사람이로구나” 원래 신립은 날쌔고 용감한 것으로 이름이 높았으나 전투의 계책에는 부족한 인물이었다. 옛 사람이 이르기를, “장수가 군사를 쓸 줄 모르면 나라를 적에게 넘겨준 것과 같다”라고 하였다는데, 이제와서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러나 후손들에게 경계가 될 것이라고 생각해 상세히 적어둔다.』-류성룡의 ‘징비록’중에서



위의 인용처럼 탄금대 전투는 조령이라는 천혜의 요새를 버리고 적을 맞은 신립의 실책으로 인해 패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저자는 실상과 다르다고 말한다. 조선을 침략하기 위한 목적으로 온 일본군은 말 그대로 정예 병력이었다. 이에 맞서는 조선은 일본이 침략을 할 것이라고 예상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전쟁 준비도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였다. 급하게 모은 병력은 고작 8천여명. 그것도 농민이 주축이 된 오합지졸이었다. 저자는 이러한 상황이었음에도 류성룡은 명나라 장수 이여송의 말을 인용해 신립을 우회적으로 비난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또 조령이 천혜의 요새이기는 하지만 일본군은 조령을 거치지 않고도 서울에 입성할 수 있었고 굳이 자신들에게 불리한 길을 택할 필요가 없었다. 때문에 일본군을 막기 위해 신립이 선택한 곳은 기병에 최적화된 평야지대인 달천평야였고 그것이 최선이었다고 설명한다.

이처럼 신립장군은 패장으로 기록되며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으며 그를 제대로 기억하려는 시도와 노력이 없었다. 저자는 신립 장군을 우리나라 ‘문중사학’의 희생자, 기득권층에 희생된 대표적인 ‘실무자’로 여기며 이러한 역사는 비단 조선시대뿐만 아니라 현재도 진행형이라고 이야기한다.

‘징비록의 그림자’는 사료를 바탕으로 저자의 상상력을 가미해 역사적 사실과 허구적 창작을 절묘하게 엮어냈다. 책은 3개의 장으로 구성된다. 1장은 북방 영토를 지키는 ‘전쟁의 신’신립 장군을 기록한다. 2장에서는 임진왜란 전 통신사 파견과 선조의 내면갈등을 다루며, 3장에서는 전쟁 발발 후 탄금대 전투의 실제 모습을 생생하게 재현해낸다./민경화기자 mk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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