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장 시작하게 하십시오”
아이들 ‘꿈’ 어른들 기준으로 강요해선 안 돼
기성시대 ‘꿈=안정적인 직업’ 고정관념 깨야
자녀가 하고 싶은 일 지도해주는 게 부모 역할
만화가인 박재동 화백은 조용하지만 힘 있는 목소리로 강의를 마쳤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이내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가 울려 퍼졌다. 강사의 감동적인 강연에 적극적으로 화답하는 박수였다. “지금 당장 시작하게 하십시오.” 마지막으로 한 말은 파문이 되어 내 가슴을 뛰게 하였다. ‘지금 당장 시작하라.’
요즘 우리 교육을 관통하는 화두는 ‘꿈’과 ‘끼’이다. 2016년 전면 시행을 앞둔 자유학기제를 보급하면서 교육부는 이 단어를 함께 전했다. 학교 현판에는 큼직한 글자로 이 말이 내걸렸다.
경쟁 교육에서 탈피하여 아이들의 ‘꿈’과 ‘끼’를 키우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그러나 우리들의 10대들은 이 단어 때문에 꿈이 있어야 정상적인 아이들이라는 강박관념이 생겼다. 학교생활기록부를 반영하는 일부 고교입시나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은 ‘꿈’이 없다면 낙오자라는 인상을 갖게 되었다.
‘너의 꿈은 무엇이니?’ 어른들은 아이들을 보면 이 말부터 했다. 성적을 물어볼 때의 난감함 보다야 낫기는 하지만 아이들의 당혹스러움은 여전했다.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교육은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라는 명제에 빠져있는 기성세대는 아이들에게 꿈을 갖기를 강요했고, 꿈을 모르겠다는 아이들을 보면 한심하다는 듯이 혀를
찼다. 그러나 정작 아이들이 하고 싶어 하는 일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어른들의 기준에 맞는 ‘꿈’은 없어도 아이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은 있다. 어른들은 ‘꿈’이라는 단어를 화려하고 안정적인 직업을 대신하는 말로 사용한다. 심한 경우는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을 우리 아이들이 대신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꿈’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오죽하면 이런 동시가 있을까. 한 초등학생이 쓴 ‘여덟 살의 꿈’이다. “나는 사립초등학교를 나와서, 국제중학교를 나와서, 민사고 를 나와서, 하버드대를 갈 거다. 그래 그래서 나는…내가 하고 싶은 정말 하고 싶은 미용사가 될거다.” 사립초등학교, 국제중학교, 민사고에 하버드대까지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꿈을 강요한다. 그런데 정작 아이가 하고 싶은 일은 미용사이다. 아이에게 ‘꿈’은 미용사지만, 어른들에게‘꿈’은 사립초등학교이고 국제중학교이며 민사고에 하버드대이다. 아이들이 미용사를 하고 싶다고 말하면 우리는 펄쩍 뛴다. 그건 꿈이 될 수없다고 소리 지른다.
박재동 화백은 세계 어린이 만화가 대회에 참가한 영국의 줌 록맨을 소개하면서 우리 아이들이 ‘당장 시작하라’는 말을 실천해야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줌 록맨의 어머니는 아이가 만화가가 되겠다고 하자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래, 지금 당장 만화를 그리렴. 그리고 그 만화를 팔아보렴.” 줌 록맨은 어머니의 말씀을 따라 만화를 그렸고 친구들에게 팔기 시작했다. 지금은 자신의 만화로 월간잡지를 만들어 전 세계에 판매하고 있는 어엿한 만화가이다.
CEO가 되고 싶다는 아이에게는 직접 사업체를 만들어 보고, 용돈을 벌게 하고, 사회복지사가 되고 싶은 아이에게는 지금 다른 사람을 돕기 시작하면서 경제활동까지 할 수 있게 하라고 했다. 반드시 경제활동은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 그 이유는 경제활동은 절실함과 함께 보상을 주기 때문이다. 이러한 절실함과 보상은 아이들이 자신의 꿈에 도달할 수 있도록 성장하게 한다. 미래를 위한 준비에 가장 빛나는 아이디어를 지닌 10대를 저당 잡힌 나머지, 일찍 늙어버리는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꼭 필요한 말이다. 내 속에 있는 또 하나의 고정관념이 깨지는 소리가 났다. “그래.지금 당장 해야 한다.” 잠시 멍하게 있다가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박수로 표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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