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칼럼 학력주의, 변화가 필요하다
김덕년 장학사 경기도교육청
고교 3년 교육 무엇이든 다 대학입시와 연결
학력보다 본 모습으로 평가받는 사회가 됐으면
어느 큰 부자의 잔치판에 내로라하는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이때 한 선비가 허름한 옷차림으로 잔치를 찾았다. 그러나 선비의 행색을 훑어보던 문지기가 그를 들여보내지 않았다.
“당신 같은 거지는 들여보낼 수 없소.” 선비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거지가 아니라고 말했다. 그러나 문지기는 듣지 않았다. “어디서 거짓말을 하는 거요? 썩 물러나시오.” 이렇게 문전박대를 당한 선비가 한쪽에 비켜서서 보니, 문지기는 의복을 근사하게 차려 입은 사람들에게는 무조건 허리를 굽실거리며 안으로 안내하는 것이었다.
선비는 집으로 돌아와 의관을 깨끗하게 갖춰 입고 다시 문지기 앞에 섰다. 문지기는 누군지 물어보지도 않고, 깍듯하게 안내했다.
선비는 문지기의 안내를 받아 자리에 앉았다.
앞에 놓인 상에는 온갖 맛있는 음식들이 가득 차려져 있었다. 선비는 이 자리에 앉게 된 것은 순전히 의복 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선비는 술잔을 들어 자기 옷에다 부었다. 옆에 앉은 사람이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아니, 술을 왜 옷에다 따르십니까?” 선비가 대답했다. “내가 이 자리에 앉게 된 것은 오로지 이 옷 덕분이라서 옷에다 술을 부었습니다.” 같은 사람이지만 허름한 옷을 입었을 때는 문전박대를 당하다가 좋은 옷을 입자 잔치 자리에 참석하게 된다면 이는 순전히 그 사람이 누군지 보다는 어떤 옷을 입었는지에 따라 평가를 받기에 당연히 잔치집의 좋은 음식은 사람보다는 옷이 대접받아야 마땅했기 때문이다.
“탤런트면 연기를 잘 한다, 못 한다로 판단해야지 왜 무슨 대학을 나왔다는 것으로 평가돼야 해?” 딸이 제 엄마한테 퉁을 준다. “그래, 맞다. 탤런트면 연기로, 개그맨이면 웃음으로, 가수면 노래로 평가받아야 당연한 거지.” 내가 거들자 아내는 급히 말을 돌린다. “아니, 그냥 그렇다는 거지. 좋은 대학 나와서 더 알려졌을 수도 있잖아.” “더 배우고 덜 배우고는 개인의 필요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거야. 요리사가 부족한 것을 배우기 위해서는 실력 있는 요리사에게 가야 하는 거지. 그렇게 배운 사람이 자기능력을 최대로 발휘할 때 우리는 명인이라고 할 수 있는 거야. 그런데도 우리는 요리사의 출신 대학을 더 따지잖아.” 이렇게 말하니 딸아이가 싱긋 웃는다.
아직도 우리는 사람을 겉모습으로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 아이들을 한 줄로 세워두고 싶어 한다. 그런데 한 줄로 세우는 기준이 시험이다. 숫자에 의한 서열화에 익숙한 우리는 숫자로 된 공정의 덫에 빠져 허우적댄다. 고교 교육은 무엇이든 다 대학입시와 연결된다. 봉사활동도, 수상도, 심지어는 동아리 활동과 특별활동도 모두 대학입시와 관련이 있다. 고교 3년 동안 대학입시라는 오직 한 가지 목표를 향해 아이들의 삶이 맞춰진다. 문지기처럼 본 모습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슨 옷을 입느냐에 따라 대우를 달리 한다. 우리가 바라보는 그 옷이 지금까지 우리가 ‘학력’이라고 말했던 허상이다.
한창 가치관이 형성되어야할 시기에 아이들은 모두 똑같은 곳을 바라보며 걸어가고 있다. 내가 먼저 가지 않으면 낙오자가 되는 현실 속에서 다양한 삶을 향한 탈출구는 전혀 보이지않는다. 서로의 생각이 다르고 생김새가 다르듯 우리가 살아가는 삶은 무척 다양하다. 그럼에도 우리 아이들이 학교에서 화려한 옷을 입으라고 배우고 있다.
이 땅의 10대들이 일제히 같은 날 같은 시간에 같은 시험지로 실력을 평가받아도 그들이 꾸는 꿈은 모두 같지 않다. 그들이 살아갈 삶도 결코 같은 모습이 아닐 것이다. 우리 아이들이 사회에 나가서는 학력이라는 옷보다는 본 모습으로 평가받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김덕년 장학사 경기도교육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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