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 명칭, 일제시대때 지어
지역연구 부족… 이야기 발굴
대한민국문화원상 수상 영예도
“부천은 빠른 도시입니다. 따라서 무궁무진한 문화적 이야깃거리가 잠재된 곳이죠.”
부천문화원 향토문화연구소는 2015대한민국문화원상 향토사 발굴 및 조사 연구부문에서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지역에 대한 애정으로 부천의 향토문화 연구에 힘쓰고 있는 구자룡 소장<사진>을 지난 14일 만났다.
부천이라는 명칭은 일제강점기였던 1914년 일본인에 의해 지어졌다. 논과 밭이 대부분인 시골동네였지만 지금의 부천역이 생기면서 인구가 유입, 급격한 변화를 겪은 도시다.
“부천이 생긴건 이제 100년이예요. 조선시대에는 없던 명칭이었죠. 그래서 고대역사에 대한 기록을 찾기 어렵고, 지역에 대한 연구가 많이 이뤄지지 않았어요.”
서울에서 자란 구 소장은 부천의 고등학교 국어교사로 재직하게 되면서 40여년 전 부천에 정착, 지역 연구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부천문화원에 향토문화연구소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그는 “고강동 선사유적지를 비롯해 작동에는 3개의 옹주묘와 부마묘가 발견되는 등 부천은 역사적 가치가 있는 도시지만 그 연구가 부족하다는 게 안타까웠다”며 “부천만의 문화를 찾아내 보존하고 개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향토문화연구소 설립을 제안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근대 이후 부천의 이야기를 찾아내는 것에 집중했다.
‘범박동·역곡3동 마을誌’, ‘고강동·성곡동 마을誌’등 두권의 책은 마을 사람들의 생생한 이야기와 문학작품 속 마을 이야기를 더해져 풍성하고 재미있는 동지로 재탄생했다.
더불어 2013년 ‘다시 찾은 부천인물’을 발간해 알려지지 않은 부천의 인물을 소개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소망학교를 설립한 신성우 마르코 신부는 폐허였던 부천을 일으킨 분이십니다. 이처럼 알려지지 않은 부천의 인물을 찾아내 문화적 콘텐츠로 만들어내는 것이 연구소의 중요한 기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부천은 빠르게 변화하는 도시이기에 그안에 잠재된 문화적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고 생각한다. 그 가능성들을 찾아내 부천의 매력을 알리는 것이 우리 연구소의 목적”이라고 전했다./민경화기자 mk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