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일본에 선교사와 무역선이 도착해 세계화의 바람이 불던 시기, 조선 사회는 국제적 감각을 잃고 고립됐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부터 1876년 개항 때까지 조선은 문을 굳게 걸어 잠근 채 중국과 일본을 통해서만 서양을 받아들였다.
당시 서양에서 들어온 물건에 대한 조선 사람들의 반응은 신선하다. 이덕무는 ‘소완정 동야소집’이라는 시에서 유리거울에 대해 “서양 거울 맑으니 눈이 어지럽다”라고 했으며, 영조는 색 처리를 한 망원경이 임금을 상징하는 태양을 볼 수 있는 불경한 물건이라며 부숴버렸다.
‘조선에 온 서양 물건들’의 저자 강명관은 세계사의 광풍으로부터 격리된 공간으로 존재했던 조선 후기에 존재했던 서양문물과 그로 인한 조선의 변화를 한 권에 담았다.
책은 안경, 망원경, 유리거울, 자명종, 양금 등 다섯 가지 서양 물건이 어떻게 조선에 전해졌고, 조선 사람들이 그것들을 어떻게 수용했는지 살펴봄으로써 조선의 서양 문물 수용사를 탐구한다.
저자 강명관은 안경, 망원경, 유리거울, 자명종, 양금에 관해 조선 사람들이 남긴 모든 문헌을 샅샅이 섭렵해 이 책을 저술했다. 각 물건에 최초로 언급된 기록으로부터 시작해 그 기록이 어떤 중국 문헌을 참조했는지 근원을 밝히고, 이후에는 시간이 흐르면서 해당 물건이 어떻게 서술되는지 이야기를 이어나간다.
조선뿐만 아니라 중국과 일본 문헌에 관한 폭넓은 조사와 연구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저자를 이를 통해 보잘것없어 보이는 다섯 가지 서양 물건을 통해 ‘조선 지식인의 서양 인식’이라는 주제를 끄집어낸다.
이 책에서 다루는 다섯 가지 물건들은 서양의 근대를 상징하는 면모를 지니고 있다. 예컨대 망원경의 발명은 정확한 천체 관측을 가능하게 해 서양 천문학에 일대 혁신을 가져왔고, 나아가 천동설이 지동설로 바뀌는 세계관의 변화를 초래했다.
또한 원거리 항해에 사용돼 서구의 제국주의가 전 세계로 확산되는 데 큰 역할을 하기도 했다. 자명종은 천문학에서 정밀하게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꼭 필요한 기기였으며, 근대 산업사회에서 노동 시간을 측정하기 위해 필요했다. 안경과 유리거울, 양금은 서구인의 일상생활, 문화생활에 유용하게 사용된 물건이다. 이렇듯 각 물건은 서양 근대의 사상·문화와 긴요한 관계를 맺고 있다.
서양의 사상과 문화가 책과 사람으로만이 아니라 물건 속에 함축돼 조선으로 전해진 것이다.
왜 안경과 유리거울은 신분과 계층에 상관없이 확산되었고, 양금은 조선화됐으며, 망원경과 자명종은 소수 양반의 완호품으로 전락해버렸는지 등 이 책은 다섯 가지 서양 물건을 받아들인 조선 지식인의 인식을 들춰낸다.
/민경화기자 mk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