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세기 말 백제는 안팎으로 곤경에 처해 있었다. 392년 신라와 우호 관계를 맺은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이 백제를 압박했다. 이에 맞서 백제의 아신왕은 고구려 공격을 준비하며 병력과 말을 대규모로 징발했다. 그러나 잇따른 군역(軍役)을 고통스럽게 여긴 다수의 백제 백성들은 신라로 이주해버렸다.
399년, 이 같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왜·가야와 동맹을 맺은 백제가 삼국 연합군을 이끌고 신라를 침공했다. 대규모 공격에 수도 경주까지 포위당하고 말았다. 신라 내물왕은 급히 고구려에 구원을 요청했다. 이듬해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은 5만 명의 군사를 보냈고, 경주의 포위를 풀어줬다. 고구려군은 더 남하해 가야 지역까지 밀어붙였다. 당시 동북아의 강자로 군림하던 고구려가 한반도 남부까지 진출한 것이다.
고구려에 구원을 요청한 대가는 혹독했다. 내물왕은 아들을 고구려에 볼모로 보내야 했고 신라 영토에는 고구려군이 주둔하기 시작했다. 자기 영토에 침입한 외적을 막지 못해 외국 군대를 불러들여야만 했던 나라, 그 외국 군대가 자기 나라에 주둔하면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던 나라 신라의 상황은 비참했다. 하지만 힘이 없어 참을 수밖에 없었다. 그로부터 꼭 276년이 흘렀다. 자신을 공격했던 백제와 가야, 자신을 구원했던 고구려는 모두 지도에서 사라졌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것은 가장 약한 신라였다.
고구려, 백제, 신라가 자웅을 겨루던 삼국시대는 우리 역사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시기였다. 고구려는 강력한 군사력을 앞세워 드넓은 만주벌판을 호령했다. 백제는 활발한 대외교역과 높은 생산력을 바탕으로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다. 하지만 신라는 고구려나 백제에 비해 열등했다. 군사, 경제, 외교, 교역, 문화 등 여러 방면에서 뒤처졌다.
신라가 뒤처진 데에는 지리적인 환경도 큰 몫을 했다. 소백산맥으로 둘러싸인 분지에 자리했기 때문이다. 방어는 쉬웠지만 외부로 진출하기는 어려웠다. 동남쪽에 치우쳐 있어 선진문물을 받아들이는 것도 항상 늦었다. 넓은 평야지대를 가지고 있지 않아 생산력도 그리 높지 않았다. 그렇다고 인구가 많은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신라는 삼국을 통일하고 나당전쟁에서 승리했다. ‘신라는 어떻게 살아남았는가’는 고구려와 백제의 틈바구니 속에서 최후의 승자가 된 신라의 이야기다. ‘전략전술의 한국사’(2014), ‘나당전쟁 연구’(2012) 등의 저서에서 확인할 수 있듯 그동안 전쟁사 연구에 매진해온 저자 이상훈(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연구교수)은 이 책에서 ‘신라는 과연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라는 의문에 답하기 위해 여러 가지 사례를 정리한다. 지도자의 리더십과 전략전술, 시대 배경과 정치 상황, 위기 대처와 극복 방법, 전투와 전쟁 방식 등을 살피면서 신라의 힘을 찾는다. 책은 신라의 살아남는 방법을 소개하며 치열한 경쟁 속에 매일매일 전쟁을 치르며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그 비법을 전한다./민경화기자 mk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