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모한 도전일수도 있었는데 젊은 패기와 끈기로 한 청년은 돈화에 정착하기로 마음 먹는다. 아무도 모르는 이 도시에 남아 자신만의 세상을 개척하려 결심한다. 18년이 흐른 지금 그 청년은 ‘오동성’이라 일컫는 돈화에서 태권도는 물론 조선족씨름이라는 이 민족체육의 보급과 발전에서 ‘선두주자’로 거듭나고있는것이다. 12살 때부터 권투, 태권도, 씨름, 유도 등 다양한 격투기운동을 섭렵하면서 무도인으로서 ‘다식가’의 이미지를 챙겨가고있는 그가 바로 2월 17일에 만난 돈화시 최풍진태권도관 최풍진관장(43살)이다.
“1998년 처음 돈화에 왔을 때만 해도 많은분들이 태권도, 조선족씨름에 대한 료해가 전혀 없었댔습니다. 비록 고향은 훈춘이지만 돈화에 머물러 우리 민족 특색운동을 돈화에 널리 알리자는 발상이 생기게 됐습니다.”
돈화시무술협회 특별초청하에 최풍진관장은 제한된 자금으로 도관을 마련하고 자신의 우세를 발휘하면서 돈화시 민족체육 보급에 힘쓰기 시작했다. 제2의 고향이나 다름없는 돈화에 머물러있은 20년간, 사회 각계의 지지와 본인의 꾸준한 노력하에 선후하여 돈화시 조선족씨름협회, 조선족체육협회, 축구협회가 고고성을 울리게 되였으며 자신도 씨름으로부터 축구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활동폭을 넓혀나가기도 했다.
“얼마만큼 씨앗을 뿌리면 그만큼 수확이 따르는것 같습니다. 현재 돈화시에 태권도관도 점점 많아지고있고 조선족씨름경기도 해마다 무난히 조직되고있는데 이는 4년 동안 발품을 팔면서 보급에 힘다해왔기때문입니다. 초반에는 사람들이 태권도, 조선족씨름에 대한 료해가 부족하다보니 학생모집이 가장 어려웠습니다.”
최풍진관장에 따르면 당시 체육 해당 부문의 도움으로 교육국과 련계를 맺고 각 조선족학교 책임자들의 방조하에 민족체육의 특색을 살리면서 처음으로 학생들에게 태권도, 조선족씨름을 가르치기 시작했다고 한다.
돈화의 조선족씨름의 변화를 살펴보면 이 운동이 이곳에 뿌리내린 2002년, 처음으로 돈화시에서 조선족씨름경기가 펼쳐지면서 서서히 빛을 보기 시작했다고 한다. 20년이 지난 지금, 돈화에서 민족체육의 보급범위는 전례없이 넓어졌다.
“아이들은 례의를 배울수 있었고 민족체육에 대한 부모들의 인식도 전변됐습니다. 2013년 이래 발전이 가장 빠른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세워진 태권도분관은 16곳, 가르친 학생수만도 수천명에 치닫는다고 한다.
꿈꾸는것만으로도 가슴 설레이는데 그 꿈을 현실로 바꿀수 있다면 얼마나 벅차고 행복할가. 도관을 운영하는 한편 민족체육의 발전도 실현해가면서 무도인으로서 조선족씨름지도, 태권도사범으로 그 역할이 전변될것만 같았지만 최풍진관장은 철저한 자기관리로 아직도 경기에 출전하면서 한편으로 선수생활도 즐기고있다.
경기에 참여하는 희열은 달콤하고 뿌듯한것이다. 사무실 한 벽면에 진렬된 그의 영예증서와 우승트로피들만 해도 수두룩하다. 수십년간 하루와 같이 견지해온 운동 덕분에 그는 일반인보다 훨씬 차분하고 여유로왔으며 인내심이 강했다.
“때론 자신의 경기보다 갖가지 운동을 가르쳐온 제자들의 경기 희소식에 더 행복을 느낍니다. 더 큰 무대에서 그들의 모습을 보고싶습니다.”
최풍진관장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자신의 능력과 삶이 누군가에게 선물로 될수 있다는것이 가장 큰 축복인 셈이다. 그의 끈질긴 18년간의 노력으로 돈화시 민족체육은 서서히 그 모습을 바꿔가고있고 또한 세월의 흐름속에서 자기 자신의 사나이의 꿈을 이루어가고있다.
/글·사진=리명옥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