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화 과정에서 서양의 선진문물을 빠르게 흡수해 성공을 거둔 나라 일본. 당시 근대화의 고비에 서 있던 일본은 서양 문물을 보고 익혀 온 지식인들이 앞장서 일본사회의 질적 변화를 유도했다. 이를 두고‘해외연수에 성공한 케이스’라고 빗댄 문구가 괜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출판사 '논형'이 기획시리즈로 출간중인‘일본 근대 스펙트럼’두 번째 순서로 '박람회-근대의 시선'을 내놓았다.
영어로 ‘그랜드 엑스포지션’ 또는‘월드 페어’로 불리는 박람회는 다양한 이벤트를 포함해 상품과 기술 이외에 보고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대중오락을 갖춘 전시행사를 뜻한다. 우리나라에서도 현재 약칭‘엑스포’란 이름으로 전문전시장에서 잇따라 열리며 대중소비사회의 주요 현장으로 자리매김해왔다.
이 책에서 저자 요시미 순야는 서구 근대화과정에서 군중동원 수단으로 쓰였던‘박람회’를 본 따 일본 근대화를 이끌었던 역사를 비추고 있다.
‘연출된 소비문화’‘제국주의의 제전’'변용하는 박람회 공간' '박람회와 문화정치학' 등으로 구성된 이 책은 일본이‘박람회’를 어떻게 이용해 세계에 자신을 알리고 근대화의 길을 걸었는지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박람회와 식민지주의의 밀접한 관계, 박람회와 소비문화와의 연관성 등에 주목한다.
저자는 박람회 시대는 동시에 제국주의 시대였다고 말한다. 19세기 이후 영국·프랑스·오스트리아 등 서구 제국(諸國)들이 잇달아 열었던 만국박람회들은 자신들의 산업적 성과를 자랑하기 위해 벌였던 일종의‘패션’이었다.
실제로 샹제리제, 에펠탑, 그랑팔레, 오르세미술관, 알렉산드르2세 다리 등 파리의 명소들은 1855년 이후 10년마다 열렸던 대규모 국제 박람회의 산물이다. 나폴레옹3세는 파리 전체를 거대한 무대장치처럼 변용시키며 각종 박람회를 개최하는 등, 당시의 박람회용 건물은 오늘날 파리의 주요시설로서 19세기 ‘박람회의 도시’ 파리를 증언하고 있다.
이후 박람회 문화를 받아들인 일본은 자국에서 열린 각종 박람회와 해외박람회에 내놓은 출품작들 속에서 제국주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낸다. 1895년 청일전쟁의 해에 간행된 시카고 만박참가 보고서에서는 공예관에서의 전시에 관한 항목가운데 일본의 전시구획이 영국, 프랑스, 독일, 오스트레일리아, 벨기에, 미국과 같은 큰길쪽에 접해 면적으로도 이들 나라의 다음인 점이 강조됐다. 이는 일본이 구미열강과 동등한 지위를 얻었다는 제국주의의 단편적 모습이다.
박람회와 소비문화와의 관계도 1877년(메이지 10년) 도쿄 우에노에서 열린 '내국권역박람회'부터 보여진다. 이 박람회는 일본이 기획한 첫 박람회로 서구에서 박람회와 첫 대면(1862년 열린 런던박람회) 한 지 불과 15년 만에 자신들의 박람회를 연 것이다. 1만6000여명이 출품한 이‘내국권역박람회’는 102일간 무려 45만명이 관람하면서 일본에서‘박람회 붐’을 일으키는 데 성공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