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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길마다 자연의 파노라마… 분단의 아픔은 잠시 접으세요!

남과 북의 분단 현실을 가장 가까이서 만나볼 수 있는 평화누리길에서는 자연과 하나되는 기분을 맘껏 느낄 수 있다. 수도권 최대 철새 도래지인 후평리 철새도래지부터 연화봉, 당포성, 주상절리, 군남홍수조절지 등을 만나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 자연 본연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곳곳에서 끝나지 않은 전쟁, 분단 현실을 잠시 잊고 순수한 자연의 모습에 취할 수 있다. 평화누리길 코스 가운데 ‘분단 현실을 잠시 잊고 자연과 하나되는 길’, 김포의 끝자락에 위치한 한강철책길(3코스)과 때묻지 않은 자연을 만나볼 수 있는 임진적벽길(11코스)에 숨어있는 역사·문화 이야기와 함께 걸어보자.
 

 

 

 

 

 

 

 


김포 들판·바다, 노을빛 머금은 한강철책길

김포 끝자락에 위치한 평화누리길 3코스
드넓은 김포평야 펼쳐지고 한강 흐르는 곳

애기봉 정상에선 북녘 땅도 한눈에
후평리, 철새 도래지로도 유명한 곳


김포의 마지막 코스인 한강철책길은 애기봉 입구에서 마근포리마을회관, 후평리 철새도래지, 석탄배수펌프장을 거쳐 전류리포구로 이어진다.

드넓은 김포평야가 펼쳐져 있고 철책 너머 한강이 흐르는 곳이다.

김포의 땅 끝 애기봉은 유독 전쟁의 상흔이 많은 곳이다.

애기봉의 또다른 이름은 한국전쟁 당시 남북이 서로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전투를 벌였던 154고지다.

신분증을 내고서야 오른 이 곳 정상에선 당시 상흔 뿐 아니라 북녘땅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시간을 거슬러 병자호란 당시 애기봉은 평안감사와 그의 애첩 ‘애기’(愛妓)의 슬픈 사랑 일화가 서려있기도 하다.

조선 인조 14년(1636년) 청나라 태종이 10만 대군을 이끌고 조선을 침략한 병자호란이 일어났을 당시 평안감사는 치열한 전투로 다치고 굶주린 병사들과 피난민을 이끌고 한양을 향해 남하하고 있었다.

이 중에는 평안감사의 애첩 ‘애기’도 있었는데 함께 남하하던 중 개풍군에서 평안감사는 청나라 군사들에 의해 북쪽으로 끌려가고 기생 ‘애기’만이 한강을 건너 이 곳 조강나루에 도착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 후 ‘애기’는 조강리 마을에 머물면서 매일 봉우리에 올라가 강 건너편을 바라보며 일편단심으로 평안감사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나 끝내 평안감사는 돌아오지 못했고 애기는 병들어 죽기 전 마을사람들에게 자신이 죽더라도 평안감사가 돌아오는 것을 빨리 볼 수 있도록 봉우리에 묻어달라 유언했다고 전해진다.

이후 330년이 지난 1966년 10월 7일 이 곳을 방문한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봉우리에 얽힌 사연을 듣고 ‘애기의 한이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오가지 못한 일천만 이산가족의 한과 같다’며 봉우리 이름을 애기봉으로 명명한 후 친필휘호로 비석을 세웠다.

한강철책길은 애기봉의 설화와 함께 시작해 자연을 더듬으며 걸어갈 수 있는 길이다.

한강을 품은 들녘 사이를 걸으면 김포의 들판과 바다가 황금과 황토의 빛깔을 머금고 있음을 눈 앞에서 볼 수 있다.

애기봉을 내려와 만나는 작은 마을 가금리에는 오래된 느티나무 두 그루가 서 있는데 수령이 500년 가까이 된 고목들은 나무의 연륜으로 봐선 이 곳이 꽤 큰 마을이었음을 짐작케한다.

느티나무를 지나 조금 더 걸으면 고려 말 문신 박신 묘역과 그가 심었다는 500년 된 향나무가 나타난다. 박신은 고려 말 정몽주의 제자로 고려 1385년(우왕11년) 과거에 급제하고 태조가 조선을 건국하자 원종공신의 칭호를 받았던 인물이다. 세종 때 이조판서로 재직했으나 아랫사람들의 비리에 연루돼 1419년부터 1432년까지 김포 통진에 유배됐다.

이때 그는 통진과 강화 갑곶진 사이를 왕래하는 사람들이 배를 타고 내리기 위해 한 겨울에 갯벌에 빠지는 것을 보고 사재를 털어 갑곶나루를 완성했다고 전해진다.

가금리와 마근포를 지나고 나면 후평리와 시암리를 지나는 길목에서 밭을 갈아엎고 있는 농부들을 만나게 된다.

마을을 빠져나와 연화사 삼거리에 도착하면 북쪽으로 연화봉이 보이는데 해발 75m의 연화봉은 1천500년전 영토 전쟁의 비화가 전해져 내려온다.

1천500여년전 삼국시대에 고구려가 영토확장을 위해 백제를 침략했을 때 고구려 병사가 백제의 낭자와 사랑에 빠졌다. 그 후 백제군이 전세를 가다듬어 반격에 나서자 고구려군이 한수 이북으로 패퇴하게 되고 고구려병사는 백제 낭자에게 곧 다시 오마 약속하며 후퇴했다.

그 후 낭자는 매일 같이 이 산봉우리에 올라 북쪽을 바라보며 병사를 기다렸지만 병사는 끝내 오지 않았다.

병사를 향한 마음을 못 이겨 강을 건너려다 개펄에 빠져 죽었는데 그 자리에 한 송이 연꽃이 피었다해 연화봉이라 부르게 됐다고 한다.

후평리는 철새도래지로도 유명하다. 민통선으로 사람들의 발길이 묶인 이 땅은 철새들의 먹이가 풍부할 뿐 아니라 후평리 일대의 비옥한 농경지가 철새들의 안락한 보금자리가 됐다. 해마다 겨울이 되면 월동을 위해 시베리아 등지에서 철새들이 찾아온다. 겨울이면 청둥오리와 흰뺨검둥오리, 흰죽지, 황오리 같은 오리류 뿐 아니라 천연기념물 제203호인 재두루미도 만나볼 수 있다.
 

 

 

 

 

 

 

 


때묻지 않은 자연 간직한 임진적벽길

평화누리길 11코스로 총 19㎞ 코스 구성
들판·강변·야산 등 아름다운 광경 펼쳐져

화산으로 만들어진 동이리 주상절리 ‘장관’
임진강 최상류 군남홍수조절지도 만날 수 있어


한민족의 허리춤인 DMZ 중심을 걷는 평화누리길 11코스 임진적벽길은 총 19㎞ 코스로 숭의전지에서 시작해 당포성과 주상절리, 군남홍수조절지까지 이어지는 길이다.

들판과 강변, 야산 등을 통과하며 다양한 경관을 즐길 수 있어 좋지만 민가가 적어 도보 여행을 위한 철저한 준비가 필요한 구간이다.

숭의전지에서 도이리 연천 당포성까진 2차선 도로를 따라간다. 들꽃과 함께 걷다보면 삼화교 건너 우측 둔덕에 자리한 성곽이 눈에 들어온다.

연천 지역은 고구려의 남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4세기말부터 고구려와 백제의 주요 전략적 요충지였다.

장수왕(475년)이 백제의 수도 한성을 점령할 무렵인 6세기 중반, 고구려의 세력권에 포함됐던 이 곳은 백제와 신라의 연합군에 밀려 고구려가 한강 지역에서 패퇴하면서 임진강을 중심으로 고구려의 방어선이 구축됐던 곳이다.

이때부터 연천지역은 삼국의 치열한 각축장으로 변모했다. 그 중 당포성은 강을 건널 수 있는 얕은 여울목이 형성된 곳으로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요충지였다.

성곽에 오르면 임진강 너머 파주와 동두천의 산봉들이 눈 앞에 펼쳐진다.

당포성을 나와 도로를 따라 걸으면 주상절리로 향한다.

둑길에서 강변으로 내려서면 거대한 성벽 같은 암벽이 강줄기를 따라 끝없이 펼쳐진다.

화산활동으로 만들어진 동이리 주상절리다.

이 주상절리는 높이 40m, 길이 1.5㎞에 이른다.

불길에 휩싸였던 견고한 화상의 흔적은 계절에 따라 날씨에 따라 다양한 절경을 만들어낸다.

임진적벽길의 종착지인 군남홍수조절지를 코앞에 둔 북삼리에는 징파나루가 있다.

정약용이 ‘대동수경’에서 강바닥의 자갈이 훤히 비칠 정도로 물이 맑다해 징(澄), 물결 파(波) 자를 쓴 임진강의 큰 나루다.

징파나루는 미수나루 또는 둔전나루라고도 불렸다.

연천의 대표적 역사 인물인 미수 허목이 나들이를 할때 반드시 이 나루를 이용해야만 했기에 ‘미수왔다!’하고 큰소리로 사공을 불렀다고 전해진다.

햇살에 반짝거리는 강물 위로는 물새가 날아다니는 모습을 보고 연천 사람들은 ‘국보급 풍경’이라 자부심을 갖는다고 한다.

임진강을 따라 군남홍수조절지로 가는 길은 굴비두름 같은 철조망으로 엮은 초소의 행렬이 길게 늘어서있다.

 


군남홍수조절지의 역사 또한 서글픈데 북의 황강댐에 대응해 지난 2010년 서둘러 완공돼 높이 26m, 길이 658m의 홍수조절량이 7천100만t에 불과한 작은 댐이다.

2009년 9월 북한의 황강댐 무단방류로 야영하던 주민 6명이 사망하면서 2010년 6월 이 댐을 조기에 완공하게 됐다.

군남홍수조절지는 임진강에서 우리가 갈 수 있는 최상류기도 하다.

이 땅의 수많은 강 가운데 유일하게 남한과 북한을 관통해 흐르는 임진강 물길은 여기서 끝이 난다.

발아래로 가로 막힌 물길이 북녘 산협으로 사라지는 이 곳에서 분단의 상징이 돼버린 임진강을 언젠가는 반드시 건널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그려본다.

/이슬하기자 rach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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