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은 1천100명 규모의 특수부대를 유럽으로 급파했다. 이들의 임무는 일급비밀이어서 아군조차 그들의 존재를 거의 몰랐다. 독특한 점은 또 있었다. 부대원 대다수가 화가, 디자이너, 무선통신사, 엔지니어라는 것.
이들의 임무는 단 하나, 독일군을 속이는 것이었다. 이들은 고무로 전차를 만들고, 불도저로 전차 바퀴 자국을 내고, 거대한 스피커로 공병부대가 작업하는 소리를 내보내고, 거짓 작전을 담은 모스 부호로 독일군을 혼란에 빠뜨렸다.
고스트 아미는 진짜 부대가 새로운 작전지로 이동하는 동안 전선의 구멍을 메우는 중대한 역할을 해냈다. 늘 최전방에 머물며 독일군을 유인했고 이들의 목숨을 건 기만작전은 9개월간 계속됐다.
고스트 아미의 존재는 1996년까지 군 기밀이었다. 미군으로서는 냉전 상황에서 소련에게 이 일급비밀부대의 작전을 노출하기 꺼려졌을 것이다.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던 고스트 아미의 존재는 저자 릭 바이어가 제작한 독립다큐영화 ‘고스트 아미’를 통해 재조명됐다.
미국 최고의 다큐멘터리 제작자이자 ‘고스트 아미’ 공저자인 릭 바이어는 “이건 참 별스러운 이야기이다. 하지만 여러분이 이 기상천외한 사실을 꼭 알았으면 좋겠다. 그래야 제2차 세계대전을 빠짐없이 아는 것이다”라고 밝히며 책에 대한 궁금증을 증폭시켰다.
흥미로운 점은 고스트 아미 부대원들은 군인이기 전에 예술가였다는 것이다. 그들은 짬이 날 때마다 붓을 들어 파괴된 마을, 가족을 잃은 아이들, 막간 휴식을 즐기는 장병들, 자화상 등을 그렸고 전쟁터에서도 자기들만의 작은 전시회를 열었다고 전해진다. 이처럼 예술적 재능으로 뭉친 병사들이 그린 수많은 수채화와 드로잉도 책에 담겨있다. 뿐만 아니라 2015년 타계한 추상주의 화가 엘즈워스 켈리, 패션 디자이너 빌 블라스, 야생동물 화가 아서 싱어, 할렘에서 재즈 뮤지션 52인을 찍은 사진으로 유명한 아트 케인까지 고스트 아미 부대 출신 유명 예술가들의 흔적도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민경화기자 mk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