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1년 8월 11일 ‘아사히신문’ 오사카 본사 사회부 기자였던 우에무라 다카시는 ‘아사히신문’오사카 본사판에 전 조선인 종군 ‘위안부’ 가운데 한 명이 정대협에 처음으로 체험을 증언했다는 기사를 한국 언론보다 먼저 보도한다.
3일 후, 이 여성은 김학순이라는 실명으로 기자회견을 열어 피해 체험을 증언한다. 이 증언을 계기로 피해자들이 잇따라 실명으로 전면에 나서기 시작하고, 이에 따라 ‘위안부’ 문제는 국제적인 문제로 등장하게 된다.
2014년 1월 말, 일본의 대형 주간지인 ‘주간문춘’이 ‘위안부’ 문제를 부정하는 세력의 이데올로기를 형성한 장본인이라고 할 수 있는 니시오카 쓰토무도쿄기독교대학 교수의 코멘트를 담은 기사를 내보낸다.
기사에서 니시오카 교수는 우에무라의 기사가 ‘정신대’라는 용어를 잘못 사용하고 ‘위안부’ 강제연행이 있었던 것처럼 쓰고 있어 “날조 기사라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비판한다.
이 기사로 인해 ‘아사히신문’ 조기퇴직 후 대학으로 전직하려던 우에무라 전 기자의 계획은 좌절된다. 해당 대학에 “우에무라를 그만두게 하라” 등의 항의 메일이 밀려들어 교수 취임이 불가능해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가족까지 살해 위협에 시달리는 등 혹독한 시련을 겪게 된다.
이 책은 이 같은 우에무라 공격의 기록이자 그에 대한 반증 등을 담은 투쟁의 기록이다. 또한 저자 우에무라 다카시가 지금까지 한국과 맺어온 관계를 담은 자서전이기도 하다.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의 경험을 때로는 격정적으로, 때로는 차분하게 되짚는다. 그러면서 강한 어조로 말한다. “나는 날조를 하지 않았습니다”
‘위안부’ 보도 후 ‘날조 기자’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온갖 비방.중상에 시달린 저자의 담담한 회상은 한일 합의 후에도 논란이 끊이지 않는 현 상황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민경화기자 mk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