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불반도’에서 살아가는 이 땅의 청년들은 취업난과 치열한 경쟁에 내몰리고 있다. 청년들은 연애와 결혼, 출산을 포기한 ‘삼포세대’를 넘어, 내 집 마련과 인간관계는 물론 꿈과 희망까지 포기한 ‘칠포세대’로 불린다.
그리고 포기해야 할 것들의 종류는 점점 늘어만 간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흙수저’ 신세를 면치 못할 청년들은 답을 듣고 싶은 마음에, 이른바 ‘멘토’라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러나 멘토의 말에 안도하는 것도 잠시, 또 다시 탈탈 털린 멘탈을 안고 각자 알아서 생존을 모색해야 할 처지에 놓인다.
이게 바로 ‘헬조선’의 현 주소다. 헬조선을 벗어나고 싶다는 욕망은 그만큼 한국 사회가 얼마나 불안하고 살아가기 어려운 곳인지를 보여준다.
극한으로 치닫는 한국사회를 성찰하고자 한국라깡과현대정신분석학회에 속한 한국의 대표적인 정신분석학자 9명 모였다. 헬조선이라는 오명을 안고 있는 한국 사회에 대한 정신분석이 필요하다는 기발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헬조선에는 정신분석: 노답 한국 사회의 증상 읽기’는 총 11개의 주제를 가지고 한국 사회의 증상을 탐색한다.
책은 멘토 열풍, 공부를 강요하는 사회, 형님 아우를 따지는 인간관계, 사랑이 어려워진 시대의 사랑, 외모 강박, 돈을 향한 집착, 권력에 대한 우리의 모순적인 태도, 반사회적인 폭력 범죄, 세대 갈등, 불안을 해소할 사회적 안전망, 진정한 자신을 찾는 여정으로서의 정신분석 등을 주제로 답이 보이지 않는 한국 사회를 정신분석의 시선으로 예리하고 섬세하게 살핀다.
이같은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방안도 논의된다.
프로이트 라깡 정신분석연구소 소장인 홍준기는 ‘불안: 우리는 왜 ‘충분히 좋은 엄마’ 또는 ‘사회적 국가’를 필요로 하는가’에서 오늘날 한국 사회의 정신 병리가 생기는 이유를 사회적인 것에서 왔다고 분석, 국가가 나서야 함을 강조한다.
마지막으로 김서영은 정신분석이란 진정한 자신을 찾는 여정이며 어떤 방향성을 갖고 그 길을 가야 할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부모가 아이의 욕망에 관심을 가질 때 비로소 자신의 욕망 또한 들여다볼 수 있으며, ‘아이와 나’만 존재하던 공간이 타인을 향해 열릴 수 있고 밝힌 김서영 광운대 인제니움학부대학 교수는 절멸의 방향성을 삶의 방향성으로 돌리기 위해서는 최선을 다해 아이의 이야기를 듣고, 부모 스스로 자신의 욕망에서 자유로워야 한다고 밝힌다.
헬조선이라 불리는 한국 사회의 현실을 정신학적 측면에서 분석한 이 책은 우리 사회가 드러내는 다양한 증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몰라 답답하던 이들에게 시원한 사이다 같은 책이 될 것이다.
/민경화기자 mk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