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중간수사결과 발표를 통해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된 것으로 확인된 주요 대기업들이 말을 아끼면서도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등의 압력이 있었음을 조심스럽게 내비쳤다.
20일 관련 대기업에 따르면 현대자동차는 최순실씨 지인회사로부터 11억원 규모의 물품을 납품받고 차은택 씨 광고회사에 62억원 상당의 광고를 준 것과 관련해 안 전 수석의 ‘검토요청’에 따른 것이라고 털어놨다.
현대차 고위관계자는 “안 전 수석이 브로슈어 같은 것을 주면서 ‘한번 검토해달라’고 하는데, 기업 입장에서 그걸 무시할 수 있었겠느냐”면서 “하지만 두 회사에 돌아간 이득은 그리 크지 않다”고 말했다.
안 전 수석과 최 씨가 포스코 계열사였던 광고업체 포레카를 인수한 컴투게더 대표를 상대로 지분 양도를 강요하다 미수에 그쳤다는 검찰 발표와 관련, 포스코는 “수사 중인 사안이라 구체적인 언급을 하기는 곤란하다”면서 “앞으로 성실하게 검찰 조사에 임하겠다”며 말을 아꼈다.
최 씨와 안 전 수석은 포스코를 상대로 직권을 남용해 펜싱팀을 창단토록 하고 최 씨가 운영하는 더블루케이가 펜싱팀 매니지먼트를 맡기로 약정하도록 강요했다는 혐의도 받고 있다.
다만 2014년 권오준 회장 선임 당시 최 씨 측이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은 이날 공소 요지에 포함되지 않았다.
검찰 수사에서 최 씨가 임원급 인사에 간여했다는 의혹이 사실로 드러난 KT는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KT 관계자는 “관련된 인물들이 모두 퇴사한데다 아직 수사가 완전히 끝나지 않은 사안이라 구체적으로 언급하기 곤란하다”면서 “추가 수사 협조 요청이 오면 성실히 응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KT는 최 씨와 차 씨가 추천한 2명을 광고 발주를 담당하는 전무와 상무보로 채용하고, 차 씨가 운영하는 광고회사 플레이그라운드에 68억원 규모의 광고를 주도록 강요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롯데그룹은 K스포츠재단 70억원 추가 기부와 관련, ‘뇌물죄’ 관련 혐의가 언급되지 않자 일단 안도하는 분위기다.
검찰은 이날 최 씨과 안 전 수석의 혐의의 하나로 “두 사람이 직권을 남용해 롯데그룹을 상대로 최순실이 추진하는 하남 복합체육시설 건립 비용으로 K스포츠재단에 70억원을 교부하도록 강요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검찰은 롯데의 70억원 추가 출연에 대해 최 씨와 안 씨의 직권 남용의 근거로만 언급하고, ‘제3자 뇌물공여’ 혐의를 인정하지 않았다.
롯데 관계자는 “우리가 해명한 대로 70억원 추가 출연은 대가성이 없는 기부였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라며 “기금 출연에 대가성이 있었다면 지난해 롯데 잠실면세점이 탈락하고 올해 검찰 수사를 4개월이나 받는 등 그룹의 위기가 설명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후 특검 수사나 국회의 국정조사 과정에서 롯데 등 대기업과 최 씨 측 및 청와대 사이의 모종의 ‘거래’가 확인될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 있어 아직 마음을 놓을 수 없다는 게 재계의 시각이다.
/김장선기자 kjs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