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종로 네거리에서 제야의 종소리를 들려주던 보신각종은 이제 관심갖는 이가 많지 않다.
하지만 조선시대에는 그 의미가 달랐다. 하루의 시작과 끝을 알린 ‘조선의 제일 큰 종’이었던 보신각종은 서울에 들른 이라면 한번은 찾는 장안의 명물이었던 것.
뿐만 아니라 일제강점기에 더 이상 보신각종이 울리지 않자, 근대 지식인들은 침묵하는 종, 그 안에 담긴 나라의 아픔을 위로하는 글과 그림들을 세상에 내놨다.
‘답사의 맛!’은 이처럼 역사적 장소에 담겨있는 인문학적 요소를 찾아 문화유산을 온몸으로 느끼며 맛볼 수 있는 책이다.
홍익대학교 예술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에서 미술사, 미술비평, 예술심리학 강의를 했던 저자는 미술사, 미학, 미술비평, 그리고 문학의 영역까지 넘나들며, 하나의 대상을 입체적으로 조명해 답사의 새로운 방식을 소개한다.
서촌 수성동 계곡에 내려 18세기 정선의 ‘인왕제색도’를 떠올리며 시작되는 ‘그림 같은 풍경’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어느샌가 독자들은 ‘풍경 같은 그림’ 속을 헤매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조선 제일의 대불’이자 명물이었던 관촉사 은진미륵을 찾아가는 여정에서는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조각가 김복진이 남긴 미완의 프로젝트 법주사 미륵대불의 기구한 운명과 맞닥뜨린다.
그런가 하면 20세기 전반 근대 학문으로서 미술사나 미학이 이제 막 발걸음을 떼기 시작하던 시기, 백자미(美)의 근원을 찾아 본격적인 근대적 답사를 떠난 이태준, 김기림, 이여성 등 당대의 기라성 같은 지식인들의 경기도 광주 분원마을 답사를 추체험하기도 한다.
저자가 엮어내는 그들의 글과 그림을 따라가다보면 당시 지식인과 예술가들의 독특한 미적 감각과 태도가 눈에 잡힐 듯 그려진다. 흥미로운 여행도 책속에 담았다.
1920년대의 유명한 문학 잡지 ‘폐허’ 2호에서 고흐의 ‘라마극장의 폐허’ 그림을 발견하고는 문득 폐허를 찾아 남한강변의 폐사지 기행을 떠나기도 한다.
저자는 고달사지, 흥법사지, 법천사지, 거돈사지 의 화려했던 옛 모습을 되살려내며, 이제는 황폐한 절터에서 홀로 남아 있는 빼어난 유물들을 극적으로 그려낸다.
남다른 시선으로 우리 문화유산을 답사하는 저자의 여정을 따르며 답사의 맛을 새롭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민경화기자 mk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