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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수의 시선]유권자의 책임이다

 

 

 

 

 

‘바라코차’는 안데스 지역에 살고 있었던 잉카인의 창조신이다. 폭풍과 태양의 신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잉카인들의 구세주로 여겨지던 신이었다. 전설에 따르면, 하늘과 땅을 지은 다음, 돌아올 것을 약속하고 태평양을 건너 서쪽으로 갔다. 그는 큰 키에 하얀 수염을 기르고 긴 외투를 걸쳐 입고서 말을 타고 다시 나타날 것이라고 했다.

16세기였다. 침략자 ‘피사로’는 황금의 나라인 엘도라도를 찾느라 평화로운 잉카인 앞에 나타났다. 그러자 잉카제국 아타우알파 왕은 ‘피사로’를 구세주 ‘비라코차’로의 오인이 비극의 서막이었다. ‘피사로’를 영접하려던 왕은 인질이 되고 결국, 160명의 군사에게 약 800여만 명의 대제국은 멸망했다.

우리에게도 비슷한 역사가 있다. 일본의 강요로 체결된 1876년의 강화도 조약이 그렇다. 독자들도 잘 알다시피 일본군은 강화도 조약을 빌미로 우리 땅을 침범했다. 철군 요구를 거부하고 경복궁을 무력으로 점령했다. 인질이 된 고종을 겁박하여 친일 정권을 세우고 자주적 개혁을 도모하던 동학농민혁명군을 궤멸시켰다. 그리고 조정을 쥐락펴락하다가 총 한 방 쏘지 않고 나라를 통째로 집어삼켰다. 오로지 무지와 무능이 불러들인 참사였다.

필자는 위의 두 사건이 판박이처럼 느껴진다. 이런 기시감은 필자만의 느낌일까.

각 정당에서는 총선기획단을 출범하여 가동하고 있다. 정치권의 모든 시계는 총선을 향해 움직여지고 있다. 그런 까닭인지는 모른다. 사사건건이 정쟁이 되어가고 있다. 그들의 작동 법칙에 당위나 민생은 끼어들 틈이 없다. 지난 10월에 발의되었던 일명 ‘민식이법’(어린이 보호구역의 교통사고 예방을 위한 법)의 처리 과정을 들여다보면 어처구니가 없다. 한 달 동안이나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러다가 국민과의 대화에서 맨 먼저 다루어지고 국민청원이 빗발치자 예정에 없던 회의를 열어 첫 관문인 소위원회를 통과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촌음을 다투는 시급한 민생법안들이 버림받고 있는 형국이다. 경기침체로 국민은 아우성치고 있다. 신문과 방송의 사회면은 해괴한 사건 사고로 넘쳐나고 있다. 국회 통과만으로도 금세 효과가 나타나는 법안이 수두룩하댜.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관심이 없는 모양새다. 어쩌다 마주 앉기라도 하면 서로 상대 탓으로 돌리기에 바쁘다. 지난 선거에서 무슨 공약을 내걸었는지를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다. 어떤 실책이 있었는지에 대한 반성은커녕 오히려 큰소리다. 역사상 최악의 국회라는 비난이 쏟아지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요즘 출판기념회가 여기저기에서 열리고 있다. 선거운동이 시작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유권자의 환심을 사느라 선거 때마다 들었던 물갈이 얘기가 들려오고 있다. 아마 지도부를 교체하기도 하고 여의치 않으면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릴 것이다. 그리고 그것으로도 부족하면 이합집산하여 신당으로 옷을 갈아입고 표를 구걸할 것이다. 선거 때마다 보는 풍경이 펼쳐질 것이다. 또 냇가가 없는데 다리를 놓겠다고 할는지 모른다. 금세 부자가 될 것이며 많은 일자리도 생길 것이다. 집 앞에 큰 도로도 뚫릴 것이다. 이런저런 제도를 만들어 낼 것이므로 아이들 교육은 물론 어른들의 노후도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될 것이다. 썩은 호박에 교묘한 방법으로 줄이 그어지고 제목과 색깔이 바뀐 공약들은 만병통치약으로 둔갑하여 눈과 귀를 현혹할 것이다.

그러나 후보자를 비난할 일만은 아니다. 그들은 여건과 환경을 활용하고 있다. 자신의 역량을 효과적으로 발휘하고 있다. 자신의 목적을 세우기 위해 유권자의 입맛을 알아차려 최선을 다하고 있다. 흔히, 정치를 권모술수의 세계라 한다. 그들의 입장으로 보면 못할 일이 없다.

하지만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여건은 그 어느 때보다도 엄중하고 엄혹하다. 유권자의 잘못된 선택이 나라를 결딴낼 수도 있다. 유권자가 똑똑해져야 한다. 꼼꼼히 살피고 따져 갖가지 모습의 ‘피사로’를 솎아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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