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타임을 놓치고 있는가. 영화산업을 재생시키려는 정부의 의지는 충천하지만 이렇다 할 구체적 방안이 실효성 있게 전개되고 있지 못한 상황이다. 안다. 문제는 돈이고 그 돈은 우리나라의 관료제 조직 구조 내 최고 권력인 기획재정부에 막혀 있다. 내년도 예산은 이미 정해져 있어, 움치고 뛸 여력도 없다. 한국의 국가 총예산은 2025년도 기준 677조 정도였고 이 중 문화 예산은 7조 600억 원 정도였다. 1%를 약간 상회한다. GDP가 비슷한 수준인 국가 중 호주와 캐나다에 비하면 좀 높고(각 0.5%) 프랑스와 비슷하며 독일(1.9%)보다는 좀 낮지만, 국가 구성 형태가 다르고 지원 분야가 세부적으로 달라 등가 비교하기는 어렵다. 문제는 이 돈이 필요한 시기에, 필요한 곳에, 적절한 규모로 쓰이고 있느냐이다. 한국 영화산업은 최대 위기 국면에 있다. 2025년 총관객 수는 1억 2000만 명을 밑돌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1억 명을 넘겼다는 안도감을 가지게 될 만큼 바닥을 쳐도 한참을 쳤다. 2019년 관객 수 2억 6000만 명과 비교하면 절반도 안 되는 수치이다. 관객들이 물밀듯 빠져나간 후 돌아오지 않고 있다. 지금은 뭘 해도 안되는 때이며 웬만한 영
‘유학생 30만 명 시대’를 선언하며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스터디 코리아 300K 프로젝트’는 교육 국제화 역량을 제고하고 세계 10대 유학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중요한 국가 전략 중 하나이다. 교육부는 유학생 유치를 위한 학사 유연화 방안의 하나로 대학 정원과 무관하게 외국인 유학생만으로 학과 및 학부를 구성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하였다. 이에 국내 대학들은 외국인 전담학부를 신설하며 유학생 유치 기반을 빠르게 확충하고 있다. 실제로 최근 몇 년간 유학생 수는 꾸준히 증가했고, 대학의 국제화 지표 역시 가시적인 성과를 보이고 있다.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2025년 전체 대학의 유학생 수는 이미 25만 명을 넘어섰고, 그중 외국인 전담학부 입학생은 4518명에 이른다. 외국인 전담학과는 2024학년도 107개에서 2026학년도 335개로 3배 가량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학생의 양적 증가는 이미 가시적인 성과로 나타나고 있고 이제는 정책의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할 시점이다. 교육의 질과 학업 성취가 뒷받침되지 않는 국제화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대학 현장에서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는 질문은 '유학생들이 전공 교육을 통해 실제로 성장하고 있는가'이다.…
낮은 짧아지고, 길 위에는 찬 기운이 내려앉는다. 사람의 마음 역시 날씨와 크게 다르지 않아서, 계절이 바뀌고 해가 바뀔 때 마음엔 어떤 균열이 생기곤 한다. 한 해의 마지막이 되면, 불가피하게 스스로를 돌아본다. 빠르게 지나간 올해는 잘 해냈나? 무엇을 잘했고 무엇을 놓쳤는지, 또 어떤 것들이 내 곁을 지나갔는지를 헤아려 보는 시간이다. 얼마 전엔 하얀 눈이 가득 내렸다. 눈사람을 만들 수 있는 폭신폭신한 예쁜 눈이었다. 즐거운 눈요기도 잠시, 금세 눈이 녹으면 길은 지저분해지고 날이 추우면 꽁꽁 얼어버려 걸음을 불편하게 한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구석구석 젖지 않은 땅이 보인다. 큰 나무 아래, 눈이 온 흔적조차 없이 깨끗하다. 가지가 햇빛을 가리고, 줄기가 흔들림을 막아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눈은 나무의 넓은 그늘에 가려 땅까지 닿지 못한다. 작은 나무나 묘목에게는 그런 그늘이 없다. 그래서 겨울이 오면 온몸이 그대로 눈을 맞는다. 바람 한 번 크게 불면 금세 휘어지거나 부러지기도 한다. 살아오면서 마주하는 고난은 눈처럼 예고 없이 찾아온다. 감정의 폭설, 관계의 냉기, 가끔은 일상이 무겁게 느껴진다. 겨울은 우리를 피해 가지 않는다. 하지만 그때마다…
새댁이 네 살짜리와 한 살 된 형제를 키우고 있었다. 그런데 새댁은 항시 한 살 먹은 동생한테만 젖을 먹이고 예뻐했다. 네 살짜리 형은 열을 받아 엄마가 잠든 사이 몰래 엄마 젖에 독을 발라두었다. 그런데 다음 날 보니 한 살짜리 동생은 멀쩡하고 옆 집 아저씨가 죽어있더라는 것이다, 가벼운 우스갯소리다. 웃기는 이야기 일지라도 ‘젖’ 이야기가 나오면 나는 내 엄마의 젖 생각이 난다. 어머니는 나에게 어떤 환경에서 젖을 물리셨을까. 수유 때의 어머니 가슴 분위기가 내 일생 동안 정서적 영향을 끼칠 수 있었을 것인데- 아니 정직히 말한다면 나는 늘 불안하고 초조한 심리에서 벗어나기가 어렵다는 생각에서다. 나는 지금 그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강가에 나와 흐르는 강물 소리 들으면서 디딤돌 위에 서서 어머니가 계시는 무덤을 향해 시선을 높이고 있다. 사랑을 잃고도 아이스크림을 먹으면 위로가 된다고 한다. 동물은 단 것을 먹으면 기분이 나아진다고도 했다. 먹는 행위에는 생각보다 복잡한 체질적 심리적 영향학적 습관적 요소가 따른다. 낯선 음식을 기피하는 새 음식 공포증에서부터 반대로 최근 먹은 음식을 피해서 다양한 먹거리를 섭취하고자 하는 사람도 있다. 위장이 부실해 음식
지난 주 미국 백악관의 2025년 국가안보전략(NSS)이 공개됐다. 트럼프 2기 정부의 4년 단위 대외전략을 규정한 최고 문서로서, 그에 따라 국방전략(NDS)과 합참 군사전략(NMS) 등 각급 기획문서와 연례 국방예산 등 보고서가 작성된다. 이번 NSS는 2022년 발표된 바이든 정부나 2017년의 트럼프 1기 정부 보고서에 비해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기조가 극도로 강조된 것이 특징이다. NSS에서는 이를 구현하기 위한 원칙으로 국가이익, 힘을 통한 평화, 불간섭주의, 세력균형 등을 열거하고 있고, 대규모 이민의 종식, 자국의 핵심권리 보호, 방위비 분담 및 전환, 경제안보 등을 우선적 과업으로 제시한다. 지역별 전략으로는 중남미 국가에 대해 19세기 먼로독트린의 ‘트럼프 추론’(Trump Corollary)이라면서 국경안보 차원에서 강압 외교를 정당화하고, 유럽에 대해서는 역내 및 대러시아 관계 안정화, 방위책임 제고, 시장 개방 등을 통한 위상 회복을 언급하고 있다. 종래의 NSS가 중국의 경제·군사적 위협과 그에 대한 강력 대응을 강조한 데 비해 이번 대중국 전략은 조금 모호하다. 중국에 대한 경제적 견제와 재균형(rebalan
지난 12월 9일, 경기북부특별자치도 범도민추진위는 가평군에서 ‘육아·돌봄 자립마을’을 주제로 한 토론회를 열었다. 발제 중 하나는 '맘카페를 통해 살펴 본 육아·돌봄의 어려움들'이었고, 발제문에는 1주일간 맘카페의 회원들에게서 받은 가평군에서의 육아의 어려움들이 담겨 있었다. 발제를 한 채선미 대표(가평토종씨드림)는 제기된 내용들을 행정 서비스 부족, 시설 부족, 불공정의 세 범주로 나눠 분류했는데 그중 가장 많은 내용이 어린이를 위한 시설의 부족이었다. 산부인과, 소아과, 소아치과 병(의)원 시설이 없다는 점을 비롯해 인근 화천과 포천에는 있는 지자체 직영 온종일 초등학생 사교육 대체 교육·보육 시설이 필요함을 제안하는 내용도 있었다. 그리고 도서관과 체육공원에 어린이를 위한 시설이 없고, 있어도 가평읍에 집중되는 불균등한 행정에 대한 지적도 있었다. 발제자는 자신의 딸을 유·초·중·고 가평군에서 기른 사람으로서 자신이 아이를 기르면서 느꼈던 어려움들, 제기했던 문제들이 1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그대로인 사실에 크게 개탄하며 이로 인한 가평군 유소년 인구의 감소를 데이터로 제시했다. 2020년 10월 기준 0세~4세의 인구와 5년 뒤인 2025년 10
이십여년 전 필자가 철도노조에서 전임자로 일할 때였다. 그 당시만 해도 거대한 중량물이 고속으로 내달리는 철도현장은 한 해에 20~30명의 순직자가 발생하던 살벌한 현장이었다. 철도노조 산업안전국장을 역임한 2002년 석달 남짓 동안 나는 순직조합원 장례식에 8번이나 찾아가야 했다. 처절했다. 선로를 보수하던 조합원이 열차에 치이고, 열차를 떼고 붙이던 조합원은 끼이고, 고압전류에 감전되어 숨지는 사고가 잇따랐다. 철도노조를 100년만에 민주노조로 바꾸고 의욕에 넘쳐 밤낮없이 일하던 시절이었으니 가만 있었을리 없다. 서울역사를 검은 천으로 뒤덮고 “죽지않고 일할 권리”를 요구했다. 그때 철도노조에서 함께 싸웠던 동료가 현재 고용노동부를 맡고 있는 김영훈장관이다. 우리는 절절한 심정으로 순직사고에 매달렸던 기억을 공유하고 있다. 그런만치 김영훈장관이 취임 초기부터 산업재해 현장을 찾으며 산재예방에 전력을 다하는 것을 박수를 보낸다. 그가 산업재해 사망사고 만큼은 뚜렷이 감소시켰다는 족적을 남기기를 응원하는 마음이 크다. 그러나 참 안타깝게도 갖은 대책을 수립하고 감독을 강화하는데도 산업재해 사망자 숫자는 최근 다시 늘어나고 있다. 더구나 얼마전 청도역 인근에서
아돌프 아이히만은 독일 나치의 중령계급이었다. 비교적 낮은 계급이었지만 그는 2차 세계대전이 종전된 뒤 나치 수뇌부를 재판한 뉘른베르크 법정에 반드시 서 있어야 할 인물이었다. 아이히만은 히틀러의 유태인학살을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동원해 적극적으로 추진한 실무 책임자였기에 반드시 심판받아야 했기 때문이었다. 나치가 점령한 지역마다 수거(?)된 유대인들은 그들만의 집단 거주지인 게토에서 생활하다가 유럽 전역에 있었던 아우슈비츠 같은 유태인수용소로 이송되어 차례대로 가스실에 들어가 학살되었다. 이때 아이히만은 가장 빠른 시간내에, 가장 적합한 수용소로 그들을 이송하는 열차 시간표를 작성해 유대인에게는 누구보다도 공포스러운 존재였다. 전후 당연히 체포되었어야 할 그는 사라져 멀리 아르헨티나에서 이름과 신분을 속이고 15년을 숨어 살고 있었다. 그러나 세계 최고의 정보력과 끈질김으로 무장한 이스라엘판 국정원이 모사드에 걸려 1960년 체포 납치되어 이스라엘의 전범 재판에 넘겨졌다. 마침 히틀러를 피해 미국에 망명해 연구 생활을 하던 독일 출신 유대인 한나 아렌트는 잡지사 뉴요커에서 법정 취재기를 청탁받고 이스라엘로 날아갔다. 아이히만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아렌트
기술의 발전은 늘 인간의 노동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꿔왔다. 농업 혁명은 사냥꾼을 농부로, 산업 혁명은 장인을 공장 노동자로 변화시켰다. 이제 인공지능(AI) 시대는 우리를 또 다른 전환점으로 데려다놓고 있다. 단순 반복적인 작업에서부터 복잡한 인지와 판단 영역까지 AI가 담당하게 되면서, 우리는 ‘노동’ 그 자체의 의미를 근본적으로 재고해야 하는 시점에 서 있다. 과거에는 시간과 노력, 생산량으로 노동을 측정했지만, AI가 인간의 노동을 대신하는 지금, 인간의 가치는 더 이상 단순히 ‘일하는 것’에서 나오지 않는다. 인간의 고유한 가치와 사회적 의미는 무엇에 기여하는가에서 비롯된다. 전통적 노동 개념은 ‘몇 시간 일했는가’와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가’라는 기준에 묶여 있었다. 그러나 AI 시대에는 이러한 기준이 더 이상 충분하지 않다. 반복적 업무와 계산적 판단은 기계가 담당하고, 인간은 그 위에서 의미를 부여하고 방향을 설정하며 관계를 형성하는 역할로 이동한다. 따라서 기여 중심의 패러다임은 노동의 정의를 근본적으로 바꾼다. 시간 단위 임금에서 성과와 영향력 중심의 보상으로, 단순 기술 숙련에서 창의성과 공감 능력, 복합적 문제 해결 역량으로, 업무량에서…
지난 6월 20일, 이재명 대통령은 농림축산식품부 신임 차관에 강형석 농업혁신정책실장을 지명했다. 연합뉴스는 ‘농업·농촌 전 분야 정책 경험이 풍부하고 현상 분석과 대책 수립 능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고 했다. 대부분 언론은 농식품부의 다양한 업무를 담당하면서 농업 현장에 대한 높은 이해와 전문성을 두루 갖춘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지속가능한 농산어촌' 구축이라는 대통령의 공약을 실천할 적임자라는 대통령실 강유정 대변인의 발표 내용도 빼놓지 않고 보도했다. 일부 언론은 혁신적인 정책통이라고 치켜세웠다. 반년이 지난 12월 8일. 서울신문은 “관가를 뒤흔드는 ‘투서 포비아’···농림차관 경질 뒷말 무성”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이 대통령이 3일 전 강 차관을 전격 면직하자 공직사회가 술렁이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특정 사안에 대한 언론보도를 시간대별로 추적해 보면, 그 보도가 얼마나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는지 한눈에 드러나는 경우가 있다. 서울신문은 강 전 차관 면직에 대해 다른 언론보다 다각도로 접근하려는 노력을 보였지만, 기사는 저널리즘 윈칙을 크게 벗어났다. 무엇보다 기사 내용은 독자의 궁금증을 풀어줘야 한다. 관가의 분위기보다는 그가 왜 새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