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서울 세운상가 재개발을 두고 정부와 서울시 사이에 벌어지는 논쟁을 불편한 심기로 지켜보고 있다. 지난 7일 최휘영 문화체육부 장관은 종묘를 방문해 "대한민국 문체부장관으로서 취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강구해 우리 문화유산인 종묘를 지키는 일에 앞장서겠다. 종묘는 조선 왕실의 위패가 모셔진 신성한 유산이며, 우리나라 유네스코 세계유산 1호의 상징적 가치를 가진 곳으로, 문화강국 자부심의 원천"이라며 "그럼에도 이러한 가치가 훼손될 수 있는 현 상황이 매우 우려스럽다"며 유감을 표명했다. 이런 관점에 100% 동의한다. 그런데 가평군에 위치한 중종대왕 태봉의 목을 끊고 지나가는 제2경춘국도에 대해서는 이런 관점이 전혀 적용되고 있지 않다. 경기도는 중종대왕 태봉과 경북, 충남 등에 있는 다른 조선 국왕 태봉들을 엮어 함께 유네스코 문화 유적 등재를 추진했다. 조선 국왕이 살던 왕궁, 그리고 지금 논쟁 중인 조선 국왕의 사후 유적인 종묘가 이미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됐고, 여기에 조선 국왕의 태를 묻은 태봉까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함으로써 조선 국왕의 생전, 재위, 사후를 모두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하기 위한 노력을 해왔다. 중종대왕 태봉은 처음
지난 달 29일 경주 APEC 계기에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핵추진 잠수함(이하 원잠) 문제가 공개적으로 제기되면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의 핵연료 공급 요청에 대해, 다음 날 트럼프 대통령이 강력한 한미동맹의 바탕 위 원잠 건조 승인, 그것도 미국내 필리조선소에서 건조하는 것으로 받으면서 다양한 논점이 제기되어 정부의 대응이 주목된다. 국제 비확산 규범과 관련해 민감한 이 문제를 한국이 거론한 것은 원잠에 대한 나름의 의지를 반영한 것이었다. 잘 알려졌듯 원잠 보유는 해상 전력 확보 차원에서 참여정부 때 제기된 해묵은 현안이지만 당시 구체적으로 진전되지는 않았다. 문재인 정부에서 진행된 한미 정상 간 미국 원잠 구매에 관한 협의도 미국방부 등의 반대로 성사되지 못했다. 이미 세계 최고의 원전과 재래식 잠수함 건설 능력을 갖고 소형모듈 원자로(SMR) 등을 선도적으로 개발해 온 한국으로서 자체 건조를 모색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원잠 연료는 농축 우라늄이다. 세계적으로 미·영의 원잠은 90% 이상, 러시아는 20~50%의 고농축 우라늄(HEU), 프랑스와 중국은 20% 미만의 저농축 우라늄(LEU)을 연료로 사용하고 있다. 한국은 2015년
매일 아침 반려견과 함께 산책을 나서다보면 종종 예기치 못한 항의를 받을 때가 있다. “이렇게 큰 개를 왜 입마개를 하지 않습니까?” 나의 반려견은 맹인안내견으로도 많이 활약하는 세상없는 순둥이 래브라도리트리버 종이다. 그럴 땐 정중히 안내드린다. “입마개를 해야 하는 맹견은 법에 지정이 되어있습니다. 도사견, 핏불테리어, 스탠퍼드셔 테리어, 불테리어, 로트와일러 등입니다.” 모두 개물림사고로 뉴스에도 종종 언급되는 투견종들이다. 얼마전 아들이 키우던 핏불 한 마리를 시골어머니에게 맡겨놓았는데 그 어머니를 핏불이 물어 숨지게 한 안타까운 사고도 있었다. 개가 주인을 몰라보고 광견(狂犬)이 되면 몽둥이 외에는 약이 없다. 미치면 주인도 몰라보는 것이 개만 그렇겠는가? 대장동 사건 항소를 포기하자 검찰의 항명이 거세다. 시작은 서울지검장이었다. 자신이 결정해야 할 항소건을 수뇌부의 지휘에 따라놓고 “내 생각은 달랐다”며 사표를 던졌다. 이어 약속이나 한 듯 검사장들의 집단 입장표명이 뒤따르더니 꼴뚜기가 뛰니 망둥이도 뛴다는 격. 이제는 지청장, 부장, 심지어 초임검사까지 팔걷어 부치고 뛰어나온다. 알고나 떠들어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도 올해 1월 공직선거법 위
뉴욕시장 선거에서 조란 맘다니(Z. Mamdani)가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며 일약 정계의 기린아로 등장했다. 불과 34살이고 아프리카 출신의 인도계 이민자이자 이슬람교도이고 사회주의자임을 스스럼 없이 밝힌 그는 세계 자본주의의 중심지이자 미국의 상징 도시 뉴욕시장이 된 것이다. 맘다니의 승리는 미국판 MZ세대의 지지와 성원 때문이라고 한다.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전 세계가 보수화되고 특히 젊은 층의 보수화 내지는 극우화에 우려를 표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 그것도 뉴욕의 젊은 층만은 거꾸로 사회주의자에 투표하고 지지를 보내고 있다고? 10만 명이 이르는 자원봉사자의 열렬한 활동과 경쟁자의 엄청난 선거자금 투입에도 “정치헌금은 이제 그만” 이라고 외치는 그는 진정으로 정치가 돌봐야 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그것을 풀어내었다. 그가 공약으로 내건 임대료 동결은 살인적인 임대료에 고생하는 서민을 위한 정책이었고 무상 버스와 무상 보육 그리고 자치구마다 상설 식료품점을 뉴욕시가 직접 운영하는 공공서비스의 확대 등은 한결같이 약자들을 위한 정책이다. 이를 위한 재원 마련은 부유세와 법인세 인상으로 해결하겠다는 맘다니의 진정성이 자본주의의
예전에는 처음 만난 사람에게 “고향이 어디신가요?” 라고 묻곤 했다. 그러나 요즘에는 “어디 나오셨어요?”라는 질문이 자연스럽다. 이는 곧 어느 대학을 나왔느냐는 뜻이다. 고등교육이 보편화된 시대에 출신 대학을 묻는 것이 이상할 것은 없다. 하지만 특정 대학 출신들이 사회 곳곳에서 집단적 유대와 특권을 행사한다면, 그것은 사회구조의 병폐가 된다. 지난해 한국은행이 발표한 '입시경쟁 과열로 인한 사회문제와 대응방안'(2024.8.27.)은 우리 사회의 근본적 문제로 ‘대학입시 경쟁’을 지목했다.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의 대학 진학률 격차는 부모의 경제력과 사교육 환경에 크게 좌우된다. 이로 인해 학생들은 과도한 경쟁과 학업 스트레스로 행복도가 낮아지고, 수도권 집중과 주택가격 상승까지 초래한다. 부모의 경제력과 사교육 환경이 학생의 잠재력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친다면, 그것은 교육기회의 불평등이다. 교육비 부담은 저출산과 결혼 기피로 이어지고, 계층 간 이동의 사다리는 사라지게 된다. 이러한 입시 서열화는 곧 학벌사회를 고착시킨다. 우리 사회에서 학벌(academic clique)은 단순한 학력이 아니라 일종의 ‘신분’처럼 작용한다. 학력은 개인의 노력의 결과이지
‘현재 언론보도에서 가장 심각한 문제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언론이 본연의 기능을 못하고 있다’고 했다. 한종범(80년 TBC해직) 80년해직언론인협의회 상임대표가 유튜브 방송 언시국TV 인터뷰에서다. “뉴스는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 이를 기반으로 수용자가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분석을 해주어야 한다”고 부연했다. 영리를 추구하는 언론이 주를 이루면서 언론의 이런 기능이 현격히 약화 됐다. 언론사간 경쟁이 격화돼 수용자를 끌기 위한 뉴스의 선정성이 심화됐다. 돈벌이를 위해 가짜뉴스까지 등장했다. 원가절감 때문에 TV는 질 낮은 대담프로로 채워지고 있다. 양비양시를 균형이라고 우긴다. 윤석열 지지자와 내란척결을 주장하는 국민들과 동급으로 취급하는 우까지 범하고 있다. 민영언론의 영리 추구는 생존을 위해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공영언론이 소환되는 까닭이다. 공영언론이 요즘처럼 절실한 때도 없다. 윤석열 정부서 한전과 마사회가 지배주주로 있던 준공영방송 YTN을 졸속 민영화했다. 이 문제가 국정감사에서 크게 부각된 것도 이런 흐름과 맥락을 같이 한다. 이재명 대통령과 김민석 국무총리가 ‘YTN 지분 매각 등에 대한 조사와 감사’를 언급, YT
한 동안 모 정치전문대학원에서 강의를 했다. 이곳에 오는 학생들은 대부분 스펙을 쌓기 위해서다. 따라서 학위 논문을 쓸 능력이 아주 부족하다. 그런데도 학교는 그들에게 논문을 쓰게 하고 학위를 준다. 시스템이 이러하니 학생들은 너도나도 박사 학위를 따겠다고 야단이다. 여러 명의 박사과정 학생이 내게 논문 지도를 해달라고 간청을 했다. 안타까운 나머지 논문이란 무엇이고 어떻게 써야 하는지 알려줬다. 하지만 그들은 좀처럼 이해하지 못했다. 결국 나는 주제까지 잡아주고 지도에 지도를 거듭했다. 그 중 몇은 박사학위를 따고 내게 말했다. “교수님, 평생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이 언약을 지킨 이는 거의 없다. 이 씁쓸한 경험 때문일까? 나는 요즘 은혜를 알고 의리를 지키는 사람이 무척 그립다. 은혜를 잊지 않고 갚고자 하면 더 나은 인간관계를 형성하고 사회 전체를 보다 풍요롭게 만들기 때문이다. 일본 긴자 마루칸(銀座まるかん)의 창시자 사이토 히토리(斎藤一人) 씨가 떠오른다. 그는 인생에서 의리(Giri)와 인정(Ninjyo), 그리고 은혜(On)를 소중히 여긴다. 의리는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정도이고 인정은 상대를 배려하는 따뜻함, 그리고 은혜는 삶에 있
2026년 3월, '의료·요양 등 지역 돌봄의 통합 지원에 관한 법률'의 전국 시행은 대한민국 복지 패러다임의 중대한 전환을 의미한다. 이는 기존의 시설 중심, 공급자 중심의 분절적 돌봄 체계에서 벗어나, 돌봄이 필요한 국민 누구나 살던 곳에서 건강하고 행복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지역사회 중심의 통합돌봄(커뮤니티케어) 모델을 구축하는 국가적 선언이다. 본 법의 성공적인 안착과 통합돌봄의 실질적 활성화를 위해서는, 법의 이념을 현장에서 구현할 핵심 이해관계자들의 명확한 역할과 유기적 책임 이행이 필수적이다. 통합돌봄의 성공은 어느 한 주체의 노력이 아닌, 모든 이해관계자가 '통합'이라는 공동의 목표 아래 협력하는 거버넌스에 달려있다. ▲돌봄 대상자(노인, 장애인 등)는 돌봄 서비스의 수동적 수혜자가 아닌, ’자기 돌봄 계획의 주체‘로서 통합지원 신청, 조사, 지원계획 수립 전 과정에서 자신의 욕구와 필요를 명확히 표현하고 서비스 선택의 주체가 된다. ▲돌봄 대상자 가족은 돌봄의 파트너이자 ’핵심 정보 제공자‘이자 대상자의 가장 가까운 조력자로서 대상자의 상태와 욕구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며, 공식 돌봄서비스와 유기적으로 협력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지난 1972년 중국은 1949년 중국공산당 창건 이후 처음으로 서방세계에 문을 열었다. 닉슨 미국 대통령과 마오쩌뚱 중국 주석이 中美정상회담을 북경에서 개최한 것이다. 당시의 중국의 외교적 태도를 세상은 "중국이 마침내 '竹의 장막'(bamboo curtain)을 거두었다"고 표현했다. 그 정상회담의 여러 행사들 가운데, 중국은 서방에 '특별메뉴' 한 가지를 선보였다. 침술(鍼術)이었다. 폐 절제 수술을 받을 환자를 침으로 마취하고 집도하여 성공적으로 마친 것이다. 환자는 수술 중에 의료진과 대화를 나누었다. 서방세계는 마치 접시 백 개를 성공적으로 돌리는 마술을 본 관중들처럼 충격을 받고 놀라워했다. 중국은 그렇게 5천년 유구한 역사와 그 시간 동안 쌓인 중화(中華)의 내공을 입증하였다. 좀 의아하겠지만, 지방자치제도와 그 성공은 이 동양의 침술과 깊은 관계가 있다. 이제는 학술용어로 자리잡은 도시침술(都市鍼術. urban acupuncture)이 바로 그것이다. 한 도시의 특정지역을 심모원려(深謀遠慮)의 특별한 기획과 수술환자에게 침을 놓듯이 엄중한 자세로 재생하여 부활시키는 것이다. ◇브라질 꾸리찌바 유엔, 선진국의 권위 있는 연구소들, 하버드대학 등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장터의 냄새가 바뀐다. 파와 마늘의 매운 향 사이로 어딘가 따뜻하고 알싸한 기운이 번지기 시작하는데, 그것이 김장철의 도래를 알리는 뿌리, 생강이다. 오늘날에는 차나 조미료로 손쉽게 쓰이지만, 생강은 향을 보태는 재료 이상의 오랜 생활의 감각을 품어왔다. 생강의 원산지는 동남아시아다. 인도와 중국 남부에서 먼저 재배되었고, 그 독특한 향과 약성이 인정되어 일찍부터 교역품으로 널리 이동했다. 우리나라에는 삼국시대 전후에 전해진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 시대에는 ‘생강소(生薑所)’라 불리는 재배 관리 체계가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는 생강이 단순한 부엌 조미료가 아니라, 국가가 공적으로 다루던 귀중한 농산물이었다는 의미다. 조선 시대에 들어서면 생강은 더욱 생활 속에 깊숙이 스며든다. 『세종실록지리지』와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전주 생강이 으뜸이며, 담양과 창평이 그 다음”이라 적혀 있다. 특히 전북 완주 봉동의 생강은 지금도 명물이다. 배수가 잘되고 흙이 따뜻해 향과 매운맛이 살아 있어, 조선 시대에는 임금에게 올리는 진상품이었다. 땅 속의 뜨거운 기운이 수라상까지 닿았던 셈이다. 생강의 쓰임새는 유난히 넓다. 약방에서는 몸을 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