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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시론]재난지원카드와 착시현상

 

요즘 정부와 지자체에서 뿌린 약 13조원의 긴급재난지원금 덕분에 소고기도 사먹고 아내의 안경도 맞춰줬다는 재난지원카드 미담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아울러 지난 3월 1400선으로 내려가 향후 1100선까지 곤두박질칠 것이라던 국내 코스피 지수는 최근 두달 만에 2000선을 찍는 놀라운 회복력을 발휘하면서 실물경제가 다시 살아난 것 같은 안도감을 주고 있다.

실제로 지난달 27일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5월 자영업자의 가계수입전망 소비자동향지수(CSI)는 77로, 지난 4월보다 무려 10포인트나 올랐다. 3개월 연속 하락곡선을 그리던 가계수입 전망지수가 10포인트 이상 상승한 것은 지난 2009년 이후 처음으로, 향후 살림살이가 반드시 나아질 것이라는 긍정적 시각을 잘 반영하고 있다.

위축된 소비심리가 다시 살아나고 경기가 활성화된다니 분명 반가운 일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한정된 금액과 사용기간을 지닌 소멸성 재난지원금이 결코 만병통치약은 아니며 일시적 긴급수혈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간과한듯해 씁쓰레한 뒷맛 또한 감출수가 없다.

지난 4월 취업자 수는 2천656만 2천명으로 1년 전보다 무려 47만 6천명이 줄어들어 지난 1999년 2월 (-65만 8천명) 이래 최대 감소 폭을 기록했다. 또한, 금융업 등을 제외한 코스피 상장사 592곳의 1분기 당기순이익은 47.8%로 거의 ‘반토막’이 난 지경이다.

설상가상 수출격감에 따른 경제충격이 아직 본격적으로 도래하지 않은 상황에서 일부 언론을 비롯한 정책 당국자들이 쏟아내는 섣부른 경기 낙관론은 절대 금물이 아닐수없다.

특히 단순 수치상으로 드러난 경제지표와 일시적 체감효과에 판단력이 흔들려 자칫 위기상황에 대한 경계심을 늦추거나 임기응변식 처방전에 계속 의존하려는 우(憂)를 범해서는 결코 안될 일이다.

아울러 이같은 착시현상에 기인한 정책적 오류들이 공정과 평등이라는 미명아래 버젓이 자행되면서 야기될지도 모를 공적(公的) 횡포와 다수의 이익 앞에 무참히 짓밟히는 소수의 손해 또한 충분히 고려돼야할 사안이다.

이런 맥락에서 최근 국회예산정책처가 발간한 ‘경제·산업동향&이슈’에 실린 ‘코로나19 대응 정책금융 지원 현황’ 보고서는 시사하는 바가 자뭇 크다. 정부가 7등급 이하 저신용 자영업자들을 대상으로 지원하는 1차 금융지원 프로그램 중 소상공인진흥공단의 소상공인 안정자금 소진율은 4월말 기준 97.6%에 달했다. 이에 비해 기업은행 초저금리 대출의 소진율은 80.2%,. 시중은행의 이차(利差)보전 프로그램은 38.3%의 낮은 소진율을 보였다.

이는 결국 정부가 저신용 소상공인·영세사업자들을 위한 긴급재난지원 프로그램의 수요예측에 실패했음은 물론 판단 착오로 인해 이들의 현실적인 자금난을 해소하는데 고민과 배려가 턱없이 부족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높은 금윰문턱탓에 평소에도 어려움을 겪어왔던 저신용 사업자들이 폐업직전의 비상상황에서 정부 지원책에 일말의 기대감을 갖고 해당기관을 찾았다가 기존의 잣대와 매뉴얼대로 안이하게 업무를 처리하는 당국의 탁상행정주의에 또다시 쓰라린 좌절감을 맛보게하는 것은 너무도 가혹하다.

일례로 사방이 꽉막힌 교차로에서 원리원칙에 입각한 신호체계만을 계속 고집하는 교통순경의 알파고(AI)적 사고와 행동은 결코 문제해결을 위한 대안이 될 수 없다. 무엇보다 먼저 교통정체가 심각한 곳부터 시간을 더 할애해 원활한 소통이 이뤄지도록 ‘운용의 묘(妙)’를 기해야 할 것이다.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의 굴레속에 ‘약(弱)한 자를 희생하라’는 효용가치 일변도의 정책은 추후 코로나 사태를 잘넘겼다고하더라도 당시 ‘희망고문’을 자행했던 사회악의 고통으로부터 결코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낭떠러지에 간신히 매달린 사람에게 119구조대원이 과거의 불성실한 이력을 문제삼아 내밀던 구조의 손길을 뿌리쳤던 트라우마는 쉽사리 치유되지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어렵다’는 논리로 똑같은 크기의 희생과 고통을 획일적으로 강요하기보다는 상대적으로 더 힘들고 상황이 급박한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인간적 관심과 정책적 배려가 더욱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