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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거칠지만 작업할 때 스며드는 요철지, 나와 닮았다”

수원에서 사람과 삶을 그리는 이주영 화가를 만나다

1980~90년대 미술동인 ‘새벽’ 참여
현재 수원민족미술인협회 회원 활동

“누구에게나 공평한 콩테 작업 좋아해
현장에서 느끼는 감정 그대로 드러나”

지동교·영동시장 앞에서 자주 보는
어르신·노숙자 등 코로나19 위험 노출
작품 속 인물들 갈구하는 표정 처연
지금의 시대·장소가 지닌 상징 기록

 

“두둘두둘하고 다소 거칠지만 작업할 때 스며드는 느낌이 드는 요철지가 나와 닮았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11일 수원지역에서 활동하는 이주영 화가를 만나 사람과 삶을 작품에 담아내는 그의 작품세계를 들어봤다.


이 화가의 화실을 수놓은 콩테로 그린 노인의 뒷모습, 다리 위의 사람들, 마스크 쓴 노인 등의 작품이 눈길을 끌었다.


중앙대 서양학과를 졸업한 이주영 화가는 2003년 수원미술전시관에서 제1회 개인전을 열었다.


1980~1990년대 초까지 미술동인 새벽에서 수원 문화 운동에 참여한 이주영 화가는 현재도 수원민족미술인협회(수원민미협) 회원으로 미술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이주영 화가가 요즘들어 작품에 주로 쓰는 콩테는 납과 기름 성분을 혼합해서 만든 미술 소묘의 재료이며, 찰흙과 흑연을 섞어 만들어 주로 검은색, 붉은색, 갈색을 띈다.


콩테로 작품하게 된 계기와 콩테만의 매력을 묻자 이 화가는 오래전부터 좋아했던 작업이라면서 꾸밈없이 누구에게나 공평하다는 답을 내놨다.


이 화가는 “콩테 작업은 흑백으로 채색이 들어가지 않아서 누구에게나 공평하다”며 “흑백사진이 칼라사진보다 더 사실처럼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콩테나 목탄, 연필 등을 통한 작업은 오래전부터 좋아했다”고 말했다.


특히 이 화가는 그동안 다녀온 평택 대추리, 용산 참사가 발생한 남일당 등 가난과 핍박, 연민이 스며든 장소를 떠올리며 “콩테는 대상과의 감정이입이 잘 되는 재료”라며 “현장에서 느끼는 감정이 각색되지 않고 그대로 드러나니까 상황을 표현하기에 적합하다”라고 설명했다.


대화를 나누던 이주영 화가는 화실 한편에 걸려있는 2005년에 소품으로 그렸다가 5년 전에 재작업한 ‘바람이 좋다’를 가장 아끼는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자신이 살던 수원 남수동에서 바라본 풍경을 울퉁불퉁한 재질인 요철지(한지의 일종)에 그려낸 그는 작품이 자신과 닮아있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이 화가는 작품을 가리키며 “‘바람이 좋다’는 그림인데 빨래가 잘 마를 것 같은 날씨다. 남수동이라는 동네인데 그림에서 보이는 슬레이트 지붕 바로 앞에 쪽방을 얻어서 굉장히 가난하고 어려운 시기를 살았다”고 추억하며 “사실 슬레이트 지붕은 남수동에서 바라본 풍경이고 저 멀리 보이는 시내는 팔달문을 바라본 모습인데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작가의 마음대로 표현했다”고 말했다.


이어 “일반 캔버스가 아닌 한지 중에서도 표면이 두둘두둘한 엠보싱이 많은 요철지에 유화작업을 한 것”이라며 “거친 한지에 그림을 그리는 이유는 ‘노동의 희열’이 있다. 다소 거칠지만 그림을 그리다보면 요철지에 스며드는 느낌이 드는데 그 요철지가 나와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이주영 화가도 생계를 위해 잠시 미술활동을 접은 때가 있었다.


활발하게 미술 운동에 동참했던 이 화가는 지치기도 하고 당장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10년간 외유했으나 그 순간에도 미술을 아예 놓은 것은 아니었다.


그는 “1980년대부터 1990년대 초까지 수원미술운동 단체 새벽에서 활동했는데 사실 지치기도 하고 쉽지만은 않았다”며 “먹거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0년동안 외유했으나 그림을 그리기 위해 물적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떠났던 것이고, ‘더 늦으면 아예 놓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 때문에 다시 시작하게 됐다”고 이야기했다.


요즘도 팔달구에 위치한 지동교나 재래시장인 영동시장을 거의 매일 둘러본다는 이주영 화가는 그곳에서 사람들이 사는 이야기를 듣고, 그 장소가 지닌 상징성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다니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며 사회적 분위기가 조금 달라진 가운데 이 화가는 걱정을 털어놨다.


이 화가는 “콩테로 그린 작품 속 인물들은 지동교나 영동시장 앞에서 자주 보는 어르신, 노숙인, 서민들인데 표정에서도 읽혀지듯이 갈구하는 표정이 처연하다”며 “(그림 작업을 위해) 약간의 거리를 두고 사진을 찍는데 영리적인 목적이 아니라 작가로서 지금의 시대와 장소가 가진 이야기와 상징들을 기록하는 의미로 매일 가서 그들과 같이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고 말했다.


덧붙여 “내가 만난 지동교 위 노숙자, 폐지 줍는 사람들, 노점상인들은 코로나19의 위험에 가장 노출됐다. 다 똑같다고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똑같지 않고 사회적으로 빈부격차가 너무 심한데 이들을 보면 가슴이 너무 아프다”며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마지막으로 이주영 화가는 “내게 있어 그림은 사는 이유다. 상황이나 조건에 따라서 변하기도 하지만 앞으로도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그리고 싶다”라고 전했다

/사진=조병석 기자 c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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