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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수의 월드뮤직기행] ‘위대함이 불행을 위로한다’

 

독일어에 샤덴프로이데(Schadenfreude)라는 단어가 있다. 우리말 쌤통과 통하는 말로 ‘불행이 불행을 위로한다’는 심리가 담겨있다. 기분이 울적할 때 ‘인생 망가진 주인공’의 영화를 골라보는 내 심보를 이해하게 해주는 말이다.

 

어제 본 미국영화 ‘와일드(Wild/2014년 개봉)’도 그래서 골랐을 것이다. 어머니의 죽음, 이혼등으로 마약에 빠져 허우적대던 여주인공이 악마의 코스 4285㎞의 미국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CT)를 완주, 다시 살 힘을 얻는다는 이야기인데 그녀가 힘든 고비마다 흥얼대던 노래가 귀에 남아있다. 팝 명곡인 ‘엘 콘도르 파사(El Condor Pasa)’.

 

그녀는 그 노래를 탄생 배경을 알고 부른 것이 아닐까.

 

지옥 같은 삶을 위로받고자 더 극악한 지옥을 살다 간 노래 주인공을 호출한 것 아니었을까. 1533년, 인구 수백만 명이 살던 잉카제국(지금의 남미 페루)은 총부리를 앞세워 쳐들어온 고작 수백 명의 에스파냐인들에 의해 무너지고, 이후 200년간의 폭정에 시달린다. 농민 혁명가 호세 가브리엘 콘도르칸키(Jose Gabriel Condorcanque)는 침입자가 죽인 황제 투팍아마루의 복수를 하겠다고 이름까지 투팍아마루 2세로 바꾸고 반란군과 함께 에스파냐에 대적한다.

 

그러나 맨몸 군대는 스페인의 선진무기에 처참하게 패하고 투팍아마루 2세는 체포돼 처형 당하고마는데 능지처참(팔다리를 4마리의 말에 묶어 몸이 찢기어 죽게 만드는 사형법)으로 죽은 시신은 부활의 미신조차 꿈꿀 수 없게 여러 곳에 분산돼 파묻혀진다. 잉카에는 날개를 한 번 펴면 그 그림자로 웬만한 봉우리를 모두 덮는다는 독수리과의 콘도르라는 새가 있는데 ‘위대한 영웅이 죽으면 콘도르가 된다’는 설이 전해진다. 투팍아마루 2세도 콘도르가 되어 자신들을 지켜줄 것이라고 믿었던 잉카의 후예들은 그 바람을 민요에 실어 전해왔다.

 

미국의 사이먼 & 가펑클은 60년대, 우연히 프랑스 파리에서 듣게 된 남미 그룹 ‘로스 잉카스(Los Incas)’의 낯선 선율에 꽂혀 영어로 노랫말을 만들어 ‘엘 콘도르 파사’를 발표, 크게 히트시킨다. 이 페루 민요에 혹한 음악인이 그들만이었겠는가.

 

수많은 음악인들의 귀에 꽂힌 이 음악은 세계적으로 4000여 버전의 멜로디와 300여 개의 번안 가사가 붙여져 월드뮤직이 되었고, 2004년 페루는 이 노래를 국가문화유산으로 선포했다.

 

잉카 영웅 투팍아마루 2세는 어찌보면 우리나라 동학혁명을 이끈 녹두장군 전봉준과 닮아 보인다. 그리고 식민시대의 아픔까지도.

 

문득 사이먼 & 가펑클의 팝송 가사 말고 잉카 민요의 원래 가사가 궁금해진다.

 

하늘의 주인이신 전능한 콘도르여/우리를 안데스 산맥의 고향으로 데려가 주오/ 잉카 동포들과 함께 살던 곳으로 돌아가고 싶소/그것이 나의 가장 간절한 바람/전능하신 콘도르여/ 잉카 쿠스코 광장에서 나를 기다려 주고/ 우리가 마추픽추와 와이나픽추를 거닐 수 있게 해주소서

 

엘 콘도르 파사의 가사까지 되짚어보니 ‘남의 불행으로 나의 불행을 위로 받으려’ 한 내 생각이 얄팍하게 느껴진다. 사욕을 넘어선 위대함은 개인의 불행을 눈처럼 녹인다.

 

영화 와일드의 여주인공도 엘 콘도르 파사를 쌤통 심리로 읊조린 게 아니라 잉카의 위대한 영웅의 영혼과 접선한 것이 아닐까. 어쨌든 영화를 보고 기분은 나아졌다.

 

엘 콘도르 파사는 사이먼 & 가펑클의 노래도 좋지만, 그 듀엣에게 영감을 준 원곡인 페루작곡가 다니엘 로블레스의 피아노곡(1933년 연주), 그리고 독일 오디션 프로그램 ‘다스 수퍼탈란트’에 나와 스튜디오를 발칵 뒤집어놓은 에콰도르 출신 거리악사 레오 로자스의 팬풀룻 연주(2011년)를 추천한다.

 

(인터넷창에서 www.월드뮤직.com을 치면 소개된 음악을 유튜브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