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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 선물 – 시진핑 주석에게

 

죽음이 코앞에 다가왔다. 오고 싶지 않은 길이었다. ‘왜 싸워야 하는지?’, ‘왜 죽어야 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전쟁이었다. 할 수만 있다면 도망쳐서라도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부총병 양원 대장도 도망가 버렸다. ‘계속 싸워야 하는가?’, ‘차라리 항복해 버릴까?’, ‘대관절 조선 백성들을 위해 목숨을 버린다는 것이 가당한 일인가?’ 이신방 장군을 따르는 명나라 병사들의 고민이 깊어갔다. 그래도 추석이다. 조선의 아낙이 성벽을 돌며 마지막 고기국물을 돌렸다. 쑥을 넣어 만든 떡도 한 개씩 돌렸다. ‘왜군이 얼레빗이면 명군은 참빗이다’고 경계하던 조선의 아낙과 노인들 그리고 성에 갇힌 아이들이 이제는 스스럼없이 명군에게 다가와 ‘고맙다’ 인사하고 손을 잡아주고 갔다.

 

1597년 정유년 추석, 조선 땅 남원성. 왜군 주력 오만육천여 명이 호남을 점령하기 위하여 관문인 남원성을 공격했다. 거기에 맞서 싸운 병사는 명군 삼천 명과 조선군 천 명 그리고 성으로 피신 온 백성 육천여 명이 있었다. 명군 대장 양원은 중간에 성을 포기하고 도망갔지만 이신방 장군 휘하 명군, 이복남 장군이 이끄는 조선군, 처영스님이 이끄는 승병과 의병, 남원성 백성까지 일만여 명은 왜군에 맞서 치열한 싸움을 벌였고 여러 차례 싸움에서 승리하였다. 그러나 결국 중과부적으로 남원성이 함락되었다. 최후의 한명까지 싸웠고 누구도 항복하지 않았다. 노인도 아낙도 어린아이도 양반도 상놈도 병사도 전부 죽었다.

 

그렇게 순국한 만 명의 무덤이 남원에 만인의총으로 남았다. 매년 만인의총에서는 422년 전 왜군의 침략에 맞서 싸운 만 명의 영령을 기리는 제사를 지낸다. 몇 년 전부터는 국가제사로 승격되어 문화재청장이 대통령의 조사를 대독한다. 왜군에 맞서 나라를 지키기 위해 순국하신 분들 중 명나라 병사 삼천이 있었다. 자신의 부모자식도 아니고 고향도 아닌 조선 백성과 조선 땅을 같이 지키려고 목숨을 바쳤던 삼천 병사들을 우리는 특별히 기억해야 한다. 나는 그것이 국가 간의 신의를 지키는 도리라고 생각한다. 현재 남원의 관왕묘에는 순국한 명나라 장수 이신방, 장표, 모승선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머지않아 중국의 시진핑 주석이 한중 정상회담을 위하여 방한할 예정이라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시진핑 주석에게 어떤 선물을 준비하고 있을까? 나는 우리나라 대통령이 신의(信義)를 선물하길 바란다. 머나먼 타국에 와서 타국 백성을 지키기 위해 죽어간 명나라 병사들을 기리고 추모하는 것 말이다. 그것을 의리라고 하지 않던가? 그것보다 소중한 선물이 어디 있을까?

 

만인의총에 명군 삼천을 기리는 추모비와 위패를 따로 만들어야 한다. 남원 관왕묘를 잘 정비하고 중국 관광객들이 추모할 수 있도록 안내판을 설치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올해 추석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만인의총에 중국대사를 초대하여 직접 조사를 하고 순국한 명나라 영령들에 대한 추모의 뜻을 전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경제와 안보가 안착되는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앞두고 나아갈 방향을 찾아야 한다. 시진핑 주석에게 줄 수 있는 가장 뜻깊은 선물은 두 나라 사이에 필요한 ‘신의’다. ‘의리’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