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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균의 재미있는 仁川 1. 길에서 길을 묻다

 

 

김학균의 재미있는 仁川 - 1. 길에서 길을 묻다

 

우리는 가끔 영화나 TV 속에서 동물들의 이동 장면을 보곤 한다. 그리고 그들을 사냥하는 원주민들을 본다. 그때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다. 그 동물들의 뒤를 따라 사냥을 하고 있다는 것, 바로 이것이 길의 처음이다. 길이 언제 어떻게 생긴 것에 대해서는 분분하지만 ‘동물이동설’이 길의 정의라고 할 수 있다.

 

<동국여지승람>에 토천(兎遷)이라는 말이 나온다. 고려 태조가 남하할 때 길이 없어 막연할 때 토끼 한 마리가 숲을 따라 달아나면서 길을 열어줬다는 이야기에서 나온 것으로, 동물의 이동과 관련된 길의 유래를 뒷받침하는 좋은 예라고 본다.

 

인간들은 길을 통해 문명을 교류하고 발전시켜 왔으매, 그 과정에서 길의 가치 차등이 생겼다. 오늘날 예로 든다면 큰길 작은 길의 이름을 붙여 부르게 된 연유가 특히 길이 열리고 모이는 결절 지점에는 인구가 모여들고, 모여든 사람들은 구매력을 갖고 시장을 형성하면서 인류발달사의 한 장을 열게 됐다.

 

길이란 자연이든 인위적이든 필요에 의해 생겨나기 때문에 그 기능이 없어져도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을 탄생시키며 영원히 존재한다. 길의 사전적 의미를 보면 ‘사람이 다닐 수 있도록 만들어진 곳’이라 했고 한자로 도(道: 이치), 로(路: 과정), 경(經: 지름길) 진(畛: 밭두렁길) 등이 있다.

 

도와 로는 고려시대 이후 현재까지 지방 행정구역을 일컫고 ‘사람이(道) 가야할 길(曹)을 의미한다. 영어 road(길, 행로, 진로)라는 말은 라틴어의 rad(말타고 다니다)에서 유래됐으며 way(길, 방법)는 ‘출발점과 도착점에 이르는 과정’을 뜻한다.

 

길의 종류에는 당길, 오솔길, 외길, 자갈길, 샛길, 어귀 등이 있고 용도별로는 장꾼들의 장길, 차로, 철길이 있으며 임금님이 다닌 어로, 필로 등 다양하다.

 

인천은 예로부터 국가의 중요한 관문기능을 가진 지역으로 백제 때의 능허대가 생겼고 1895년 역제가 폐지되기까지 한양과 연결 길로 두 개의 큰 축이 생겨났다. 행정구역상 영종포(동인천)와 인천도호부를 거쳐 한양으로 가는 길과 부평도호부에서 강화도로 연결되는 길이 있었다.

 

큰길은 잔 길을 만들고 그 잔 길을 보면 그 지역의 신앙, 조형물, 집단재배식물 그리고 나무, 전설 등 다양한 이름을 가지고 있어 그곳의 총체적인 역사가 만들어지고 인문학이 형성되는 것이다.

 

예언가와 다름없는 문인들은 몇 날 몇 년의 세월을 바라보는 위력이 있다. 박인환의 시 <인천항>을 음미해 보면 그 정답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조선의 해항 인천의 부두가/ 중일전쟁 때 일본이 지배했던/ 상해의 밤을 소리 없이 닮아 간다”고 했던 것은 분단체제의 슬픈 불행을 예견한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인천을 묘사한 시 작품들은 수없이 많다.

 

한 시대의 시대상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시를 찾아 읽어 봄은 또 다른 의미에서 역사를 접하는 희열이다. 소외의 무거움도 가볍게 하고 상처의 잔혹함은 경쾌하게 치유될 수 있는 살가운 시(詩) 맛이 있기 때문이다.

 

원인천의 심장통, 미두취인소와 식산은행을 끼고 앉았던 ‘미야마찌’, 6·25 전쟁과 분단 그리고 전후의 궁핍한 생활이 만든 성장 소설의 주 무대인 곳, 바람 부는 쪽으로 바람과 함께 넘어지며 피흘리는 ‘에레나’들이 하루를 살기 위해 없는 웃음을 만들어 몸 밖으로 표출해야만 했던 우리들의 ‘순이’가 있었던 영욕의 땅.

 

왜정시대의 아이꼬(愛子)가 해방을 맞으며 에레나로 바꿔 불려졌던 그들이 머물며 개항장을 온 몸으로 울었던, 그들이 흘린 상흔이 남아있는 해안동은 흘러가는 개인의 가(街)가 아니라 집단적 기억이자 우리의 아픈 표상이다. 버려도 버려지지 않는 세계 속의 지워버리고 싶은 고통의 흔적이 아닐 수 없다.

 

오정희의 소설 <중국인 거리>속의 주인공은 수없이 많았다. 선우휘 원작의 <깃발 없는 기수>속의 하룻밤 이야기는 추억의 엽서랄까. 잊을 수 없고, 이범선의 <오발탄>, 오영수의 <안나의 유서> 등의 문학작품들이 우리에게 묻고 있다. 가수 안다성의 노래 <에레나가 된 순이>가 귀에 맴돈다.

 

눈으로 가고 발로 보는 도시의 시가지가 가지고 있는 과거사는 정(情)이다. 사라져 버려도 아련한 그리움으로 짙게 남아 기억을 기억하는 것이다.

 

이제 경기신문 독자들과 더불어 격주에 한 번씩 인천의 축축했던 흔적을 열어 보자. / 시인·인천서예협회 고문

 

▲김학균은

인천문인협회장과 인천예총 사무처장, 인천예술진흥위원 등을 역임했고 현재 시인이자 인천서예협회 고문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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