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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수의 월드뮤직기행] ‘카페 순례자의 고민’

 

방송작가란 직업을 택한 것은 ‘수 틀릴 때 확 때려치울 수 있고 돈 떨어지면 바로 일자리를 얻는데 용이해서’ 였다. 물론 인정받는 위치에 있어야 가능한 일이지만 그건 어느 직업이나 마찬가지일테고. 일을 쉬면 바로 저가 비행기표 검색에 들어갔다. 단 사흘이라도 가족, 직장의 일원이 아닌 자연인으로 떠돌다 돌아오면 터질 듯 에너지가 충전되었다.그 힘으로 글쟁이의 지옥을 견디었다.

그런데 코로나. 앞이 안 보이는, 사방이 벽인 작금의 세상, 행사도 만남도 취소, 취소, 취소다.

 

집구석에 있는 날이 많아지면서 조울증 환자처럼 감정기복이 심해졌다. 안다. 응급치료법은 햇빛과 산책. 혼자 나와 갈 데가 특별히 있을까. 대부분 좀 걷다 카페를 찾아 들어간다. 문제는 나의 까탈스러움이다.

 

음악 강의를 하는 사람이라 젊은층을 타깃으로 트는 대중가요, 팝송같은 유행가가 꽝꽝 울리는 곳에는 5분도 못 앉아 있는다. 또 볼펜 하나를 사도 컬러, 디자인을 보는 패셔니스트 성향이 있어(재수 없어 할까봐 감추고 산다) 상업적이고 감각 없는 공간도 불편하다. 한구석에 자기계발서나 여성잡지류가 꽂힌 책장을 발견하면 또 엉덩이가 들썩인다. 결정적인 것은 커피맛. 김밥집은 김밥이, 설렁탕집은 설렁탕이 맛나야 하듯 커피집은 커피맛이 최우선. 단가 때문에 질 낮은 콩을 쓰거나 장사가 안돼 콩이 묵은 경우, 또 기계관리가 부실한 등의 경우, 커피맛으로 들통 난다. 특히 나같은 커피매니아에게는! 아, 또 있다. 음악, 인테리어, 커피맛, 이 삼종세트가 맘에 들어도 손님이 많아 시끌시끌하면 그것도 오래 못 견딘다. 대개 책이나 노트북을 들고 가 작업을 하기 때문이다.(그래서 개인 카페에서는 오래 작업이 힘들다)

 

코로나 시국을 타서 내 사는 파주의 이름난 카페는 대부분 다 가본 듯 하다. 그러나 가져간 책 열장도 못 넘기고 커피만 들고 나온 경우가 많다. 커피값은 또 싸기나 한가. 누굴 탓하겠는가. 내 까탈 때문인 것을. 그러던 중 파주출판단지 근처 다세대 주택 사는 지인집을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가로수에 간판이 가려진 작은 카페를 발견했다. 내 집 가까이 이런 카페가 있었나, 생각하며 들어서는 순간 커피콩 볶는 내음과 함께 덥친 저음의 더블베이스의 소리. 바이올린으로만 들어왔던 사라사테의 지고이네르 바이젠이란 곡이었다. 울적한 기분 때문이었을까. 더블베이스의 활이 심장을 그어대는 듯했고 콧날이 시큰하더니 눈물이 차올랐다. 실연한 여자처럼 주문 않고 곡이 끝날 때까지 앉아있는 별난 손님을 수작업으로 커피콩을 볶던 주인은 기다려준다.

 

연주자가 누굽니까? 는 질문에 CD플레이어 앞의 케이스를 건네준다. 에드가 메이어(Edgar Meyer). 미국출신으로 요요마, 힐러리 한과의 협연을 통해 세계에 알려진 더블베이스 연주자이자 작곡자. 60년생이니 환갑이 넘었겠다. 에드가 메이어를 알게 된 것만으로 반나절의 우울이 날라갔는데 받아든 커피맛까지 깊다. 화가부부가 운영하는 카페의 무채색 벽면에는 그들의 그림 몇 점과 만만찮은 독서이력을 드러내는 예술이론서, 소설, 철학서들이 빽빽하다.

 

행복해졌다. 다음 회는 에드가 메이어 집중탐구 보고서가 될 듯하다.

 

(인터넷창에서 www.월드뮤직.com을 치면 소개된 음악을 유튜브로 감상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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