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히, 바둑이 너무 좋아서라거나
치매예방에 효과적인 뇌운동이라거나
종일 얼굴 맞대어야 하는
답답한 시선을 피해서만 아닙니다
평생 이루지 못한 신의 한 수를 찾아
오늘도 하염없이 바둑판을 응시합니다
기기묘묘한 알박기를 위해
죽었던 돌이 다시 살아나고
한 수 삐끗하면 판 전체가 끝장나는
긴장이 맴도는 그런 대국,
마지막 돌을 던지는 순간에도
장고하는 건
일생일대의 대결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바로 잡을 수 없는 생의 족적을
비우기 위한 절묘한 수가
어딘가 있을 거라는 희망 때문입니다
나의 숨소리와
마주앉은 이의 숨소리가
한 테이블에서 흑백의 생을 재단합니다
조금이라도 더 큰 집을 짓기 위해
허물고 허물어지며
바둑판 거미줄에 생을 걸쳐 놓습니다
시간이 똑, 똑 떨어집니다
거꾸로 세워놓은 석간수 한 통
다 비워지는 저녁
갈 길은 먼데 다시 급한 곳부터
포석을 정비합니다
아직도 지을 집이 많습니다

◇ 김정인 시인 약력
199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오래도록 내 안에서] [누군가 잡았지 옷깃]
산문집: [엄마는 7학년] 등 교육서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