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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다섯 글자' 새긴 묘비, 백기완 선생 묘소 앞에서 모두 웃었다

고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새긴돌 세우는 날… 시민 수백명 운집 추모 이어가

 

‘백기완 묻엄’.

 

고(故) 백기완(1933∼2021) 선생(통일문제연구소장)의 새긴돌(묘비)에는 약력이 빼곡하게 적힌 여느 것들과 달리, 정확히 다섯 글자뿐이다. 그러나 많은 이들의 가슴 가득히 글로 담을 수 없는 ‘백기완 정신’이 새겨졌다. ‘질라라비 훨훨’. 자유와 해방을 향해 날갯짓을 하며 훨훨 날아오른다는 의미다.

 

‘재야의 큰 어른’ 민중운동 버팀목이던 백기완 선생을 잃은 지 49일 만인 6일, 남양주 마석 모란공원에서 열린 ‘백기완 선생 새긴돌 세우는 날’에 함께 한 이들은 더 이상 울지 않았다. 다만 생전 민주주의와 분단 극복, 평화 통일을 이해, 특히 소외된 이들의 저항과 평등, 해방을 위해 걷고 또 걸었으며, 결국 훨훨 날아오른 백기완 정신을 가슴에 새기며 서로를 위로했다.

 

노나메기 세상 백기완 선생 사회장 장례위원회가 마련한 이날 행사에는 고 백 선생의 부인 김정숙 여사, 딸 백원담, 백미담, 백현담, 아들 백일 씨 등 유족들과 그를 따르는 제자, 노동권 인사 및 각지 시민들 수백여 명이 몰렸다.

 

이들은 백기완 선생의 무덤에 각자의 일터에서 따온 꽃잎을 뿌리고 꽃다발을 얹어 ‘꽃무덤’을 만들었다. 또 가수 정태춘의 클라리넷 연주로 ‘봄날은 간다’를 함께 듣고 ‘임을 위한 행진곡’을 같이 부르며 백 선생의 살아온 길을 기렸다.

 

 

이 자리에서 김수억 금속노조 기아차비정규직지회장은 “한파보다 더 시리고 외로울 때, 앞이 보이지 않을 때 ‘고개 들어, 어깨 펴’라며 힘을 불어넣어주셨던 선생님의 모습을 기억한다”라며 “이제 슬퍼하지만은 않겠다. 선생님의 뜻을 가슴에 새기고 통일된 세상을 위해 싸우는 노동자로 살아가겠다”라고 다짐을 밝혔다.

 

백 선생의 딸 백원담 성공회대 중어중국학과 교수는 “백기완의 딸로 태어나 무서울 것 없고 거칠 것 없이 살아왔다. 여러분도 아버지와 뜻을 함께 해 싸워왔으니 저와 같을 것”이라며 “아버지 평생의 염원이던 ‘너도 일하고 나도 일하는 세상, 너도 잘 살고 나도 잘 사는 세상, 노나메기 세상’을 만들기 위해 거침없이, 무서움 없이 나아가면 된다. 아버지가 그 현장에 가장 먼저 도착하셔서 기다리고 계실 거다”라고 전했다.

 

부인 김정숙 여사도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리지만, 아름다운 봄날, 평일임에도 이렇게 많은 분들이 와주셔서 위로가 된다. 허리 숙여 감사드린다”라고 인사를 전했다.

 

유족들은 김정숙 여사가 평소 백기완 선생에게 자주 불러줬던 ‘낮에 나온 반달’을 함께 불러 듣는 이들의 눈가를 적시기도 했다.

 

 

한국사회 근현대의 거목으로 민족·민주·노동자민중 운동의 산증인이자 버팀목이던 백기완 선생은 지난 2월 15일 새벽 투병 끝에 89세 일기로 영면했다. 같은 달 19일 영결식이 엄수된 후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전국 35개 지역 50여 곳, 해외 3곳의 분향소가 자발적으로 차려져 ‘시민국장’, ‘사회적 국장’ 형식의 장례절차가 진행돼왔으며, 이날 행사를 끝으로 장례위원회는 해단했다.

 

노나메기 세상 백기완 선생 사회장 장례위원회 관계자는 “선생님께서도 생전의 업과 소임을 내려두고 자유롭게 저 하늘로 돌아가시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아 행사를 준비했다”라며 “49재 즈음한 ‘새긴돌 세우는 날’(묘비 제막식)까지 모든 장례 과정을 도운 분들에게 감사드린다”라고 전했다.

 

[ 경기신문 = 노해리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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