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명이 숨진 한익스프레스 남이천 물류창고 화재. 벌써 1년이 지났다.
지난해 4월 29일 이천시 모가면 공사 현장에는 공기 단축을 위해 예정보다 2배 많은 인력이 한꺼번에 투입됐다. 대부분 설비, 도장, 전기 등 각 분야 하청업체 소속 직원들이었다.
그러던 중 이날 오후 1시 32분 검은 연기와 불꽃이 지하 2층 지상 4층 1만1000여㎡ 규모 건물을 집어삼켰다.
화재 원인은 ‘용접 불티’였다. 당초 불티는 천장 벽면 속에 도포된 우레탄폼을 따라 돌아다녔다. 그때까지만 해도 작업자들은 아무 것도 모른 채 작업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불티는 이내 큰 불로 번졌고, 불과 연기로 뒤덮인 건물 내부는 아수라장이 됐다.
현장 유해위험방지계획서에는 지하 2층에서 화재 등 위험 발생 때 기계실로 통하는 방화문으로 대피하게 돼 있지만 현장에는 방화문이 없었다. 방화문이 들어갈 공간을 비워두면 결로가 생길 수 있다는 이유에서 벽돌로 막아버린 것이다. 지하 2층 작업자들은 이 벽돌을 뚫어보려다 결국 숨졌다.
지상 1층부터 옥상까지 연결된 옥외 비상계단 외장은 설계와 달리 패널로 마감돼 오히려 불길이 확산하는 통로가 됐다. 이로 인해 대피로가 없어진 지상층 작업자들의 인명피해가 늘어났다. 특히, 지상 2층에 투입된 작업자 18명은 모두 숨졌다.
이날 불로 작업자 38명이 숨지고, 10명이 후유장애가 남을 정도로 중상을 입었다. 지난 2018년 밀양 세종병원 화재에 이어 최근 10년간 최다 사망자를 낸 화재 사고로 기록됐다.
지난해 말 사고 관련 첫 판결 선고가 내려졌지만, 유가족들은 “재발 방지를 기대할 수 없는 솜방망이 처벌이라며 반발했다.
시공사 건우 현장소장에게 징역 3년6월, 같은 회사 관계자에게는 2년3월, 감리관계자에게는 1년8월의 징역형이 각각 선고되는데 그쳤고, 발주처인 한익스프레스 팀장은 금고 8월 집행유예 2년을 받아 실형을 면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정치권은 재발 방지 대책으로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법)’을 꺼내 들었다. 노동자의 사망사고 등이 발생했을 때 예방책임을 다하지 않은 사업주와 경영 책임자, 기업을 처벌한다는 내용으로, 지난 1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내년 1월 시행되는 이 법안에는 노동자 1명이 숨지거나 전치 6개월 이상의 부상자가 2명 이상 발생하는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경우 사업주, 경영책임자가 산재 예방에 필요한 인력, 예산 등 규정된 안전 조치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드러나면 1년 이상의 징역형 또는 10억 원 이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
사업주와 경영 책임자 외에 법인, 기관도 주의·감독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날 경우 최대 50억 원까지의 벌금형을 선고받을 수 있다.
그러나 노동계는 중대재해법이 여전히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5인 미만 사업장을 예외로 두고 있어 산재에 취약한 소규모 기업들이 사각지대에 놓일뿐더러 건설공사 발주자를 처벌 대상에 포함한 조항이 빠지면서 발주처의 공기 단축 요구 등이 사고로 이어지는 것을 막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현행 중대재해법으론 발주자가 공사 기간 단축을 강요할 경우 실무자들은 안전 지침을 어길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며 "발주자에게 더 강한 책임을 물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해 별도의 교육과 안전관리가 지원돼야 한다"며 "이 법으로 재계가 지나치게 위축되지 않도록 모범 기업 인센티브 지급 등 보완책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 경기신문 = 김기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