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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의 언제나, 영화처럼] 머리카락의 공포, 시대의 공포

⑯ 배드 헤어 - 저스틴 시미엔

지난 목요일 새 영화가 개봉되기 전까지 국내 극장가에서 ‘그나마’ 가장 눈길이 갔던 작품은 선댄스영화제 발(發) 화제작이었던 흑인 공포영화 ‘배드 헤어’이다. 이 영화, 이상함과 황당함으로 가득 차 있지만 설정 하나 만큼은 ‘죽인다’. 머리카락이 흡혈 귀신에 씌여서 사람들을 홀리거나 해치는 얘기다. 그런데 이 머리카락이라고 하는 것, 꽤나 상징하는 바가 재미있다.

 

제목 ‘배드 헤어’의 배드 헤어는 그야말로 질이 안 좋고 볼품이 없는 머리카락을 말한다. 흑인들이 천부적으로 타고날 수밖에 없는 일명 ‘뽀글이’ 헤어다. 흑인들은 늘 이런 헤어 스타일이 콤플렉스인데, 자신들의 외모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고 그것이 백인 주류사회에서 차별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다양한 ‘가짜 머리카락’들, 헤어 스타일들이 개발돼 왔는데 크림으로 그때그때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머리를 펴거나 형형색색의 가발은 물론이고 이런 거 저런 거 다 싫으면 차라리 아예 머리를 박박 미는 흑인남녀들도 많다. 하지만 그 중에서 가장 으뜸은 붙임 머리다. 머리를 가느다란 새끼로 바짝 당겨 묶고 그 매듭 사이사이로 흘러내리는 인조 머리를 꿰매 붙이는 방식이다.

 

영화 ‘배드 헤어’에서 그 공정 과정이 노출되는데 여성들에게 어마어마한 고통이 수반되는 것은 물론이다. 바짝 당겨진 두피에는 늘 통증이 오는데다 오랫동안 머리를 감는 대신 별도로 개발된 헤어 에센스를 바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하니 그것도 못할 짓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주인공 애나(엘르 로레인)는 ‘그 짓’을 감행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외모는 계급 그 자체가 된 지 오래다. 거꾸로 그 외모는 계급적 특혜를 누릴 수 있게 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외모와 계급은 그렇게 주고받는다.

 

 

애나가 자신의 흑인 정체성을 헌신짝 버리듯 버려 가면서까지 헤어 스타일을 바꾼 것은 순전히 자신의 계급적 욕망을 실현시키기 위한 것이다. 변방의 케이블TV 어시스턴트인 그녀는 VJ 진행자가 되려고 애쓴다. 그런데 그게 전혀 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애나가 450달러라는 거금을 들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찰랑찰랑한 머리로 바꾼 후 방송국 내에서 승승장구할 기회를 얻으려 고군분투하는 이유다. 문제는 이때부터 기이한 살인이 이어지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영화의 완성도는 꽤나 ‘조악하고 저급한’ 수준이지만 그건 극히 저예산으로 기획된 작품이라고 치면 이해가 간다. 영화는 거의 전편이 방송국과 애나의 집, 애나의 삼촌 집, 기껏해야 미용실로 이어지는 세트 공간으로만 찍혀졌다. 그럼에도 영화는 일단 흥미를 끈다. 무엇보다 흑인 공포영화가 정면으로 만들어지고 본격적으로 소비되고 있다는 점이 그렇다.

 

흑인들만의 이야기로 공포영화가 만들어지는 것은 상업적으로 그다지 영리하지 못한 것으로 그동안 받아들여져 왔다. 공포영화에서 ‘흑인=他인종’은 귀신에 홀린 무엇이거나 괴(怪)존재 자체(‘캔디맨’, ‘앤젤 하트’ 등), 아니면 그것의 직접적인 희생양(‘겟 아웃’)으로만 그려져 왔다. 피압박 계층으로서 흑인들이 갖는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직접적인 소재나 주제로 치환시킨 작품은 흔치 않았다. 이 영화를 미국과 전세계 독립영화의 산실 쯤으로 받아들여지는 선댄스영화제가 픽업한 것은 다 이유가 있어 보인다.

 

 

시대 배경을 1989년으로 설정한 것도 나름 의미가 있어 보인다. 1989년은 레이건노믹스가 만들어 낸 거품 경제가 최고조에 달했던 시기이고, 그렇게 자본이 만들어 낸 착시효과는 흑인 커뮤니티에도 상당한 소비풍조를 일으켰다. 백인 중심의 미국 자본주의 사회는 흑인들로 하여금 스스로가 소비하게 하기 위해 생산자의 자리를 아주 약간 양보해 주는데, 그게 MTV와 흑인 음악으로 명명되는 엔터테인먼트 산업이다. 당근을 쥐어준 셈이다.

 

하지만 자본의 약육강식 법칙은 당연히 사회 전반에 양극화의 전선을 넓히게 되고 이는 또 다시 인종/계급/젠더 상의 심각한 차별로 결과하게 된다. 89년의 사회상은 91년 로드니 킹 사건으로 이어지고 결국 92년 LA폭동사태가 벌어지게 된다. 흑인들 스스로 욕망과 충족의 변화체계를 인지하고 인식하기 시작하기 직전의 공황상태야말로 이 영화 ‘배드 헤어’가 보여주려는 시대상이다. 그런데 그게 꼭 1989년의 얘기만이 아니라 지금 당장의 현실을 빗대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배드 헤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만든 영화가 아니다. 엉기고 성긴 느낌을 잔뜩 준다. 특히 후반부에 여성끼리 머리카락으로 육탄전을 벌이는 모습은 코믹하기까지 하다. 영화는 결코 아이디어나 설정, 시대의식만 가지고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풍부하게 이야기를 끌고 가야 하고, 장면장면마다 세련된 기술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배드 헤어’는 모자란 영화다. 미국 사회 내 흑인들의 사회적 자의식이 급격하게 고양되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만큼만 유용하다. 당신이 이 영화를 볼 것인가, 그렇지 않을 것인가는 순전히 당신의 취향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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