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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수의 인천얘기 17 - 추모기사 게재사업

 글쓴이는 매주 토요일이면 동구에 있는 화도진도서관엘 간다. 10년 남짓 됐을까, 어느덧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거의 빼먹지 않는 일상이 됐다.

 

책을 빌리고, 반납하고 신간서적을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또 여전히 그 자리에 있으면서 반겨주는, 오래된 책들에서 뿜어져나오는 향기(文字香)와 기운(書券氣)을 느껴보는 것도 더할 수 없는 즐거움이다.

 

지난 15일이었다. 읽으려고 작정했던 책 두 권을 고르고 난 뒤 여행과 인물 관련 도서들이 있는 서가를 지나는데 문득 한 권의 책이 눈에 띄었다.

 

'뉴욕타임즈 부고 모음집'. 꽤 두툼한 분량의 책을 꺼내들었다. 이름만 들어도 금방 알만한 각계 유명 인물들의 부고기사가 빼곡했다. 단순한 죽음의 알림이 아니라 그들의 삶을 압축해놓은 ‘소전기(小傳記)’였다.

 

‘이 책이 언제부터 여기 있었지, 내가 그 동안 보지 못했나?’ 순간 이미 대출한 도서를 바꿀까 하는 고민도 들었지만 다음 번 대출 목록 1호로 점 찍어 놓고는 도서관을 나왔다.

 

2019년 7월 출간된 이 책은 1851년 창간부터 2016년까지 뉴욕 타임스 부고란에 실렸던 사람들의 기사를 선별해 담은 것이다. 부음(訃音)기사이면서 역사기록이었다.

 

인류는 아주 오래전부터 ‘죽음’이라는 필연의 운명 속에 곁을 떠나간 사람들을 여러 가지 방법으로 기리고 애도했다. 장엄하고 화려하게 장례의식을 치렀고, 웅장한 규모의 무덤을 조성하기도 했다. 내세에서도 이승과 똑 같은 삶을 영위하기를 바라면서 무덤 안에 많은 생활용품, 심지어 시중드는 사람까지 함께 묻었다.

 

이렇게 할 만큼 형편이 넉넉하지 못했던 사람들 역시 마음만은 ‘있는 사람들’과 별반 다를 바 없었다. 특히 죽은 뒤 오랜 동안 집에서 또는 무덤을 찾아 그들을 추모하는 데 지극정성을 다한 점에서는 한결같았다.

 

문자가 본격적으로 사용되면서부터는 한층 다양하고 풍성한 방법으로 고인들을 기렸다. 그 기록에 담긴 절절한 내용들은 지금도 우리의 마음을 애틋하게 한다.

 

무덤에는 묘표와 묘갈, 신도비 등이 등장했다. 신분에 따라 크기는 달랐지만 고인의 생애와 업적을 간추려 넣은 것은 똑같았다. 또 죽은 이의 행실을 간명하게 기록한 행장(行狀)도 보편화됐다. 유족의 부탁으로 고인과 가까웠던 친우(親友)나 선·후학(先後學)들이 주로 지었다.

 

조선 중기의 학자 윤선거(尹宣擧 1610~69)의 비문을 둘러싸고 그의 아들 윤증(尹拯 1629~1714)과 송시열(宋時烈 1607~89) 간에 벌어진 다툼이 소론(少論)과 노론(老論)으로 서인이 분기하는 계기의 하나가 됐다는 역사적 사실은 유명하다.

 

조선시대 학자나 관료들의 개인문집에는 주변 인물들의 묘표, 묘갈, 신도비명, 행장 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한다. 대상도 임금에서부터 고위 관료, 가까운 친·인척, 친구, 지인의 부모나 부인 등 다양하다. 이들은 또 시(詩)를 통해서도 죽음을 애도하며 슬픈 마음을 표현했고, 드물긴 했지만 전기(傳記)도 지었다.

 

뿐만 아니라 국가공식기록도 죽은 이들의 행적을 남겼다. 조선왕조실록의 ‘졸기(卒記)’가 그것이다. 국가기록이니 만큼 대상은 물론 왕을 포함한 왕족과 관료들이다. 그 사람의 평소 공적이나 비중에 따라 짧게는 한 줄에서부터 꽤 긴 분량까지 내용은 천차만별이다.

 

사관(史官)이라는 전문가의 손에 의해 제3자적 입장에서 냉철하고 객관적으로 기록된 졸기에는 그의 일상과 당대 또는 사후의 평가가-그것이 긍적적이든 부정적이든-가감없이 고스란히 실려 있다.

 

학창시절 나라를 위해 헌신하고 훌륭한 일을 한 것으로만 배웠던 인물의 졸기에 이면의 어두운 모습이 함께 표기된 경우가 적지 않다. 처음 대하면 당혹스럽고 불편스럽기도 하지만, 역사기록의 엄정함과 그것이 주는 교훈을 잘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앞서 뉴욕 타임즈의 예에서 보듯 현대의 신문들에서도 부고, 결혼, 모임, 개업 등(얼마 전까지는 칠순 팔순 돌 등의 각종 잔치 안내도 흔했었다)을 알리는 지면은 오랜 기간 매우 중요시돼왔고, 지금도 그러하다.

 

사회적이나 사업적, 정치적 관계 등 여러 이유로 특히 부고기사를 꼭 챙겨보는 사람들이 많다. 대부분이 한 줄짜리이지만 경우에 따라 별도의 추모기사, 추도사, 칼럼 등이 큼지막하게 실리기도 한다.

 

인천시가 지역 언론과 함께 ‘추모기사 게재사업’을 추진하기로 해 관심을 끈다. ‘인천과 함께한 당신을 기억합니다’라는 주제로 인천의 역사·문화와 함께한 고인의 인생사와 특별한 추억 등을 이야기,  기사 형태로 신문과 시 홈페이지에 게재하는 방식이다.

 

계층과 상관없고, 시민은 물론 인천에서 살았거나 직장생활을 하면서 특별한 인연 또는 추억이 있는 연고자면 누구나 가능하다. 이를 아카이브 형태로 보관하고 시대상을 알 수 있는 역사 관련 빅데이터로 축적해 인천만의 소중한 기록유산으로 보존한다는 것이 시의 방침이다.

 

두 손 들어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언론사가 아닌 지방자치단체가 이러한 사업에 먼저 나섰다는 현실에 착잡함이 앞서는 것 또한 지역에서 기자생활을 30년 넘게 한 글쓴이에게는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마땅히 해야 했던 책무를 하지 않았다는 부끄러움이다./ 인천본사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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