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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의 언제나, 영화처럼] 사회가 너무 심각해 즐기는 영화가 필요해

⑰ 스파이럴 - 대런 린 보우즈만

 

극장가에 조용히 걸려 있는 ‘스파이럴’은 B급 공포 액션이다. 한때 젊은 층을 열광시켰던 ‘쏘우’ 시리즈의 스핀오프(spin-off), 일종의 파생상품이다. ‘스파이럴’의 주인공은 연쇄살인범인 직 쏘가 아니라 직 쏘의 모방범을 쫒는 형사 지크(크리스 록)이다.

 

경찰들이 한 명 한 명 잔혹하게 살해당한다. ‘쏘우’ 시리즈의 사람을 죽이는 방식, 그 살인의 표현 수위는 ‘일가(一家)’를 이룬다. 잔인하기가 이를 데 없는데 오히려 상상력이 아주 뛰어나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상상이 지나치면 현실감각을 떨어뜨린다. 일종의 소격효과(疏隔效果)를 불러일으켜 ‘이건 영화니까 가능한 거야’, ‘난 지금 영화를 보고 있을 뿐인 거야’라는 현실감을 반대로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영화 ‘쏘우’ 시리즈는 유희로 받아들여지곤 한다. 이 영화가 심의에서 살아남은 이유는 그 때문이다. 불쾌감이나 거부감보다는 영화적 쾌감이 극대화된 것이라는 판단이 앞선다. ‘재밌잖아!’ 뭐 그런 식이었다.

 

 

아무튼 경찰들이 한 명 한 명 죽는다. 몸통이 날아가고, 사지가 찢기고, 불에 ‘홀라당’ 타고, 온몸에 유리가 박혀 죽어 나가는 동안 경찰서에서는 한 명의 형사에게만 편지가 날아든다. 살인을 예고하는 내용이다. 그 편지를 받은 경찰이 바로 지크다. 근데 왜 지크인가. 과거 지크가 수사했던 사건과 관련이 있는가. 지크는 과연 비리 경찰이었는가.

 

그런데 지크는 오히려 깨끗한 인물이다. 그의 주변이 문제다. 그는 흑인 서장을 아버지로 둔 경찰 2세이고 수사를 원칙대로 하려다 조직 내에서 왕따를 당해 왔다. 그는 한국의 누구처럼 조직에 충성하는 사람이 아니다. 되려 사람에게 충성하다 그런 일이 생겼다. 지크는 주변을 탐문한다. 아버지인 전직 경찰에게도 도움을 받으려 한다.

 

 

일은 점점 오리무중을 향해 간다. 자기 파트너까지 껍질이 벗겨진 시체로 발견된다.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태엽감는 새’를 보면 산채로 껍질을 벗기는 고문은 일본군이 동남아 침략 과정에서 저지른 만행 중의 하나였다.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다고 한다. ‘스파이럴’은 그런 장면까지 등장시킨다. 우웩! 자 어서 빨리 범인을 잡아라. 살인자여 얼굴을 드러내라.

 

영화는 점점 흥미로운 결말로 달려가지만 어느 지점에서는 누가 범인이구나 하는 짐작을 가능하게 한다. 똑똑한 영화광은 진작에 범인을 잡아낼 것이다. 이런 류의 영화는 일정한 법칙을 지닌다. 반전에, 반전에, 반전을 하려고 애쓰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범인은 바로 앞에 있다는 것을 눈치챌 수 있게 된다.

 

이 영화를 보면서 당신이 범인을 맞추느냐 그렇지 않느냐를 두고 자신의 인생에서 스스로가 영화를 얼마나 봐 오며 살아왔는지를 가늠하시길. 살면서 그런 쓸데없는 일도 스트레스를 벗는데 도움을 주게 하는 법이다.

 

 

왜 ‘스파이럴’ 같은 영화를 경기신문 같은 중요한 매체의 값비싼 지면에 할애하느냐. 영화보다는 그 점, 그런 컨텍스트가 중요하다.

 

첫째는 이 영화가 만들어진 과정이 흥미롭다. ‘스파이럴’은 ‘쏘우 1’의 감독인 제임스완이 기획자로 참가한 작품이다. 제임스 완은 말레이시아 사람이다. 주인공인 흑인배우 크리스 록도 기획과 각본에 참여했다. 이 영화의 주요 캐릭터는 흑인이다. 흑인이 서장이고 흑인이 수사를 지휘하고 흑인이 범인과 싸우고 응징하려 한다. 한 마디로 ‘쏘우’ 시리즈의 흑인판이다.

 

할리우드의 패권이 WASP, 곧 백인들에게서 급격하게 흑인 여성 성소수자 들인 ‘계층/인종/성별의 다양성’으로 넘어가고 있음을 트렌드로 보여준다. 넷플릭스의 최근작 중에는 ‘우먼 인 윈도우’란 작품이 있고 여기 주인공은 에이미 아담스인데, 이 영화는 유명한 고전인 알프레드 히치콕의 ‘이창’을 여성판으로 바꾼 것이다. 세상에. 훔쳐보기의 끝판왕 영화인 ‘이창’의 주인공이 여성이라니. 세상이 그만큼 변하고 바뀌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야 말로 두 번째 이유이다. 세상은 정신없이 바뀌고 있는데 우리의 5월과 정치사회, 특히 정치권은 구태에 구태를 면하지 못하고 있다. 사회가 너무 선언적이어서는 발전이 없다. 5월이라고 죄다 광주 망월동에 몰려가서 눈물을 흘리는 척을 해서는 사회의 위선이 극복될 길이 없다. 5월이라고 5월 광주 영화만을 봐야 한다고 하면 그것 역시 이 사회의 경직을 풀 길이 없다. 모든 진보의 최대 적은 기계주의이다. 유연함이 세상을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스파이럴’은 그런 면에서 이런 시기에 역설적으로 우리들 스스로를 의도적으로 무장해제시키고 인생과 사회의 다양한 면을 생각하게 만드는 계기를 준다. 웃고 즐기고 해야 웃고 즐기는 것의 실체를 알 수가 있다. 웃고 즐기는 사회를 만들 수 있다. 현재의 한국 사회는 너무 심각하다. 영화는 그런 사회에 유머와 오락은 준다.

 

그런데 ‘스파이럴’ 따위의 영화가 그런 ‘큰일’을 해낸다고? 그거 너무 견강부회(牽强附會) 아니냐고? 세상사 다 생각하기 나름이다. 여유들을 찾기 바란다. 혁명도 다 웃으며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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