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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일의 역사를 말하다] 국정교과서와 현 검정교과서는 일란성 쌍둥이

-연재를 마치며

 

국정교과서 반대 특강

 

우리 사회는 박근혜 정권 때 국정교과서로 큰 소동을 겪었다. 몇 개의 검정교과서 중에 하나를 골라 사용하는 체제를 국가에서 국정교과서 한 종을 제작해 사용하게 하려고 하자 당시 야당인 민주당을 비롯해 사회 여러 단체에서 반대목소리를 냈다. 당시 민주당 대표가 현재의 문재인 대통령이었다. 2015년 10월 민주당은 친일독재미화 국정교과서 반대 대국민서명운동을 전개했는데, 이때 내 건 구호가 “역사책을 아무리 바꿔도 친일은 친일”이라는 것이었다. 또한 “좋은 대통령은 역사를 만들고, 나쁜 대통령은 역사책을 바꿉니다”라는 구호도 있었다. 현재 서울시교육감인 조희연도 “교육부는 국정교과서 즉각 철회하라”는 피켓 시위에 동참했고, 전교조도 “독립운동 축소 친일세력 미화 국정교과서 반대한다”라는 구호와 함께 반대시위를 전개했다. 필자도 보신각 옆에서 국정교과서 반대 길거리 특강에 나섰다.

국정교과서는 세월호, 최순실 국정농단사태와 함께 박근혜 정권을 몰락시킨 3대 악재가 되었다. 필자는 지금도 길거리 특강내용을 기억한다. 그만큼 국사교과서에 대해 평소 생각도 많고 할 말도 많았기 때문이었다. 필자는 크게 두 가지 내용으로 강연했다. 먼저 각국에서 사용하는 교과서의 종류, 즉 형식을 설명했는데, 크게 국정, 검인정, 자유발행제의 세 종류 교과서가 있다고 설명했다. 국정은 국가에서 한 종의 국사교과서를 채택해 사용하는 제도이고, 검인정은 국가의 심의를 통과한 몇 종의 교과서 중 하나를 채택하는 제도이다. 자유발행제는 저자들이 자유롭게 저술한 교과서를 사용하는 제도이다. 국정교과서는 주로 일당 독재의 사회주의 국가들이 채택하는 반면 자유발행제는 서구 OECD 국가들 대부분이 채택하는 제도다. 자유발행제가 가장 바람직한 제도지만 우리나라는 획일적인 대학입시 제도가 중·고교 교육에 워낙 큰 영향력을 끼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는 검인정으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교과서의 형식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내용이라고 강조했다. 그때까지 우리나라에서 사용했던 국사교과서는 국정이든 검인정이든 모두 조선총독부 학무국에서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국정이란 체제도 문제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국사교과서의 내용을 바꾸는 것이라고 말했다. 식민사학, 즉 조선총독부 역사관을 들어낸 자주적 역사관이 담긴 교과서를 제작해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검정교과서는 달라졌는가?

 

 

박근혜 정권이 무너지고 문재인 정권이 들어섰다. 누구나 박근혜 정권 때의 국정교과서보다 형식면에서나 내용면에서 나은 교과서가 제작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다. 드디어 국정교과서는 폐기되고 검정교과서가 채택되어 2020년부터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현재 사용 중인 검정교과서는 국정교과서 반대시위 당시 민주당이 내 건 “역사책을 아무리 바꿔도 친일은 친일”이라는 구호가 ‘만고의 진리’라도 되는 양 친일 식민사학 일색이다. 국정교과서보다 친일 색채가 더욱 짙어진 부분도 적지 않다. 지난 번에도 말했던 고려 북방강역을 보자. 《고려사》·《조선왕조실록》 같은 한국측 자료는 물론 《원사(元史)》·《명사(明史)》도 고려 북방강역은 압록강~두만강 북쪽까지라고 한 목소리로 말하고 있다. 압록강 북쪽으로는 지금의 심양 남쪽까지, 두만강 북쪽 700리 지점의 공험진 선춘령까지라고 말하고 있다. 몽골세력이 밀려들던 고려 고종 45년(1256) 조휘·탁청 같은 민족반역자들이 압록강~두만강 북쪽을 들어 몽골에 들어 바치자 원나라는 이곳에 쌍성총관부를 설치하고 자국의 강역으로 삼았다. 그 후 공민왕이 재위 5년(1358) 인당, 유인우 등을 보내 수복해 다시 고려 강역이 되었다. 《원사》는 “요동 쌍성”이라고 해서 쌍성총관부가 요동에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사용 중인 모든 검정교과서는 쌍성이 요동이 아니라 함경도에 있었다고 우기고 있다. 동아출판의 《고등학교 한국사》는 “(공민)왕은 기철로 대표되던 부원세력을 숙청하였고, 관제와 복식을 회복하였다. 또한, 정동행성이문소를 혁파하였고, 쌍성총관부를 공격하여 영토를 되찾았다(67쪽)”라면서 쌍성총관부가 지금이 함경남도에 있었다는 지도를 제시하고 있다. 쌍성총관부를 설치했던 원나라의 정사인 《원사》가 쌍성이 요동에 있었다는데 원나라 간섭기도 아닌 21세기 대한민국의 모든 검정교과서가 쌍성이 함경남도에 있었다고 우기는 것이다. 이병도 박사는 《한국사대관》에서 고려 강역을 한반도의 2/3에 국한된 것으로 그려 놨는데, 이는 이병도의 대부분의 학설이 그렇듯이 그의 일본인 스승들인 이케우치 히로시(池內宏), 쓰다 소키치(津田左右吉), 이마니시 류(今西龍) 등이 조작한 내용을 그대로 추종한 것이었다. 남한 강단사학계는 이병도와 함께 조선총독 직속의 조선사편수회에 근무했던 신석호를 국사학계(?)의 양대 태두로 추앙한다. 이 두 식민사학자들을 추앙하는데는 희한하게도 좌우도, 보수 진보도 없다.

 

◆국정교과서보다 후퇴한 검정교과서의 내용

 

현재 사용하는 검정교과서는 박근혜 때의 국정교과서보다 더 친일적인 내용도 적지 않다. 국정교과서는 ‘삼국과 가야문화의 일본전파’라는 항목에서 이렇게 썼다. “삼국과 가야의 문화는 왜에 전파되어 야마토 정권의 수립과 아스카 문화의 발전에 영향을 주었다. 백제는 아직기와 왕인을 왜에 보내어 한자, 천자문, 『논어』를 전하였다. 6세기에는 기술자 집단을 파견하고, 불경과 불상을 전해 주었으며 승려들이 건너가기도 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백제 양식의 목탑과 가람 배치 양식도 왜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71쪽)”

 

국정교과서는 삼국과 가야의 문화가 왜에 전파되어 ‘야마토정권의 수립과 아스카 문화의 발전에 영향을 주었다’고 구체적으로 기술하고 있다. 현행 검정교과서는 이 내용을 어떻게 서술하고 있을까? 천재교육의 《고등학교 한국사(주진오 등)》의 ‘삼국의 교류와 문화전파(41쪽)’를 보자. “삼국은 중국을 비롯하여 외국과 활발하게 교류하면서 선진문물을 수용하여 문화를 발전시켜 나갔다”라고 말하고 있다. 식민사관의 핵심이론인 ‘한국사 정체성론’을 바탕에 깔고 있다. 한국인들은 자발적인 사회발전 능력이 없기 때문에 외국의 식민지배를 받아야 발전한다는 일제의 ‘한국사 정체성론’을 그대로 서술한 것이다. 중국의 문물을 ‘선진문물’이라고 표현하는 자체가 일본 극우파들이 한국사를 깎아내릴 때 즐겨 쓰는 표현이다. 삼국의 문화와 왜의 관계에 대해서 이 검정교과서는 “또한, 삼국의 문화는 왜로 전파되었다. 4세기 백제의 아직기는 왜의 태자에게 한자를 가르쳤고, 왕인은 유학을 가르쳤다. 6세기 노리사치계는 불경과 불상을 전하였다. 이밖에도 오경박사, 의박사, 역박사와 같은 학자들과 화가, 공예기술자가 왜로 건너갔다”라고 쓰고 있다. 박근혜 정권 때의 국정교과서는 삼국과 가야의 문화가 일본의 “야마토정권의 수립과 아스카 문화의 발전에 영향을 주었다”라고 구체적으로 쓰고 있는데, 검정교과서는 중국의 ‘선진문물’을 수용해서 ‘왜에 전해주었다’고 쓰고 있는 것이다. 일본 극우파들이 주장하는 ‘징검다리론’의 반복이다. 한국은 독자적으로 발전시킨 문화를 왜에 전해준 것이 아니라 중국의 ‘선진문물’을 왜에 전달하는 ‘징검다리’ 혹은 ‘간이역’에 불과했다는 논리다.

 

교학사의 《고등학교 한국사(권희영 등)》는 한술 더 떠서 ‘삼국문화의 교류와 전파’에서 “고구려는 한반도의 가장 북쪽에 위치하여 중국의 선진 문화를 가장 먼저 받아들였으며 패기와 정열이 넘치는 문화를 만들어냈다(44쪽)”고 말하고 있다. 고구려는 지리상 중국과 가장 가깝기 때문에 중국의 ‘선진 문화를 가장 먼저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이 교과서는 “백제는 중국 문화를 적극 수용하여 우아하고 세련된 문화적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백제도 중국문화를 수용한 결과 우아하고 세련된 문화를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반면 “신라는 동남쪽에 치우쳐 있어 토착 문화의 흔적을 간직하며 소박하고 조화로운 문화를 만들어 냈다.”라고 폄하하고 있다. 중국 문화는 ‘선진문화’, ‘우아하고 세련’된 문화지만 한국 전통의 문화는 ‘토착, 소박’한 문화라는 것이다. 중국 것을 받아들였으면 ‘선진·우아·세련’된 문화이고 전통 문화는 이에 뒤떨어지는 ‘토착·소박’한 문화라는 것이다. 일본 극우파들이 썼다면 명실이 상부하다고 할 내용으로 우리 2세들을 가르치는 집단범죄가 만연하고 있다.

 

정권이 바뀌었다지만 우리 사회의 대다수 장삼이사들이 이를 몸으로 체감하지 못하는 것은 친일 식민사학자들의 세상이 계속되는 현실에 큰 요인이 있다. 1945~48년의 해방 공간에서 좌파는 물론 백범 김구 중심의 한국독립당 같은 민족주의 정당도 모두 제거된 채 친일세력들이 여야를 차지했던 비정상적 정치지형이 바뀌지 않는 한 이런 반역사적 상황은 계속될 것이다. 그래서 해방과 동시에 우리 민족에게 주어졌던 분단체제 극복과 민족독립이 여전히 현재 진행형의 과제임을 다시 확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