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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균의 재미있는 仁川 19 - 배롱나무, 꽃의 기억

 배롱나무, 꽃의 기억

 

자연을 예찬하는 시가(詩歌)를 뜻하는 강호가도(江湖歌道)의 선구자라면 전라도 담양이 낳은 ‘송순’이 아닐까 생각한다. 누정(누각과 정자)과 원림이 있고 수려한 산수가 있어 그런지는 몰라도 그곳은 이맘 때 배롱나무꽃이 빨갛게 피다 못해 붉은 물감을 엎질러 놓은 듯 붉게 타오르고 있다.

 

배롱꽃은 100일을 핀다 해서 ‘백일홍’이라고도 불렀고 배 곯던 민초들이 그 꽃이 지면 쌀밥을 먹을 수 있다 하여 ‘쌀 나무’라고도 불렸었다. 하니 가을이 와도 좀처럼 꽃이 지지 않는 배롱나무는 미움의 나무이기도 했다. 세 번씩 새순이 돋아 또 꽃을 피우니 미움이 없을 수 없었다.

 

을사사화 때 추풍낙엽처럼 목이 떨어지던 올곧은 선비들을 기리며 지은 송순의 ‘석춘가’ 한 대목을 읊어보면 “꽃이 진다고 슬퍼 마라 / 바람이 날리니 꽃의 탓이 아니로다.” 배롱꽃을 보며 읊었던 것으로 예로부터 선비들이 정자나 서원에 또는 집터에 배롱나무를 한두 그루쯤 심어 의미를 찾고자 했던 것이다.

 

붉은 꽃은 화를 물리치고 척화(斥禍)의 뜻을 담고 있으며 불붙듯 피어나는 모습에서 학문(예술)의 번성을 기원했던 의미, 그래서 배롱나무는 ‘선비 나무’이기도 했었다.

 

한 개의 사물 속에서 우주를 보겠다면 접사 렌즈가 있어야겠지만 이 배롱나무의 붉은 꽃 무리를 볼 양이면 번들렌즈로도 아무 지장 없이 족한 그 꽃의 기억은 제물량길 해안동2가 골목과 골목으로 연결된 판자집에도 피었었다. 그 시절 에레나 누나들의 셋집 봉당에 놓인 세숫대야에서.

 

저녁부터 엄습하던 아픔이 밤이 되면 고통으로 다가가던 누나의 새벽은 꼭 그렇게 배롱나무 꽃을 토해내고 말았던 것이다. 그 몸이 줌(ZOOM)이라고 설명하는 것이 옳겠다. 코쟁이들에게 당하는 밤새 시달림이 누적되고, 내 몸 돌볼 틈 없이 아파오며 조금씩 시들어가는 여인만의 병이 배롱나무 붉은 꽃으로 나타난 것이다.

 

퍼렇게 윤기 없는 입술, 핏기없이 창백한 얼굴, 쾡 하니 들어간 눈, 그 눈자위에 서린 슬픔의 두께, 내려오는 빛을 바라보지 못해 손바닥으로 가리고 쳐다보는 세상의 모습은 인화지에 어떻게 투영 됐을까.

 

하여 우리 악동들은 밤이면 밤마다 거사(?)를 치렀던 것이다. 죽기 아니면 살기로.

 

새 주소 길 중봉로가 생기기 전인 1950년대 지금의 제물량길 해안동2가는 월미도길을 이어가는 철조망의 연속으로 다국적군 경비가 철통같아 접근이 어려웠었다. 해군의 징모 업무를 보고 있는 서도회관 옆은 대한통운과 전매서로 쓰였던 건물, 후로는 신문사 사옥으로도 쓰였지만 막다른 길로 더 갈 수 없었다.

 

‘접근금지! 5m 이상 접근하면 발포함’ 이라는 철조망의 팻말은 군데군데 붙어, 막연한 공포가 아니라 내장 속까지 스미는 공포를 자아냈었다. 거사(?)는 이곳에서도 이루어졌던 것이다.

 

배롱꽃이 세숫대야에서도 피었던 것은 다 코쟁이들이 우리의 순이 누나들을 괴롭혀 일어나는 일로 악동들은 알고 있었다. 물론 그것이 위험천만한 일이란 것은 모르고 저지르는 일이었겠지만.

 

밤톨만한 차돌을 깡통 가득 준비한 악동들은 밤이 되길 기다려 풀숲 아니면 건물을 방패 삼아 포진, 누름치기 (고무줄 총)를 당기며 코쟁이 보초를 겨누었던 것이다.

 

하는 짓이 못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도 못한 나이지만 눈만 뜨면 보는 해안동의 일상은 우리들을 그렇게 만들고 있었다.

 

신작로 길로 어둠이 내려 올쯤 그 여인들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기억에 없을 것이다. 다만 얼굴에 어린 저녁의 노을이 내일로 이어지는 통증처럼 남아 있을 뿐이다. 자정이 넘어 휑하니 비어있는 길이 순이를 더 슬프게 정처 없을 수 밖에.

 

어느 한 날 모시는 촌로들은 “인생을 당겨오지 마라” 했고 “인생에 네가 가까이 가라” 했었다. 어린 시절에 보고 들은 이야기를 지드거니 쏟아냈을 때 했던 말이 이제사 무엇인가 좀 알것 같으니 단란하게 아름다운 세계관을 지켜낸 예술인 그들이 아닌가.

 

추사의 ‘세한도’ 속 조용한 집 창 속으로 책을 읽는 선비의 모습이 굳긴 소식 남기고 간 ‘고여 (우문국)의 청량산 밑, 거락(居樂) 처 앞마당에 배롱나무 한 그루 눈에 선하다. 좀처럼 한수 이북에서 보기 힘든 그 배롱나무 붉은 꽃이 기억 속에서 지워지지 않고 나의 가슴에 아직도 싱싱하게 피어 있다./ 김학균 시인·인천서예협회 고문